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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탁 교수 특별기고] ③ 재가불자 : 신행과 역할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09.06.30 14:33
  • 댓글 0

사찰서 법문 듣고 보시할 때 ‘재가불자’

불교의 세속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가 조계종의 정체성과 수행풍토를 비판하는 기고문을 보내왔다. 이에 본지에서는 △조계종의 종지와 종조 △간화선: 성철 선사와 화두 △재가불자: 신행과 역할 등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출가불자가 수행 전념토록 돕는 것도 의무
조계종 사찰마다 통일된 이념·행법 갖춰야

법보신문의 세 차례 연재는 조계종의 ‘기준’이라는 측면에 주목을 한 글이다. 필자는 ‘대한불교 조계종’이 주장하는 ‘기준’을 종헌 종법과 그리고 역사와 제도 등을 통해서, 극히 일부분 즉 ‘종조’와 ‘종지’를 제한적으로 거론했다. 이것이 분명해야 출가는 물론 재가 불자들의 신행도 분명해지고, 또 그에 따르는 역할도 분명해질 수 있다. 이를 위해 두 가지 면에서 살펴보았다.

첫째, 어떤 인물을 ‘기준’으로 사자상승을 하는가?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과거의 무수한 부처-현겁의 일곱 부처-인도의 28대 조사-동토의 6대 조사-임제종 양기파의 석옥청공 선사-고려의 태고보우 선사-조선의 모든 승려. 둘째, 핵심적으로 주장하는 취지[宗旨]의 ‘기준’이 무엇인가? 문헌적으로 보면 전등(傳燈)의 법어(法語)이다.

그럼 전등 법어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일체의 사유와 언어분별을 끊게 된 각종 기연들이다. 그리하여 『육조단경』처럼 ‘진여본성’이라 하던, 『임제록』처럼 ‘본래면목’이라 하던, 상대로 하여금 그것을 스스로 체험하게 했다. 방법으로 당대에는 반조(返照)를 했고, 송대에는 간화(看話)를 했지만, 이 둘은 차별이 없다.

그런데 현재의 조계종은 스스로 제시한 ‘기준’과 ‘현실’ 사이에 간격이 크다. 이렇게 간격이 뜬 데에는 한국불교의 역사가 있다. 그것도 아픈 역사 말이다. 조선조에는 유래 없는 극심한 불교탄압이 지속되었다. 고려의 강성하고 섬세한 불교적 역량이,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속장경’을 만들 정도의 그 엄청난 실력이, 조선에 들어 다 파괴되었다.

이렇게 망가진 속에서, 청허휴정(1544~1610) 서산대사께서 저 멀리 고려의 태고보우(1301~1382) 선사를 북극성으로 삼아, 연기 속에 사라진 역사의 편린을 모아서, 조선불교의 계보를 복원하려 했다. 그러면서 제자 사명유정 선사에게 『선교결(禪敎訣)』이라는 짧은 글을 내리면서, 이 집안의 정신은 선종의 돈오무심에 있음을 분명하게 했다. 이런 일을 전후하여 조선의 승려들은 모두 태고를 ‘종조’로, 돈오무심을 ‘종지’로, 간화선을 ‘종풍’으로 우러렀다.

이러면서 조선의 스님들은 불교의 전통을 근근이 지켜 갔다. 그러던 중 세월이 흘러, 영조와 정조 임금 시대를 지나 산승(山僧)들이 늘면서 교리와 역사에 대한 지식이 약해져 갔다. 이를 염려하던 식자들이 『선문염송』이나 『전등록』등 선어록을 비롯하여 화엄의 교학을 강의했다. 게다가 이 땅에 화엄 비로교주의 인연이 지중하여, 서해의 법성포 앞 바다 임자도에 대장선(大藏船)이 밀려왔다. 백암성총(1631~1700) 선사께서 이것들을 판각하고 전라도 순천 선암사 창파각(滄波閣)에서 화엄대법회를 열었다.

그 후 연담유일(1720~1799), 인악의첨(1746~1796), 백파긍선(1767~1852) 등의 출격의 강사들이 출현하여 전라도 일대에서 ‘화엄교학의 르네상스’가 일어났다. 구한말에는 구암사(龜巖寺) 사문 석전정호(1870~1948), 진응혜찬(1873~1941) 선사 등이 출현했고, 그 문하 운허용하(1892~1980) 등이 나왔다.

