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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② 간화선: 성철 선사와 화두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09.06.22 14:13
  • 댓글 0

성철선과 보조선구분해야 조계법손

불교의 세속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가 조계종의 정체성과 수행풍토를 비판하는 기고문을 최근 보내왔다. 이에 본지에서는 △조계종의 종지와 종조 △간화선: 성철 선사와 화두 △재가불자: 신행과 역할 등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선종 종지종풍은 돈오무심 사상
남종선서 보면 지눌은 ‘비주류’

 
신 교수는 성철 스님이 혜능과 임제의 종지종풍을 잇고 있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지난 호에 조계종의 종지와 종조에 대해 매우 간략하게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거기에서도 거론했지만, 현재 ‘대한불교조계종’이라는 종명(宗名)의 탄생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종명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종조(宗祖)에 대한 논의 또한 유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종명으로서의 조계종과 종조로서 태고보우 선사가 결정된 것은 세칭 비구-대처의 분쟁 속에서 급작스럽게 대두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면 종명의 문제와 종조의 문제에 왜 그렇게 주목을 하는가? 이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정체성의 확립 때문이다. 불교 종단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이 분명해야만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다양한 사안들을 해결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불교에는 수많은 경전이 있고, 수많은 수행방법이 제시된다. 또 다양한 역사가 있다. 이럴 경우 무엇을 ‘기준’ 삼아 취사선택하고 선후 수습의 차제를 매길 것인가? 이때에는 반드시 그 불교 단체가 지향하는 종지와 종풍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과정에서 당연하게 대두되는 것이 우리의 ‘기준’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느 분을 스승 삼는가가 되물어지게 된다.

이때 조계종의 경우는, 『경덕전등록』을 비롯한 각종 전등사(傳燈史)에 의거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을 스승 삼고, 그리고 더 내려와서는 달마 조사를 스승 삼고, 또 더 내려와서는 6조 혜능 선사를 스승 삼는다. 물론 석가세존 이전에도 무수히 많은 부처님이 계셨지만, 이루 다 셀 수 없다고 한다. 다만 현겁에만도 1,000분의 부처님이 계신다고 한다. 남종선에서는 이렇게 믿고 가르쳐왔다. 역사적 사실 여부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믿음의 역사이다.

남종선의 출현은 동아시아 불교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의 핵심 주장은 『육조단경』에서 제시하듯이, ‘견성성불(見性成佛)’ 내지는 ‘식심견성(識心見性)’하자는 것이다. 『돈황본 육조단경』(성철 역, 장경각)에서 육조혜능 선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선지식들아, 나는 오조홍인 화상의 회하에서 한번 듣자 그 말끝에 크게 깨쳐 본래의 성품을 단박에 보았느니라.” 여기에서 핵심 되는 말은 “돈견진여본성(頓見眞如本性)”이다. 남종선은 이거 하자는 것이다. 『육조단경』의 근본정신을 부정하면서 조계종한다는 것은 매종행위요, 해종행위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저마다 제각기 가지고 있는 “진여본성(眞如本性)”을 단박에 깨칠 수 있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무념(無念)하라고 한다. 육조혜능 조사께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나의 이 법문은 예부터 무념을 세워 종으로 삼는다.” 일체의 사유와 언어적인 분별을 완전하게 끊어버릴 때에 “진여본성(眞如本性)”을 체험한다는 것이다. 『오등회원』에 등장하는 역대의 수많은 선사들의 대화를 보면 모두가 상대로 하여금 일체의 사량분별을 끊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 책의 5권에 나오는 협산선회(805~881) 선사의 제자인 낙포원안(834~898) 선사의 상당법어를 보자.

마지막 한마디[末後句]로 마침내 굳게 닫힌 관문까지 도착하기는 했으나, 핵심 되는 나루터를 틀어막으면 범부이건 성인이건 모두 통과하지 못한다. 내 평소 그대들에게 말하기를, 설사 천하 사람들이 기꺼이 받들어도 나만은 홀로 그것을 수긍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만약에 최상의 수행자가 노니는 세계를 알고자 한다면, 거북이가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를 등에 지고 나와 『주역』의 진리를 전했지만, 결국은 사람에 잡혀 제 목숨을 잃는 것처럼, 부처나 조사의 말씀과 가르침을 이마 위에 붙이지 마라. 봉황이 쇠 그물에 얽혔는데 저 높은 하늘로 날아갈 날을 어찌 기약하겠는가?

