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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변호사의 세상읽기]

기자명 법보신문

경쟁-협력 공존할 때 상생 가능
진짜 싸워야 할 대상은 삼독심

‘무한경쟁’이라는 말이 상식처럼 되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살길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매사(每事)에 경쟁이고, 경쟁에서는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한다.

백인들이 미 대륙에 발을 들여놓고 원주민을 정복한 다음, 학교를 세워 원주민의 자제들을 교육시키기 시작한 때의 이야기이다. 한 학기가 거의 다 되어 기말시험을 치르면서 담임선생이 학생들에게 이르기를 “옆 학생의 답안을 보거나 보여주면 그 시험은 영점으로 처리된다.”고 엄히 경고를 했다. 그러자, 학생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이 의아해서 물은 즉, 학생들로부터 의외의 답이 나왔다. 즉, “문제가 어려워 풀기 어려우면 서로 협력하며 도와야 하는 것으로 집에서 배웠는데, 그것이 친구로서의 옳은 처사 아니냐?”는 것이었다.

백인 선생으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나도 어려서 서당(書堂)이라는 데를 다니며 한문 공부를 할 때에 훈장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것은 비슷한 말이었든 것으로 기억한다. 친구나 이웃은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을에서 어느 집에 대사(大事)가 있는 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능력껏 도왔든 일이 생각난다. 이것이 유교적 전통에 바탕을 둔 동양권(東洋圈)에서의 생활패턴이었던 것 같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몰인정한 경쟁구도로 바뀌어가지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주 드러내놓고 경쟁을 일삼고, 그것이 마치 미덕이라도 되는 듯이 누구나가 경쟁에 뛰어들며, 정부는 정부대로 경쟁을 부추긴다. 경쟁은 전통적으로 개인주의(individualism)에 익숙한 서양의 산물이고, 서양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맞아떨어진다. 2차대전 후의 세계는 전승국(戰勝國)인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방세력의 주도아래 움직이게 됨으로써 서구적 사고방식이 주류를 이루게 되고, 그들의 주도아래 경제가 돌아가다 보니 결국 서방적인 사고의 바탕을 이루는 경쟁이라는 것이 고개를 들고 보편화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WTO체제의 발족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사회에서는 역사적으로 개인주의가 보편화되어온 까닭에 모든 면에서 ‘나’가 중심이 된다. 그래서 나, 내 집, 내 학교, 내 나라 따위와 같이 ‘나’가 언제나 중심에 선다. 그에 대해서 전통적으로 대가족제도와 단체주의 관념이 보편화되어온 동양에서는 ‘나’ 대신에 ‘우리’가 중심에 놓이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 집, 우리 마을, 우리나라 따위와 같은 것은 그 예이다. 한국에서는 내 집, 내 마을, 내 나라라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게 들리고, 오히려 우리 집, 우리 마을, 우리나라라고 하는 것이 친밀감을 더한다.

경쟁이든 협력이든 모두가 전통적 관념과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님을 보이는 것이다. 그것을 무리하게 인위적으로 어느 한쪽에 중점을 두어 쏠리게 하자니 무리가 생기고, 살지 않으면 죽는 꼴이 된다. 그러나 경쟁이 되었건 협력이 되었건 한쪽에 쏠리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다.

부처님은 잡아함의 『이십억이경(二十億耳經)』에서 “정진이 너무 급하면 들뜸을 더하고, 정진이 너무 느리면 사람을 게으르게 한다. 그러므로 너는 마땅히 고르게 닦아 익히고 거두어 받아, 집착하지도 말고 방일하지도 말며 모양을 취하지도 말라.”라고 이십억이 비구에게 이르시어 중도(中道)의 가르침을 밝히신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적당히 경쟁하되 적당히 협력하는 것이 서로를 위한 길이요 사는 길인 것 같다.

구태여 싸운다면 남하고의 싸움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비중을 둘 일이다. 사람을 번뇌와 멸망으로 이끄는 것은 남보다도 자기 안에서 때도 없이 고개를 쳐들고 일어나는 어리석고 탐착하고 화내는 삼독심(三毒心)이기 때문이다. 

이상규 변호사 skrhi@rhi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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