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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에 남은 경구] 펜화가 김영택

기자명 법보신문

죽비소리보다 크게 마음을 울려

하나의 티끌 속에 온 세상이 들어 있고, 모든 티끌이 모두 그러하다.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법성게-


1997년, 펜화를 시작한지 4년 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영주 부석사에서 무량수전과 안양루를 스케치북에 담았습니다. 요즈음에는 4절 크기의 펜화 한 장 그리는데 보름정도 걸립니다만 당시에는 하루에 두어 장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펜 선이 성글고 그림도 엉성할 때였습니다.

시간이 남기에 유물전시관을 들러서 대웅전 천정 닫집에 있던 목조용도 그렸습니다. 참 잘 만든 용이었습니다. 그림을 끝내고 돌아 나오는데 전시관 벽에 붙여 놓은 의상대사 법성게 중 두 구절이 번개처럼 머리를 때렸습니다.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로 ‘하나의 티끌 속에 온 세상이 들어 있고, 모든 티끌이 모두 그러하다’라는 글이었습니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글인데 머릿속에 쉬운 해설이 떠오른 것입니다.

인간의 몸에는 약 2백조개의 세포가 있다고 합니다. 그 세포 하나를 복제 하면 인간이 만들어 집니다. 인간을 제대로 만들려면 인간의 설계도가 있어야 합니다. 큰 공장 수백 개의 도면보다도 더 복잡한 설계도가 필요할 것입니다. 또한 도면에 맞추어 여러 재료를 합성하고 생성하여 인체기관을 만드는 공정의 정보와 제조 시설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주어진 영양분으로 모든 장기를 만든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요.

근육을 만들려면 단백질로 밧줄을 만들어야 하고 그 속에 신경을 전달하는 전선도 만들어 넣어야 합니다. 눈에는 카메라 렌즈와 같은 수정체와 조리개가 있어야 하며, 두뇌 안에는 어머 어마한 용량의 생체 반도체와 연결 장치가 필요합니다. 손톱 발톱을 만들려면 프라스틱과 비슷한 물체를 생산하는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참 엄청난 것입니다. 이런 설계도와 공정의 정보가 없다면 세포분열로 고깃덩어리만 만들어 질 것입니다. 인간의 과학이 무척 발달하였다고 합니다만 아직도 작은 동물 하나 만들어낼 능력이 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면 동물로서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인체라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두뇌 안에 인간의 기본 적인 소프트웨어도 갖추고 태어난다는 것이지요. 생존 활동을 위한 소프트웨어의 양은 얼마나 될까요? 현미경으로 겨우 볼 수 있는 티끌보다 작은 세포 안에 이처럼 어마어마한 정보가 들어 있다는 것이 인간의 상식으로는 상상이 되지를 않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렇게 태어난 인간이 수행 끝에 깨달음에 이르게 되면 온 세상의 참 모습을 알게 된다는 점입니다. 깨달음은 스승이 전해 줄 수도 없으며, 책 속에도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인간 내면에 들어있던 진짜 중요한 정보를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 깨달음 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티끌보다 작은 세포 안에 온 세상의 정보까지 들어있다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질량과 수량의 개념은 한 생각일 뿐이지요. 이런 생각에 이르면서 눈앞이 훤해졌습니다. 『반야심경』 한번 제대로 공부 한 적이 없는 무식쟁이의 눈에 법성게의 내용들이 단박에 들어왔습니다. 천년 저 넘어 의상대사께서 주신 경구가 죽비 소리보다 크게 마음을 울렸습니다.

김영택 (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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