반드시 말 밖에서 핵심을 밝혀야지, 말 속에서 법칙을 취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사량분별을 떠난 사람의 재주가 그대와 비슷하더라도 이 또한 변방 사천성의 음악인 파가(巴歌) 정도 밖에 노래하지 못한다. 그러나 만약 그대가 일체의 사량분별을 떠나면 그대는 백설양춘곡(白雪陽春曲)에도 화답할 수 있게 된다. 남쪽을 가리키는 외길이 뚫린 줄은 지혜로운 사람만이 안다.

이렇게 사량 분별을 끓으려는 선종의 가풍에 입각하여, “백 천의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일이 한 사람의 무심한 도인에게 공양하는 것만 못하다”는 말도 나왔다. 이런 전통은 선종이 5파로 개화되고 송대(宋代)로 내려와서도 그 전통은 여전하였다. 다만 송대에는 화두를 참구하는 수행방법이 대두된 것만이 다를 뿐이다. 당나라시대의 선승들은 회광반조(廻光返照)의 방법으로 무심 수행할 것을 강조했고, 송나라 시대로 내려와서는 화두참간(話頭參看)을 통해서 그런 경지를 열고자 했을 뿐이다.

그런데 ‘반조’와 ‘간화’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고 조계종 종정(또는 교정)을 여러 번 지낸 오대산의 한암중원(1876~1951) 선사는 『한암일발록』(한암문도회간, 민족사)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오히려 한암 선사는 화두가 끊어지는 그 순간에 다시 ‘무자화두’를 참구하라고 주의를 주신다. 이런 전통은 조선 중기의 서산·사명 선사에게서, 더 올라가서 고려 말의 3사 백운경한, 나옹혜근, 태고보우 등의 선사에게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전통이다.

근자에 들어서는 퇴옹성철(1912~1993) 선사에 의해서 더욱 극명하게 천명된다. 특히 그의 『본지풍광(本地風光)』에서 말이다. 대개의 선어록은 후인들이 편집한 것인데, 이 책은 당신 살아생전에 그 법문을 제자들이 채록하여 선사에 보여, 확인 과정을 거쳤다. 그렇기 때문에 퇴옹 선사의 생각이 온전하게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크게 3범주에서 간화의 방법과 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는 옛 조사들의 언구를 의심하여 실답게 참구하여 확철대오 할 것을 강조한다. 화두와 공안을 끊임없이 의심하여 실참할 것을 강조한다. 둘째는 남의 언구에 매이지 말고 자기 자신의 체험을 중시할 것을 강조한다. 한 때는 대중들을 모아놓고 ‘여러분들과 나는 서로 부모를 쳐 죽인 원수와 비슷한 관계이니, 내 말조차 들을 필요가 없다.(그대 자신의 체험을 귀하게 여겨라)’고 호령한다. 퇴옹은 이 점에 있어서는 중국의 조주 선사를 아주 쏙 빼닮았다. 『본지풍광』의 여러 곳에 퇴옹의 이런 정신이 드러난다.

셋째는 무심사상의 선양이다. 같은 집안 자손이기 때문에 당나라의 임제나 한국의 퇴옹은 모두 ‘돈오’와 ‘무심’을 강조한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선풍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임제는 무심보다는 돈오를 강조한다. 반면 퇴옹은 돈오보다 무심을 강조한다. 이러한 퇴옹의 선풍은 『본지풍광』제58칙 「향상일로(向上一路)」를 제창하는 곳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퇴옹이 이렇게 된 데에는 당시 한국 선의 환경과 관련되어 있다. 비구-대처의 분규 속에서 종권 다툼의 속셈으로 ‘보조법통설’을 제시한 분들도 없지 않았다. 고려의 고승 보조지눌(1158~1210)은 규봉종밀(780~841)의 돈오점수 사상을 계승한다. 그러나 『오등회원』과 그 이전의 『보림전』, 『조당집』, 『경덕전등록』, 『천성광등록』, 『건중정국속등록』, 『연등회요』, 『가태보등록』 등 어느 등사를 보더라도, 돈오와 무심을 주장하는 선승들이 주류였다. 선종의 종지와 종풍은 돈오무심(頓悟無心) 사상이 뿌리이다.

보조지눌이 고려의 고승으로 한국 지성사에 위대한 학승이요 수행승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남종선의 입장에 보면, 그는 결코 주류일 수가 없다. 임제의 말처럼 성외(城外)의 우유를 어찌 나귀 젖에 견줄 수 있단 말인가? 선종만을 주장하는 퇴옹의 순수선과 화엄과 선의 결합을 주장하는 보조의 융합선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어찌 조계의 법손이라 할 수 있겠는가!

신규탁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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