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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한국불교 최초] 45. 불교출판

기자명 법보신문

신라시대 제작 ‘무구정경’이 현존 최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불교출판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복원된 모습.

제자들을 통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부처님의 가르침은 부처님이 입멸하고 500여 년이 지난 뒤부터 문자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전이 문자화되면서 경전 보급 역시 빠르게 진행됐다.

특히 대승불교 운동가들은 경전의 대중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경전을 보급하는 공덕을 높이 칭송했다. 때문에 훗날 법보시 문화가 발전되었고, 사경 역시 법보시의 일종으로 널리 확산됐다. 따라서 『금강경』 「지경공덕분」에서는 “무수한 세월동안 물질로 보시한 공덕보다 경전을 사경하고 수지 독송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해설한 공덕이 수승하다”고 했고, 『화엄경』에는 “부처님께서는 살갗을 벗겨 종이로 삼고 뼈를 쪼개 붓을 삼고 피를 뽑아 먹물을 삼아서 경전 쓰기를 수미산만큼 하였다”는 구절이 있기도 하다. 이는 단순하게 사경의 공덕을 칭송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경전 보급이 갖는 중요성을 역설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경전 보급은 결과적으로 경전을 많이 만들어서 널리 유통시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경전을 널리 대량으로 보급하기 위한 출판문화 역시 시대를 거듭하며 발달했고, 출판문화의 발달은 곧 인쇄술의 발달과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목판인쇄술을 개발하고 발전시켜왔다. 그러한 목판인쇄술의 발달에 따라 출판한 출판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바로 751년 이전의 목판인쇄물로 추정되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다.

따라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현재 남아 있는 불교출판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난 1966년 불국사 석가탑 속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로 평가받고 있다. 국보 제126호로 지정된 이 경전의 모습은 두루마리 한 축으로 되어 있으며 너비 약 8cm, 길이 약 620cm의 크기다. 한 폭에 55~63행의 경문이 새겨져 있으며, 한 행에 7~9자의 글자가 써 있다.

한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기 전까지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은 영국의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당나라 함통 9년(869) 간기의 『금강반야바라밀경』이었다. 하지만 석가탑 조성연대가 751년인 점을 고려할 때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중국의 『금강반야바라밀경』 보다 최소 118년 이상 앞서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보협인경, 제작연대 확인된 최초

보협인경은 제작연대가 명확하게 밝혀진 최초의 불교출판물이다.

현재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한국불교 출판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간기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점이 아쉬울 뿐이다.
그렇다면 간기(제작연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불교출판물은 어떤 것일까.
그 주인공은 불과 2년 전에야 비로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고려 목종 10년(1007)에 간행된 『일체여래심비밀전신사리보협인다라니경』이다.

‘모든 부처님의 마음속에 지닌 비밀스러운 사리의 보물상자’라는 뜻을 지닌 이 경전은 고려시대 목판본으로, 2007년 경북 안동시 보광사 관음전 본존불인 목조관음보살좌상의 복장유물에서 발견됐다. 경전에는 ‘통화 25년 정미(고려 목종 10년, 1007)’ 개성 총지사에서 간행했다는 명확한 간기가 새겨져 있다. 간기가 있는 불교출판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출판물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임을 증명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형태는 책이나 두루마리로 장정하지 않은 낱장 종이 23장(각 32×45cm)이며, 한 장에 서로 다른 내용이 3단으로 인쇄돼 있다. 전문가들은 장정하기 이전의 형태라서 고려시대 목판인쇄 방식의 원형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경전 첫 머리 간기 옆에 등장하는 변상도는 한국 판화 미술사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기도 하다.

한국불교에서 출판을 통한 문서포교 의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은 고려시대에 완성된 대장경 조성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차례에 걸쳐 조성된 『고려대장경』은 불교의 경전보급 사업을 국가적 차원에서 시행했기 때문에 그 규모나 의미가 남달랐다.

고려의 『고려대장경』 초조본 제작은 현종 2년(1011) 거란의 침입을 계기로 시작, 선종 4년(1087)까지 76년 동안 이어졌다. 이 초조본 조성은 대구 부인사에 간경도감을 두고 송본과 거란본 그리고 그때까지 국내에서 개판된 판본을 저본으로 해서 『대반야경』 등 6000여권의 경전을 새기는 대작 불사였다.

그리고 고려는 초조본이 소실된 이후 강화에서 고종 19년(1232)부터 고종 38년(1251)까지 16년 동안 또다시 국력을 모아 총1511부, 6802권, 81258판의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목판 인쇄를 통한 출판에 이어 눈길을 끄는 것이 금속활자다. 이상국후집 『신서상정예문』발문에 “고종 14년(1227)부터 10년간에 걸쳐 『고금상정예문』 50권 28본을 동활자로 인쇄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 기록은 우리나라에서 금속활자 인쇄의 시작 시기를 1234년으로 보는 근거가 되고 있다.

무구정경의 원래 모습은 두루마리 형태로 되어 있다.

