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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묵 스님의 풍경소리]

기자명 법보신문

세간의 시비, 달팽이 뿔에서 영토 다투는 꼴
자기 잣대로 남 규정짓고 바라보지 말아야

다른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는 이념적 갈등이 심했고, 요즘도 그 갈등이 심상치 않다. 서로를 어느 한쪽으로 단정 지어 놓고는 딱지를 붙인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부류다 싶으면 배척하고 매우 심한 말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부류로 몰린 사람들 사이에서도 분파를 짓고 원결을 맺는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글로벌 시대를 달고 산다. 마치 작은 배를 타고 함께 큰 강을 건너가야할 사람들이 일시 나와 호흡이 맞지 않는다 해서 노를 뺏고 강 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다른 배에 있는 사람을 불러대는 형국이다.

장자 측양편(則陽篇)에 나오는 와각지쟁(蝸角之爭)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나라 간에 배신이 난무했던 중국 춘추 전국시대에 양나라 혜왕과 제나라 위왕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기로 굳게 약속을 맺었는데, 제나라 위왕이 배신을 하자 화가 난 혜왕이 자객을 보내 위왕을 암살하려 했다.

그러자 공손연이란 신하는 군사를 보내 제나라를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계자라는 신하는 전쟁을 벌여 백성들을 곤경에 처하게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때 화자라는 신하가 나서서 임금에게 “제나라를 공격해야 한다는 사람도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사람이고, 공격해선 안 된다고 하는 사람도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양쪽 다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 또한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사람입니다. 시비를 떠나 도(道)의 입장에서 사물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라고 하자 혜자라는 신하가 임금에게 대진인(戴晉人)을 소개했다. 대진인은 혜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하, 달팽이의 왼쪽 뿔 위에는 촉(觸)씨의 그리고 오른 쪽 뿔 위에는 만(蠻)씨의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영토를 다투어 전쟁을 벌이니 사망자가 수만이고 달아나는 적을 보름이나 추격하고서야 비로소 군대를 돌렸다 합니다.”

왕이 말하길 “그것은 터무니 없는 말입니다.”
대진인이 말하길 “전하! 신이 이 말이 사실임을 입증해 보이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이 우주가 사방과 위 아래로 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왕이 말하길 “ 끝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요.”

대진인이 말하길“그러면 마음이 무궁한 세계에서 노니는 사람이 보았을 때는 왕래하는 이 땅위의 나라 따위는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은 하찮은 것일 것입니다. 그 나라들 가운데 위나라가 있고 위나라 안에 대량이라는 도읍이 있고 그 도읍 안에 전하가 계시옵니다. 그러면 전하와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는 촉씨, 만씨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대진인이 물러가자 망연해 있던 혜왕이 혜자에게 "그 사람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성인도 그에 미치지 못할 것이오"라고 말했다.

와각지쟁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우리 절 집안도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법상에서는 한 입에 시방법계를 자유자재로 삼켰다 토해냈다 하고 삼계세계를 들었다 놓았다 하지만 작은 이름에 연연함을 보일 때가 많다.

이러한 까닭은 우리들 대부분 각자의 이러 저러한 잣대로 자신과 타인을 규정짓고 이름을 붙이고 다시 그 이름을 가지고 자신의 존재를 설정하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이에 따라 관계를 설정하기 때문이다.

이제 서로에게 붙여놓았던 이름표를 떼어내고 자기에게 붙은 이름에도 속지 말고 와각지쟁(蝸角之爭)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이를 위해 중론(中論) 「관사제품(觀四諦品)」에 나오는 게송을 한번 새겨보았으면 한다. 중인연생법(衆因緣生法) 아설즉시공(我說卽是空) 역위시가명(亦謂是假名) 시명중도의(是名中道義) : 여러 인연이 모여 모든 존재가 생성되었기에 나는 공(空)이라 말하지만 이 또한 의존된 가명(假名)이며 이를 중도(中道)라고 이름 한다.

정묵 스님 manib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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