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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만다라]76. 붓다가 홀로지낸 까닭

기자명 법보신문

패를 지어 싸우는 어리석은 벗은 없느니만 못하다

홀로 살아감은 뛰어난 것
어리석은 자와 벗하지 말라
못된 짓을 하지 말라
숲 속의 코끼리처럼 욕심 없이 홀로 가라. 
                                         - 『법구경』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조계사 원심회 김장경 회장

부처님 당시 꼬삼비에 모여서 수행하던 비구들 간에 분쟁이 일어났던 일이 있었다. 이사건은 교단 분열의 시발(始發)이라고 기록하기도 한다. 사건의 발단은 경전을 암송하는 경비구(經師-Dhammadhara)와 율을 암송하는 율비구(律師-Vinayadhara)와의 사소한 언쟁이었으나 급기야는 그 제자들까지 합세하여 두 패의 비구들이 허구한 날 싸움으로 낮과 밤을 지새우는 일이 벌어졌다.

패 싸움 벌인 꼬삼비 비구들

부처님께서는 타이르시기도 하고 꾸중을 하시기도하면서 패싸움을 그치게 하려고 노력하셨다. 부처님의 간곡한 경책에도 불구하고 싸움은 날로 더해만 갔다. 꼬삼비 비구의 두 스승의 싸움은 제자들이 패가 갈라지고 따르는 재가신도마저 패를 갈라서 싸움을 계속하는 일이 되었다. 이에 부처님은 중생의 업이 다하지 않음을 아시고 꼬삼비를 떠나서 부근의 마을 숲에 머무셨다. 그리고 시비(是非)에 찌든 일상의 싸움을 멀리하고 고요히 수행 정진하는 공덕을 주위의 모두에게 설하시면서 숲속에서 3개월을 보내셨다고 한다.

어리석은 비구들이 싸우는 모습과는 정반대로 홀로 계시는 동안 부처님의 모습은 여유롭고 향기로웠다. 숲속에서 지혜로운 코끼리의 시봉을 받고 재치 있는 원숭이의 공양을 받으시면서 깊은 명상에 잠겨서 진리의 영역에 넘나드신 대자유인의 모습이 경전에 기록되어 있다. 이는 꼬삼비 비구들의 패싸움과는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부처님은 이 꼬삼비 비구들의 사건을 통하여 어리석은 자와 벗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남기신다. 때로는 우리 인간이 코끼리의 기품에도 따라가지 못할 때가 있다. 코끼리는 동물이면서도 깊은 숲속에서 홀로 명상에 젖어서 거닐기도 하고 슬기롭고 지혜 있는 동물로 비유된다. 언젠가 영국 BBS 방송국에서 동물 연구가와 함께 방영한 코끼리의 일생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다. 코끼리는 죽을 때가 되면 무리에서 벗어나서 혼자 유유히 숲속을 거닐며 죽음을 향하여 행진하듯 홀로 나날을 보낸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숲속에서 혼자 죽어간 동료의 유체를 발견한 코끼리가 남겨진 상아(象牙)를 긴 코로 들어 올려서 한참을 함께 숲속을 배회하다가 땅위에 내려놓고 또 다시 숲속을 걸어 나가는 장면이었다.

해설자의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마치 홀로 죽어간 동료의 죽음에 장송곡을 부르듯이 엄숙하게 애도하는 모습이었다. 동물에게도 죽음을 대하는 그와 같은 거룩함이 있다는 것에 큰 감명을 받은 방송이었다. 코끼리는 정말로 자신의 죽을 때를 알고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는 지혜를 가진 동물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욕심에 찌들어서 어리석은 자와 벗하며 보름을 지나간 달처럼 어두움만 더해간다면, 스스로 죽을 때를 알고 무리에서 벗어나 욕심 없이 숲속을 배회하며 죽은 동료를 애도해 주는 코끼리의 지혜만도 못하다는 깨우침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행위가 매 순간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깨어 있으면서 살펴야 한다.

자신이 쌓아올려서 스스로 갇혀 있는 장벽을 허물어 버리면 곧 바로 대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나라고 하는 집착과 내 것이라고 하는 탐욕과 칭찬과 비난, 성공과 실패, 그리고 나와 남이라고 하는 둘로 나누는 가치관으로부터 떨치고 일어서면 고요함과 자유와 그리고 소통의 길이 펼쳐진다고 부처님은 가르치고 계신다.

명상하는 코끼리만도 못해서야

그러나 모두가 이 이분(二分)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혀서 나만을 옳다고 주장하는 시비가 끊임없이 이어진다면, 그 싸움으로부터 털고 일어나서 숲속을 혼자 거닐면서 깊은 사유(思惟)로 자신을 바로 세울 것을 부처님 스스로 모범을 보이셨다. 우리가 오늘날 여래의 가르침을 따르지 못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인 탐욕과 허상에 찌들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숫타니파타』「무소의 뿔」에는 진정한 수행자는 혼자서 갈 것을 가르치고 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폭력을 쓰지 말고, 살아 있는 그 어느 것도 괴롭히지 말라. 또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기고,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증오와 원망이 생기나니 사랑과 미움을 다 놓아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숲속에서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도 말며,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집착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번 불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집착을 없애는 일에 게으르지 말고, 벙어리도 되지 말라. 학문을 닦고 마음을 안정시켜 이치를 분명히 알며 자제하고 노력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부처님의 말씀은 언제 읽어도 거룩한 진리이며 갈애를 소멸시키는 신선한 감로수임을 깨닫게 한다. 이 더운 여름에 또는 계절의 변화에 상관없이 항상 부처님의 경전을 가까이 하고 수행 정진하는 부처님 제자가 되기를 서원해 본다.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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