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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변호사의 세상읽기]

기자명 법보신문

모든 존재는 입자가 모여 만들어낸 현상
겉으로 드러난 허상에 현혹되지 말아야

중복이 지난지도 벌써 열흘 정도 되고나니 매미소리가 한결 구성지다. 여느 해 이맘때와 마찬가지로 어김없이 매미며 잠자리 그리고 하루살이 등 여름 곤충들이 제철을 맞아 모습을 드러내고 활개를 친다. 너울어진 녹음아래 이들 곤충들이 소리하고 춤추면 여름은 바야흐로 복판에 온 셈이다. 녹음은 이제 짙푸르다 못해 오히려 검정색을 연상시킬 정도로 농익었고, 매미소리는 구성지다 못해 애절하게 들리기까지 한다.

잠자리나 하루살이들은 마치 제 세상을 만난 듯이 공중을 날고 있으니,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시간은 절로 간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더운 기운이 밀려와도 이들 여름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더위조차 잊는 수가 많다. 거기에 미풍(微風)이라도 곁들여주면 바로 상팔자가 된다.

그런데 생각하면 이들의 활기찬 소리며 날갯짓을 대할 수 있는 것은 고작 한 달도 채 못 되는 것이 보통이다. 사람은 이들의 소리나 날개짓의 참뜻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겉으로 들어난 모습이나 소리만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멋대로 이름 지어 말하는가 하면, 그 단명(短命)에 값싼 동정을 보낸다.

그러나 이들 나름의 세상이 있고, 그들 나름의 삶을 유지하다가 때가 되어 사라지는 것인데, 우리가 그 참된 삶의 모습을 잘 알지 못할 뿐이다. 우선 겉으로 들어난 점만 보더라도 매미는 보통 6~ 7년을 땅속에서 지내다가 지상에 나와 허물을 벗고 날게 되면 후대를 잇기 위한 짝짓기를 하고 산란을 하고는 곧 생을 마치게 되는 것이다.

하루살이 또한 물구덩이에서 2~3년을 보낸 후 성충이 되어 나는 것은 후대를 도모하기 위한 것뿐이라고 한다. 잠자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니, 이들이 복중(伏中)의 더위에 잠깐 지상에 나온 것은 그 종을 유지하고 번식시키기 위한 일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겉으로 들어난 것만으로 느끼고 판단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것은 그것의 단편일 뿐, 전체가 아님은 물론 실상도 아니다. 우리는 눈, 귀, 코, 입, 몸이라는 오관(五官)을 통해 밖의 존재라거나 소리나 맛, 남새 따위를 느끼지만, 그 느낌(受)이라는 것은 그때그때의 마음의 상태라던가 오관의 조건에 따라 한결같지 않고, 또 존재를 제대로 보지도 못한다.

우선, 우리가 본다는 것은 물체에 닿은 빛이 복사되어 우리의 눈에 들어옴으로써 그 물체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복사광(幅射光)은 우리 눈의 방향으로 반사된 것에 한하고, 나머지 것은 모두 다른 방향으로 빗나가거나 반대방향으로 튀기고 마는 것이니, 사람이 본다는 것은 겉모습 가운데에서도 일부일 뿐이고, 겉껍질에 가린 뒷일이야 더욱이 알 턱이 없다. 어디 그뿐인가? 모든 것은 잠시도 쉬지 않고 알게 모르게 변하고 있는 것이니, 우리 눈에 그 물건을 때린 빛이 들어오는 사이에도 이미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겉모습만 해도 이러하니 겉모습 너머의 본질이야 어떠하겠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일이다. 구태여 불가에서의 제법무아(諸法無我)라던가 양자역학에서의 객관적 실재(實在)의 부정을 들출 것도 없이, 모든 존재는 여러 입자가 모여 만들어낸 현상에 지나지 않고, 그나마 쉬지 않고 생주이멸(生住異滅)의 과정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니, 겉으로 나타난 허상만 보고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잡아함의 『지경(知經)』에서 “만일 눈에 대하여 분별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며, 끊지 못하고 탐욕을 떠나지 못하면 바르게 괴로움을 다하지 못할 것이요,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또한 같으니라. 여러 비구들이여!

만일 눈에 대하여 분별하고 알며, 끊고 탐욕을 떠나면 그는 바르게 괴로움을 다할 수 있을 것이요, 귀, 코, 혀, 몸, 뜻에 대하여도 만약 분별하고 알며, 끊고 탐욕을 떠나면 바르게 괴로움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며 바로 챙겨보고 바로 알도록 가르치셨다. 겉만 보고 겉으로 나타난 허상에 현혹되어 비틀거릴 일이 아니다.

이상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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