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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물웅덩이를 피한 사형수

기자명 법보신문

『코끼리를 쏘다』/조지 오웰 산문선/박경서 옮김/실천문학사

버스를 타고 지나다 무심코 차창 밖을 내다보는데 참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인파’나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묶어서 바라보면 뭐 그리 의미 있는 존재들은 아닙니다. 그런데 ‘대중’이라는 묶음을 풀어서 한 개인 개인을 짚어보다가 그들의 묘한 존재감이 느껴졌고, 그 느낌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저 목숨이 대체 왜 소중하다는 건가?”
왜 소중하냐고?
그건, 살아있으니까.
너무 진부한 문답인가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가 생명을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그는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 말고는 목숨이 소중하게 다루어져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 지구에 살아서 꿈틀거리기 때문에, 그 사실 하나만으로 그는 가장 귀한 존재이며 무조건 살려져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오래전에 읽었던 에세이 『교수형』이 떠올랐습니다. 『교수형』은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20대 청년 시절 미얀마의 형무소에서 힌두교인의 사형을 집행하면서 느꼈던 ‘어떤 목숨’을 담담하고 냉정하게 기술한 글입니다.

어느 날 아침, 사형수는 교도관들에 둘러싸여 교수대로 끌려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40야드 남짓 떨어진 곳에 서있는 교수대를 향해서 똑바로 걸어가던 사형수는 “여섯 명의 인도 교도관들이 그의 어깨를 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에 생긴 조그만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가볍게 옆으로 옮겼던 것”입니다. 40야드, 대략 40미터 앞에서 그의 목숨은 결딴이 나게 되었건만 그는 어마어마한 파국을 앞에 두고서도 물이 고인 웅덩이를 피했던 것입니다.

조지 오웰은 말합니다.“곧 사형될 사형수의 이런 행동은 이상했지만,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한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 사형수가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딴 데로 옮기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신비감, 다시 말해 생명이 한창 절정에 달했을 때 그 생명을 앗아가는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보았다.

이 사람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살아 있는 것이다.(중략) 그가 교수대 발판에 세워지고 사형이 집행될 10분의 1초의 그 순간에도 그의 발톱은 여전히 자랄 것이다. (중략) 한 정신이 줄어들면 그만큼 한 세상이 좁아진다.”

예정대로 사형은 집행되었습니다. 집행관들은 방금 끝나버린 목숨을 1백 야드 떨어진 곳에 뉘여 놓고 부질없는 대화를 나누며 히히덕거립니다. 그들은 무슨 말이라도 해서 산목숨을 강제로 깨버린,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저지른 죄책감을 달래야했던 것 같습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그 어떤 철학적인 명제나 과학적인 분석이 끼어들 수 없는, 사실이고 당위입니다. 그래서 존재하는 것, 목숨을 깨는 일은 벌어져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것만큼은 ‘무조건’입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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