금속활자로 인쇄한 출판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바로 ‘직지’다. 고려 우왕 3년(1377)에 금속활자로 간행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권 2가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책의 역사’ 전시회에 전시되면서 이 책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임을 전세계에서 공인하게 됐다. 『직지심체요절』은 백운화상 경한이 선(禪)의 요체를 깨닫는데 필요한 내용을 뽑아 1377년에 펴낸 불교서적으로 상·하 두 권으로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목판 인쇄를 통한 출판물과 금속활자로 간행한 출판물 모두 불교 경전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직지심체요절』은 1450년 독일의 마인츠에서 구텐베르크가 찍었다고 전해지는 42행의 『성경』보다 77년이나 앞선다. 이는 불교가 역사적으로 출판물을 통한 포교에 얼마나 관심이 지대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앞섰던 출판문화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후 훈민정음이 만들어진(1443년) 조선 세종 시대에 눈여겨볼 만한 불교 출판물이 간행된다. 부처님의 일생과 가계(家系)를 국한문혼용으로 기록한 『석보상절(1447)』과 『월인천강지곡(1477)』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 개의 불교 출판물은 불교의 대중 포교에 큰 역할을 한 문서라는 점에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국문학적 자료로도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직지는 금속활자 간행물중 최고

조선시대에는 전반적으로 불교가 억압받는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종에 이어 세조 시대에도 간경도감을 설치해 불교서적을 집중적으로 간행했다. 세조 시대에는 주로 『금강경』,『법화경』,『능엄경』 등의 경전이 한글로 출판됐다. 출판물을 통해 경전 보급에 나선 불교계의 이같은 열의는 고대사회의 인쇄술과 제지술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도 출판을 목적으로 한 인쇄술의 발전은 거듭됐다. 조선 태종은 재위 3년(1403)에 남산 밑에 주자소를 설치해 동활자 10만여 자를 주조해 많은 활자본을 간행했으며, 계미년에 만든 글자라고 해서 붙여진 이 계미자(癸未字)로 인쇄한 책을 계미자본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간행본은 관에서 주도해 만든 관판본(官版本)과 사설에서 만든 사판본(私版本)이 있다. 이때 사판본 중에 사찰판(寺刹版)이 있었으나, 사찰판도 다른 사판본들처럼 비용을 부담하는 시주가 따로 있어서 출판된 후 관계자들에게 적당히 나누어주는 선에서 역할을 다했다. 때문에 서적이 유통과정에서 일반에 널리 보급되기에는 한계가 뚜렷했다.

신라에서 고려시대, 조선시대 초기까지 인쇄 출판 분야를 이끌다시피 했던 불교계는 이후 오랜 세월 숭유억불 상황을 맞으면서 퇴조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근현대 불교출판은 가톨릭이나 개신교보다 20여 년이나 늦어지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근현대 불교출판물 가운데 가장 앞서는 것으로는 ‘연사(蓮社)’에서 출판한 『불설아미타경 언해(1905)』와 이원석이 번역한 『금강반야바라밀경(1908)』 등이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단행본은 1912년 대창서원에서 간행한 『석가여래전』이다. 또한 이 시기에는 ‘조선불교월보사’에서 건봉사, 김용사, 법주사, 법흥사, 용주사, 유점사, 해인사 등의 『본말사법』을 간행하기도 했다.

이어 1913년에는 중앙포교원에서 이교담의 『팔상록』이 간행됐고, 불교서관에서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이 발간되기도 했다. 이후 백용성의 ‘삼장역회’, 안진호의 ‘만상회’, 김대은의 ‘불교시보사’ 등이 불교 출판활동을 이끌었다. 이후 불교출판은 한국전쟁과 불교정화운동 상황에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가 1960년대 초 석주 스님이 이끄는 ‘법보원’이 설립되면서 한글경전 번역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0년대 후반까지 원음각, 보련각, 불서보급사, 홍법원 등의 출판사가 불교출판을 주도했다.

 
금속활자로 인쇄한 출판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직지의 표지.

근현대 첫 출판물은 불설아미타경

그리고 1980년대 들어서는 민족사가 외국에서 발간한 불서의 번역출판에 매진하며 불교출판의 새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민족사는 1981년 출간한 여익구 씨 편역 『불교의 사회사상』이 군부로부터 판매 금지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기도 했다. 이 책은 불교서적 가운데 군사정부로부터 판금된 최초의 책이다. 민족사는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외국불서 번역 출판에 주력해 모두 80여종 넘게 내놓기도 했다.

한편 1989년에는 불교서적을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총판회사 운주사가 설립됐으며, 운주사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불교출판 황금시기를 맞아 불교출판물의 보급망 확대와 대중화에 기여함으로써 불교계 내부에서 이 분야의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불교출판은 1990년대부터 양적으로 크게 성장세를 보였으나, 1998년 IMF에 접어들면서 위축됐다가 2000년대 들어서 달라이라마와 틱낫한 스님의 가르침을 담은 명상류의 서적을 바탕으로 서서히 증가세를 보였다. 이어 2000년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매년 250여 종 이상의 서적이 출판되는 것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불교출판물이 양산되고 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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