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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의 초원 몽골을가다] 1.유목민의 삶, 도시민의 삶

기자명 법보신문

윤회 순응하던 초원 등지고 게르 짊어진채 도시로 발길

「법보신문」은 8월 12일부터 17일까지 실시한 몽골 성지순례 기간동안 몽골 불교와 역사, 자연에 관한 특별취재를 진행했다. 본지에서는 몽골서 부는 기독교 바람 등을 격주로 연재한다. 편집자
 
초원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뜀박질을 시작할 무렵부터 하루 종일 가축을 돌보는 것이 일상이 된다.

한반도의 약 8배인 156만㎡에 이르는 땅을 가졌으며 아시아에서 다섯 번째로 넓은 나라. 끝을 알 수 없는 들판에 펼쳐진 초록 생명과 거친 모래바람이 머무는 사막이 공존하는 곳. 한 때 남자 인구의 30%이상이 스님이었던 불교 국가였으나 구 소련의 스탈린에 의해 3만 여명 이상의 스님들이 학살당했던 비극의 나라 몽골. 이곳에 깃든 생명들은 어지럽게 뒤엉켜 윤회의 굴레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순례 첫날 마주한 초원은 지루할 정도로 광활했다.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옛 수도 하르허린을 향해 남서쪽으로 5시간이나 쉬지 않고 달려도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초원, 초원 그리고 초원. 답답하기까지 했다. 간간이 스쳐 지나가는 게르(나무와 양털을 이용해 만든 둥근 모양의 몽골 전통 집)와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과 염소, 말 등 가축만이 심심한 순례자를 달랬다.

초원의 삶은 아름답고 고되다

“참 평화롭네. 여기 살면 자유롭겠다.” 순례자의 감상어린 말에 가이드 어트겅자르 갈(행복한 막내라는 뜻, 애칭 어기) 씨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렇지 않다는 거다. “수도 울란바타르에 사는 도시민 보다 시골에 사는 유목민이 더 바빠요. 가축을 돌보는 일이 아침부터 얼마나 할 게 많은데요.”

실제 몽골 유목민의 하루 일과는 새벽 미명이 어둠을 몰아낼 때부터 시작해 별이 뜰 때까지 쉬지 않는다. 아이가 뛰어 다닐 정도가 되면 그 때부터 자기 몫이 주어진다. 아침이면 어머니를 도와 가축의 젖을 짜야 하고, 가축 우리도 청소해야 한다. 또 땔감으로 쓸 마른 소똥을 모으고, 물이 귀한 초원에서 물을 긷기 위해 먼 곳까지 다녀와야 하는 것도 아이의 역할이다. 아침이면 어머니가 깨워주고 밥상을 차려주며 씻겨주고 옷을 입혀주던 순례자의 과거는 몽골 초원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여자의 경우도 삶이 지속되는 동안 고단한 하루는 계속된다. 한국사회와 같이 자식을 돌보고 당장 먹어야할 음식을 준비한다. 새벽같이 가축의 젖으로 수테차라는 따뜻한 우유차를 만든다. 영하로 온도가 떨어지는 겨울과 봄에 먹을 식량도 미리 준비해야하고 가축의 털을 깎거나 젖을 짜는 일 역시 여자의 몫이다.

게다가 의복을 만들거나 게르를 지을 때 필요한 천도 짜야 하는 것이 여자의 하루다. 그렇다고 성인 남자가 놀고 먹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작열하는 태양과 바람, 눈, 비 등 자연과 피부를 맞대고 있어야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축을 몰고 그늘도 없는 초원을 돌아다니며 풀을 먹인다. 밤이나 낮이나 늑대 등 야생동물로부터 가축을 지켜야 한다.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는다.

 
가축에게 풀을 먹이는 유목민.

80만 년 전부터 시작된 그네들이 일상은 마치 살아가기 위한 치열한 전쟁이었다. 초원에서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가 초원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람들. 비가 오기 전 비의 냄새를 맡고, 바람이 불어오기 전 기척을 감지한다는 그네들의 능력은 초원의 생태계에서 편입돼 살아가는 처절함 그 자체였던 것이다. 평화로워 보이는 초원에 덩그러니 동그란 게르 하나 놓여 있으니 세상 걱정 하나 없이 보인다는 순례자의 말은 이방인의 철없는 감상에 불과했다.

누구나 유목민의 삶은 계절 따라 정해진 초원으로 이동하는 순환적인 삶의 방식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묻자. 왜 일까. 본디 자연의 섭리는 순환이다. 굳이 불교 용어를 들자면 윤회다. 진리다. 물은 수증기로 화해 구름을 이루고 비를 내린다. 비는 다시 대지로 스며들어 초목의 생명을 잉태하고 가축과 인간을 기르며, 강과 바다를 이룬다. 강과 바다는 다시 구름이 된다. 생명의 원천은 돌고 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자연의 섭리에 기대어 사는 것 뿐이다. 그렇게 몽골 유목민들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해 사는 것이다.

