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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 양변의 덮개

기자명 법보신문

며칠 전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사랑을 위하여 까치와 까마귀가 오작교를 만들어 일 년에 한 번 뿐인 만남을 주선하는 민족 고유의 발렌타인데이인 칠석이 지나갔다.

절에서는 수명장수와 자손 창성을 바라는 불공을 올리고 백중맞이 기도를 함께 입재한다. 아침 일찍 아랫마을에서 노보살님들이 올라왔다. 지난 칠석에 왔을 때는 어르신 병수발 때문에 너무나 힘이 든다고 관세음보살님전에 울면서 하소연을 했던 노보살님의 밝은 모습을 보니 너무나 반갑다.

저녁이 되니 늦더위의 열기가 서서히 누그러지고 귀뚜라미의 장엄한 합창은 소나무에 걸려 있는 초승달과 어우러져 무생곡을 타고 있어 더없이 아름다운 밤이다.

하늘에는 은하수가 보석을 깔아 놓은 듯 반짝거리고 어느덧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만남이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이처럼 계산이 없는 남녀의 지극한 사랑에 있어 남자는 더없이 안온한 선정인 여자를 만남으로써 본래 남녀가 없는 불성에 계합하게 된다. 또한 여자는 거룩한 지혜인 남자의 만남을 인연하여 정혜쌍수를 이루어 비로소 남녀가 없는 불성에 계합하며 비남비녀의 원만한 상호를 갖추고 한량없는 보살행을 실천하여 이웃들을 자비로 섭수하게 된다. 그래서 남녀의 양변 덮개가 떨어지고 서로가 선지식이 되어주고 도반이 되어 지극한 성품에 계합하는 것이 불교적인 칠석의 뜻 깊은 의미가 될 것이다.

얼마 전에는 높이 솟아올라 우주로라는 지명의 뜻을 가진 고흥 나로 우주센터에서 우리 땅에서 최초로 우주 발사체를 쏘아 올리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마치 출가하여 처음 삭발을 했던 때의 환희심과 애틋한 슬픔이 교차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우주 법계가 오직 한 마음이라고 했는데 출가하여 마음을 밝히는 대장정을 떠나는 심정이나 나로호가 우리의 꿈과 희망을 싣고 우주로 출발하는 것과 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심명에서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나 오직 사랑하고 미워하는 간택심을 꺼릴 뿐이다”라는 말처럼 양변의 덮개를 벗어나 본래 공하여 둥그런 마음의 공전궤도에 진입하기가 참으로 간단하지가 않다. 그것은 마음이 본래 부처이며 우주가 바로 마음임을 믿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손오공이 아무리 멀리 날아가도 결국에는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말은 우주법계가 일심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로호는 양변 덮개라는 무명의 깊은 업력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공전괘도 진입에 실패하였다니 더욱 애틋하고 슬픈 마음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곱게 길러 시집보낸 딸이 하루도 못살고 죽어버린 꼴이라고 자조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대가 컸는지 짐작이 되지만 그 과정에서 고생한 과학자들의 쓰린 마음도 함께 헤아려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문(空門)에 들어왔지만 도중에 좌절하고 포기하여 마음을 끝까지 밝힌 사람들은 많지가 않다. 조주스님께서도 30년을 오로지 잡된 마음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민주와 인권 평화를 위하여 한 평생 헌신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서거로 우리 사회에 바야흐로 화해와 통합의 기운이 솟아오르고 있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의 대립과 남북한의 줄 타는 이념 대립은 끝없는 혼란과 불안의 요인이 되었다. 이제 해묵은 양변 덮개를 아무런 조건이나 자존심 없이 벗어버리고 서로 화해하고 통합하는 우주시대를 활짝 열어가야 할 것이다.

밤은 으슥하니 깊어 더 없이 고요한데 국적 없는 귀뚜라미 울음소리 귓가에서 한량없는 묘용을 나투고 있다.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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