이와 더불어 각 사원에서는 아침과 저녁으로 송주를 비롯한 ‘안채비’를 통해 정업(淨業)을 닦아왔다. 백파의 『작법귀감』도 이런 노력의 산물이다. 개중에는 ‘영산재’와 그와 관련된 ‘지화’, ‘장엄’, ‘양공’, ‘착복’, ‘복장’, ‘단청’, ‘불화’, ‘도편수’ 등 다양한 방면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 했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도 이들 모두는 선종을 마음의 중심에 두었다. 육조혜능 선사를 지남(指南)으로 삼았다는 말이다. 사투리로 ‘조패’라고도 하는 조파(祖派)에 모두 선사로 표기하는 것도 다 이런 유래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사가 귀하고, 강사가 귀하고, 어장이 귀하고, 도편수가 귀하다. 이 귀한 분들을 중심으로 수행공동체를 운영해야 한다. 조계종의 출가 불자라면, 그 어떤 하나의 ‘단위 공동체’에 들어가서 절차탁마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단위 공동체’란, 현실적 공간으로 말하자면 절[寺]이다. 절에는 그 사격(寺格)에 따라 총림도 있고, 일반 ‘대중처소’도 있고, 이와 더불어 소위 ‘독살이 절’도 있다.

 
재가불자들이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모습. 법보신문 자료사진

출가 수행자가 사는 거처는 이와 같이 제 각기 그 사격(寺格)은 다르지만, 그 속에 사는 수행자에게는 전공이 있게 마련이다. 각자가 전공을 얼마나 심도 있게 연마하는가는 개개 수행자의 형편에 달려있겠지만, 전공이 없을 수 없다. 또 각 전공은 다르지만, ‘기준’은 선종이다. 필자가 “북신(北辰)이 거기소(居其所)하니 중성(衆星)이 공지(共之)”라는 『논어』를 인용한 것도 그런 뜻에서 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자신이 선(禪)을 으뜸[宗]으로 한다고 표방하고 있는 한, 선종을 선종답게 해야 한다. 비록 고경한천(古鏡寒泉)에 섞은 물 타기를 더해가는 세태이지만, 그런 와중에도 1200여 명의 선승이 이 더위 속에서 화두와 씨름 한다니, 그 분들이 조계종의 봉황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해제비’ 운운하면서 선승을 비난하는 소리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비난할 것 못된다. 한 철에 300만원 드려봐야 1년에 600만 원이다. 매달 50 만 원 정도 내에서, 목욕도 하고, 책도 사보고, 여비도 하고, 약도 사 먹고, 목마를 때에 콜라 한 잔 사 드신다. 겉모습만 보면 거지, 거지, 그런 상거지가 어디 있는가? 집이 있나? 절이 있나? 그렇다고 노후가 보장이 되나?

‘기준’에 대하여 조계종의 출가 불자들의 공감대가 굳건해야, 조계종에 속한 재가 불자들의 신행도 방향을 잡을 수 있다. 현재 조계종의 재자 불자들은 단위 사찰에 등록하여 저마다 신행을 해가고 있다. 그 신행의 핵심은 역시 법회이다. 이럴 경우에 단위 사찰별로 행해지는 법회에는 통일된 ‘이념’과 ‘행법’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조계종이 지향하는 선종의 종지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조계종)에 속한 재가 불자의 신행과 역할은, (조계종)의 ‘종조’와 ‘종지’에 걸맞게 해야 한다. 위의 괄호 안에 ‘진각종’을 또는 ‘천태종’을 삽입했을 때에, 그 종단에서는 대부분 수긍할 것이다. 이 두 종단은 그만큼 정비된 수준 높은 종단이다.

끝으로 출가와 재가의 신행에 있어 근본적인 차이는 있을 수 없다. 다만 그 수지하는 계율의 엄격성이 다를 것이고, 역할이 다를 것이다. 특히 재가자에게 있어서는 출가자들의 재정을 분담해야 한다. 소속된 사원에 각종 보시를 해서, 출가 불자들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 출가 불자의 법문을 들어야 하고, 그 지도를 받아야 한다. 재가이던 출가이던 불자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지만, 또 그만큼 보람 있고 고결한 삶이다.

조계종이 선종하자면서, 또 선종한다면서, 게다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스스로의 ‘기준’을 철저하게 하지 못하는가? 이런 문제의식에 대해 두 가지 반응이 가능할 것이다. 하나는 ‘기준’을 바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준’에 철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퇴옹성철 선사는 조계의 ‘기준’에 철저하려는 쪽을 선택했다. 바로 그런 노력의 결정체가 『본지풍광』(성철, 장경각)이다. 이 책에서 그는 화두에 대한 폭 넓은 이해와 자신의 체험을 담아내었다.

한편, ‘기준’의 폭을 넓히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떻게 말인가? 족보상으로는 선종이지만, 그 중에는 간화참선 하는 자손도 나왔고, 화엄교학 하는 자손도 나왔고, 정토염불 하는 자손도 나왔으니, 솥의 세발처럼 3문(門)을 ‘종지’로 한다고 말이다.

신규탁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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