허나 만약 이동을 하지 않는다고 하자. 초원은 깨지기 쉬운 유리와 같다. 인간이 조금만 손을 가해도 자연의 섭리는 틀어진다. 가축들은 먹이 부족으로 풀뿌리까지 먹을 것이고 그러면 초원은 1년도 되지 않아 황무지로 변한다. 그 피해는 바로 유목민들에게 돌아온다. 순환, 윤회라는 자연의 섭리는 생명과 직결돼 있었고 진리를 피부로 깨달은 그네들에게 이동은 절대적인 것이다. 실제 중국에 합병된 내몽골의 경우 한족의 초원개발과 몽골족의 정착농경생활을 강요당하면서 무분별한 지하수의 이용으로 초원의 사막화가 급속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도시 주변엔 빈민촌이 번져나가

그래서 물은 신과 동일시 여긴다. 생존에 필요한 수분을 가축들의 젖으로 보충한다고 해도 물은 모든 가축이나 인간에게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몽골 제국을 완성한 칭기즈칸은 자신이 만든 법전 예케 자사크(Yeke Jasak)에서 거듭 물의 소중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어긴 자는 목숨을 잃기도 했다. 몽골 유목민들이 하루에 소비하는 물의 양이 한 가구당 30리터 내외란다.

그러나 몽골에 민주주의의 바람이 불고 이후 수도 울란바타르에 인구가 밀집하면서 다수의 몽골인들은 자연의 섭리를 버리고 있다. 약 300만명의 인구 중 100만명이 울라바타르에 몰려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언저리에는 서울 시내 판자촌처럼 게르촌이 무성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버스 노선도 거의 없어 물품을 구하러 3시간씩은 걸어 다니고, 택시들도 게르촌 주변에는 강도가 많아 잘 가지 않는다는 어기 씨의 말에 씁쓸함이 혀끝을 맴돌았다.

7년 동안 몽골 고원을 돌아다녔던 한성호 씨가 묘사한 유목민들의 말 젖 짜는 태도는 눈물겹다. 오죽했으면 ‘경건한 종교의식’ 같다고 했을까. 유목민들은 처음으로 출산을 마친 말 젖을 짤 때 말에 대한 존경과 박애 그리고 연민을 표한다. 첫 젖을 짜는 어미 말에 붙은 모든 진드기를 떼어 주고 먼지를 깔끔히 털어내 몸을 깨끗하게 닦아준다.

그리고 말 머리를 해가 뜨는 동쪽에 두고 말의 엉덩이를 쓰다듬고 절을 세 번 한다. 이어 하닥(푸른 천, 하늘의 색과 같은 푸른색을 숭배한다)을 말머리에 비비며 푸른 하늘이 땅을 보살피고 땅의 신들은 말을 보살펴 영원한 젖의 풍요가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만약 말이 잉태하지 않고 우유가 나오지 않는다면 망아지뿐만 아니라 유목민도 굶어야한다. 유목민들은 말 젖으로 아침마다 수테차를, 마유주라는 발효주를 만들어 물처럼 마시기 때문이다. 말의 젖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식량을 얻는 자들이 말에 대해 경건한 감사와 염치를 다하는 것이리라. 

 
초원의 어머니와 아이는 수테차를 끓이기 위해 아침부터 가축의 젖을 짠다.

몽골까지 와서 안 먹어 볼 수 없기에 사다 마신 마유주는 새콤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말 냄새가 물씬 풍기며 혀를 자극하는 강한 맛에 인상을 찌푸리자 어기 씨가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며 웃는다. 여름이면 스님들도 즐겨 마신다는 마유주의 첫 경험은 야쿠르트보다 더 시큼한 맛과 진한 말 냄새 탓에 얼굴에 심한 주름만 남겼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사는 그네들을 보면서 순응은 고독한 인내를 수반한다는 것을 알았다. 추위와 배고픔, 먼 거리의 이동 등등. 하늘과 땅을 숭배하며 자연에 기대어 살다보니 샤머니즘이 발달한 것도 그네들의 생활에서 비롯됐으며, 샤머니즘과 합일된 불교 인구가 90%달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유목 생활이라는 고독한 인내 속에서 영혼의 오아시스를 찾으려는 몽골인들. 그네들의 오아시스를 찾아 몽골불교에 경건하게 첫발을 내디딘다. 어서 모습을 드러내라, 최초의 감동을 붙잡겠다.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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