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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 휴가를 떠납니까?

기자명 법보신문

이런 이야기를 읽었다. 어떤 사람이 낙타에게 물었다. “너는 오르막이 좋으냐, 내리막이 좋으냐?” 낙타가 대답했다. “오르막길이냐 내리막길이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짐이죠!”

사람과 낙타가 삶을 보는 관점이 같을 수 없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빨리 가려면 말을 타고, 멀리 가려거든 낙타를 타라”는 서양 격언이 있다. 사막을 오가며 교역을 했던 대상(隊商)들이 물건을 실어 날랐던 수단은 낙타였다. 사람들은 의례 짐과 낙타를 동일시하여 오르고 내리는 수고로움을 생각한 것이고, 낙타에게는 등에 진 짐이 관건이었다.

예부터 종교와 철학의 중심명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었다. 그렇다면 이 물음의 실마리를 동서양의 철인들은 어떻게 풀어갔던 것일까?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한 가지 특질은 ‘로고스(logos)’를 지녔다는 점이다. 이 개념은 학문적 전통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어려운 개념이기도 하다. ‘로고스’의 근본 의미는 ‘말’인데, 언어가 인간을 다른 생명체보다 뛰어나게 만드는 징표임을 인지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이성적인 사유능력을 교육하려면 우선 언어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언어능력이 인간을 인간이게끔 길러준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철학에서 인간의 교육이란 문제의 정의도 인간의 일반적이고 공통점인 ‘말하는 능력’, 즉 ‘로고스’의 함양에서 찾아내려 했다. 참고로 ‘로고스’는 ‘로곤 디도나이(logon didonai)’라는 관용적 표현에 등장하는 데, 독일어로는 ‘근거를 대다’라는 뜻이니까, 상호간의 대화나 자기의견을 표출하는 데 있어 논리적 근거를 대는 습관을 기르면 좋겠다.

인간의 지혜라는 것도 단순히 모든 것을 낱낱이 아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떤 백과사전식 ‘앎’보다는 자신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 줄 아는 능력을 가리킨다. 이 ‘행복’이 동아시아의 심리 일반적 의미로는 ‘즐거움’이다.
이 ‘낙감문화(樂感文化)’를 알아야 이 지역의 정서적 토대를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앎’은 실질적이고, 몸소 피부로 느끼는 것이고, 삶의 정서에 반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앎’이 ‘실천’에 병행하지 않고서는 삶은 생명력을 잃는다.

휴가철이다. 다른 종교와 달리 절집에는 ‘휴가’의 개념이 없다. 힘이 부치는 사람은 쉬어가는 것이고, 할 수 있다면 계속 가야한다. 이 미세하지만 향상일로의 실천이 ‘정진(精進)’이다. 로고스적 존재인 인간이 교육을 통해 학습하고 훈련하여 도시 공동체 안에서 탁월함을 보이는 것만으로 그칠 수 없는 것은 정신적 관조의 영역 때문이다. 일용할 양식을 얻는 활동적인 삶에서 쫓기지 않는 자유로운 영역의 시간이 바로 ‘휴가’이다.

이 과정에서 ‘학교’라는 명칭이 얻어졌다. ‘학교’를 뜻하는 라틴어 ‘스콜라(schola)’는 그리스어 ‘스콜레(schole)’의 파생으로 ‘여유’를 말한다. ‘게으름’이 아니라 인간에게 성취감을 주는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노동에서 자유로운 시간이라는 뜻이다. 경제적 안정이 없으면 삶의 여유를 누리기 어려운 이치가 자못 확연해진다.

이 나라 성인의 1/3이 일 년에 책 한권도 안 읽는다고 한다. 이런 민족에게서 무슨 희망을 찾을 수 있겠는가. 모처럼 가족과 함께 떠나는 휴가에 양서 몇 권은 가져가는 센스! 이런 휴가라면 ‘금상첨화’겠다.

법련사 주시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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