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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묵 스님의 풍경소리]

기자명 법보신문

신뢰는 꾸밈이나 권위로는 형성되지 않아
정치인도 국민 아픔 보듬을 때 믿음 쌓여

우리 사회는 사회적 신뢰의 붕괴 때문에 성숙한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은 이미 오래전인지라 말할 것도 없지만 정부에 이어 법원마저도 판결에 있어 그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또 교단에 대한 신뢰 상실은 우리 사회 지성의 산실이라는 대학 교단에까지 미치고 있다.

그리고 믿음에 있어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종교는 다분히 상업화되고 지나친 정치 성향을 내세운다. 초연히 객관자적 입장을 견지하며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속세와 그저 하나가 되어 물들어가고 있다. 이렇듯 우리 사회 어느 한곳도 온전한 신뢰를 얻지 못해 불안한 가운데 눈앞의 이익만을 우선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연 우리 사회는 미래나 이웃은 외면한 채 겉모습과 쾌락과 향락에 물든 퇴폐 사회가 되고 있다.

모든 사회는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이루어져 가는 존재다. 따라서 신뢰의 붕괴는 반드시 그 사회의 붕괴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사회의 지도층이 되는 이들은 무엇보다도 신뢰를 구축하는 일을 중요시해야 한다. 이때 이 신뢰는 힘과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단 무조건 한번 믿어보라는 식으로 해서도 안 된다. 일부 종교는 인간의 나약한 점을 파고들어 불안하게 만들고는 반드시 자기 종교를 믿으라고 하는데, 이런 식의 맹목적 믿음의 강요는 더 이상 통용되기 힘들다. 경전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부처님께서 코살라국의 케사풋타라는 작은 마을에 갔을 때 이곳 주민들이 부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서 손님으로 모시고 경의를 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세존이시여. 케사풋타에 찾아온 사문과 바라문이 몇 사람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오로지 자기 교리만을 내세우고 교화시키려 합니다. 그리고 남의 교리에 대해서는 경시하고 헐뜯고 비웃습니다. 하지만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도대체 누가 바른 말을 하는 존경스런 사문과 바라문인지, 그리고 누가 틀린 말을 하는지 몰라 항상 의혹과 혼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다른 어떤 종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충고를 한다. “여러분, 그대들이 의혹에 사로잡혀 있는 것,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의심스러운 것에 대해서는 의심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이 전해들은 이야기나 관습이나 풍문에 이끌리지 마십시오. 여러 종교들의 텍스트가 갖는 권위에 이끌리지 마십시오.

논리나 추론에도 이끌리지 마십시오. 피상적인 사고에도 이끌리지 마십시오. 그럴 듯한 것에도 이끌리지 마십시오. ‘이 사람이야 말로 우리들의 스승이다’라는 생각에도 이끌리지 마십시오. 여러분 스스로가 어떤 것이 건전치 못하다, 그릇되다, 나쁘다고 알게 된다면 그것들을 버리십시오. 어떤 것이 건전하고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받아들이고 따르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 종교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의 형성은 그럴듯한 꾸밈이나 생각 그리고 기존의 권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른 마음을 통해 각자의 알아차림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의 형성 과정은 정치나 사회 전반에도 마찬 가지로 통용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부 종교에서 쓰는 방식을 정치가가 국가 통치에도 적용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국민이 자신들처럼 한쪽 눈과 귀만 사용하는 줄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잘 잊는 것을 이용해서 과거에 한 말과 일은 모두 잊고 현재 자신들의 주장을 따라달라고 강요하고 있다.

아이와 친해지기 위해서 먼저 아이와 눈을 맞추듯 서로의 깊은 곳을 살펴보며 진실하게 마음을 열고 믿음을 얻어야 한다. 서로에게 덧칠했던 색깔 따위는 걷어내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함께라는 의식이 쌓여야 한다. 이를 통해 서로 신뢰가 충만해질 때 모두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서로에게 미루지 말고 모두 웃는 그 날을 위해 노력하고 간절히 기원했으면 한다.  

정묵 스님 통도사 포교국장 manib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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