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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효 교수의 다시읽는 신심명] ⑪ 존재자적 사고방식

기자명 법보신문

사심 없는 중생심이 곧 참다운 불심
존재론적 사유는 하늘 같이 텅 비어

지난 회에 『신심명』을 도덕윤리적 사유로 대하지 말고, 존재론적 사유로 읽으라고 말했다. 이것은 사소한 충고가 아니라, 대단히 중요한 불교의 독법이다. 불교는 절대로 기독교나 유교처럼 도덕종교나 사상이 아니다. 불교의 수행은 행위의 도덕화를 심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자적(개별 명사적) 사고방식이나 소유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존재론적 사고방식을 일상생활의 도(道)로서 터득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 불교가 한없이 난해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존재자적 사고방식은 분별적 사고방식을 말한다. 세상의 대상들을 개별명사로 하나하나 생각하는 것이 존재자적 사고방식이다. 중생들은 이런 분별로 일생을 보낸다. 소유적 사고방식은 사회생활을 ‘나’ 중심으로 엮어가는 태도를 말한다. ‘내’가 늘 그 모든 소유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한다.

소유의 중심이기를 바라는 자아는 동시에 안전에 전개되는 명사적 존재자들을 많이 지배하면 할수록 만족을 느낀다. 이런 만족에 탐닉하는 중생은 불심(佛心)의 존재론적 사유와 그만큼 멀어진다. 불심은 사사로운 사적 소유를 결코 마음에 두지 않는다.

불심은 자기 것이 전혀 없고, 그의 마음속에는 오직 공동존재의 방식만 작용한다. 존재론적 사고방식은 배타적인 소유론적 사고가 아니고, 공동존재의 사고방식을 뜻한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존재가 공동존재다. 이 우주의 삼라만상은 존재하기 위하여 상호간 공동으로 얽히고설킨 존재양식을 필연적으로 띤다. 예컨대 한 그루의 나무가 존재하기 위하여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존재와 공동존재를 이루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존재론적 사고방식은 사사로운 영역을 전혀 머금고 있지 않기에 텅 빈 공적(空的)존재이지만, 또한 이것은 공동존재의 방식이다. 공동존재(共同存在)의 방식은 이미 송나라의 유학자 정명도의 말처럼 공공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이처럼 존재론적 사고방식은 사심이 전혀 없는 텅 빈 마음으로 공동존재를 위하는 공공(公共)의 사고방식으로 가득 차있는 것과 같다. 존재론적 사고방식은 공(空)=공(共)=공(公)의 일체를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저 세 가지의 발음도 유사하다는데 유의해야 하겠다. 존재론적 사고방식은 텅 빈 공의 마음과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 하겠다.

이것이 부처의 마음이겠다. 존재론적 사고방식은 결코 존재자적인 명사들을 생각하는 사유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이데거가 이미 지적했듯이, 서양의 철학은 이 존재론적 사고방식을 오랜 세월동안 존재자적인 명사들을 생각하는 사고방식으로 착각해 왔고, 오인해 왔다. 그는 이제 인류는 이 미망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승찬 대사의 『신심명』의 한 구절로 다시 돌아가자.

둥글기가 태허와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거늘(圓同太虛 無欠無餘),
취하고 버림으로 말미암아 그 까닭이 여여하지 못하도다. (良由取捨 所以不如).

존재론적 사유는 텅 빈 하늘처럼 공한 사유다. 이를 승찬 대사는 태허(太虛)의 사유라고 일렀다. 태허와 같은 존재론적 사유는 사사로운 소유에 대한 만족과 불만이 개입될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런 사유에 대하여 불만의 흠결이 있다든가 만족의 여유가 있다든가 하는 그런 양적 차원의 개념이 도입될 여자가 없다.

존재론적 태허의 사유에는 이미 암시된 바와 같이 양적인 취사(取捨)의 소유적인 개념이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 이것이 불심이다. 불심은 이 우주의 사실인 공동존재의 마음이고 공공(公共)에 헌신하는 마음이다. 공동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불심의 실상(實相)을 말하는 것이지, 불심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 공공에 헌신하는 마음은 불심의 도덕적 행위인 것같이 보이지만, 기실 그것은 사심이 없는 불심의 행위적 결과를 가리키는 것이다. 사심이 없는 중생심이 곧 불심이다. 

김형효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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