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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 여운 깊은 책읽기]그들은 떠나면서 사랑을 남겼다

기자명 법보신문

『문학의 숲을 거닐다』장영희 지음

19세기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숨을 거두는 순간에 “지금 들어가야겠다.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다”고 말했고, 헨리 데이빗 소로는 임종 시에 그의 이모가 “죽기 전에 하느님과 화해해라”고 말하자 “내가 언제 하느님과 싸웠는데?”라며 반문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인간 속에 내재해 있는 탐욕과 위선에 대해 “끔찍하다, 끔찍해”라고 중얼거리며 숨을 거둔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오지> 주인공 커르츠의 말은 고(故) 장영희 교수가 영미 문학작품 속에서 가장 유명한 유언일 것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83쪽 요약인용) 저자인 고인은 문인들과 작품 속 주인공들의 마지막 말을 소개하고는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너무나 많은 것이 있는’ 삶, 사랑이 있는 삶을 나는 매일 쓸데없는 말, 마음이 담기지 않은 말, 진실이 아닌 말로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무리 큰 고통이라 할지라도 고통은 결국 사라지지만,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 내가 사라져 버린 후에도 이 지상에 남을 수 있는 사랑을 만들기 위해 오늘 무슨 말, 무슨 일을 할까.”(85쪽)
오래 전 이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그어둔 부분입니다.

영시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일깨워준 영문학자 고(故) 장영희 교수의 문학에세이집 <문학의 숲을 거닐다> - 5월9일 저자의 부음을 전해들은 뒤 나는 서가에서 이 에세이집을 꺼내들었습니다. 한 페이지씩 넘기다가 밑줄을 그어둔 이 문장을 만났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저 소박하지만 은은한 향기가 풍기는 문장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 읽자니 이 문장 속에는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사랑의 작별인사가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워 먹먹해지는 가슴을 달래느라 한참을 서성거렸습니다.“새는 죽으려 할 때 그 지저귐이 애절하고, 사람은 죽으려 할 때 그 말이 선하다(논어)”라고 하지요. 그처럼, 황망하게 떠나가신 이들의 마지막 말은 너무나 착하고 선해서 오래도록 눈물짓게 합니다.

자신이 사라져 버린 후에도 지상에 사랑이 남아 있기를 바란 고(故) 장영희 교수의 마지막 말은 이러하였습니다.“엄마 미안해,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시사저널 1022호)

그리고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토해낸 한 마디는 ‘엄마’였다고 합니다. 며칠 전 14줄의 짧은 문장을 컴퓨터에 남겨놓고 ‘사람 사는 세상’을 떠나버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언도 ‘미안해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라’였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먹먹한 가슴 한참 더 달래야 할 것 같습니다. 6월이 이토록 눈부시게 열렸지만 말입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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