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마음에 남은 경구] 서울대명예교수·시인 오세영

기자명 법보신문

내 시작(詩作)의 금과옥조

“무릇 세간의 작용이 발생하는 것은 모두 아집에서 생긴다. 자아에의 집착을 제거하면 세간의 작용은 일어나지 않는다.”-『화엄경』 제 22장 「십지품(十地品)」-


경전엔 많은 좋은 말씀들이 있지만 시인으로서의 나는 이 중에서도 『화엄경』에 있는 위의 경귀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이야 말로 시창작의 본질을 설파해주는 촌철의 비의(秘意)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내게 있어서는 그렇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시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출하는 것이라 믿는다. 실제 그런 태도로 시를 쓰는 시인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는 옳은 생각일까. 시는 그것이 무엇이든 일차적으로 어떤 진실에 대한 이야기이어야 할 터인데 ‘생각을 품고 있는’ 주체 자체가 과연 진실한 것인가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께서 가르치시기를 제법무아(諸法無我)라 하지 않았던가. ‘내’가 없는데 어찌 내 안에 품은 그 생각이나 감정이 진실일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언어로서는 진실을 지시할 수도, 전달할 수도 없다 하였거늘….

그러므로 결론은 이렇게 된다. ‘나’라는 주체는 없다. 고로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진실은 내가 없는 상태 속에서의 어떤 것이다. 그 어떤 것이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무아(無我)의 경지에 든 어떤 깨달음이다. 그렇다. 무아의 경지에 든 어떤 깨달음이 진실이라면 진실을 지향하는 한시란 그것을 언어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 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본질적으로 불교의 경전은 모두 시적(詩的)이며 모든 위대한 선사의 깨달음은(게송이 그렇듯) 시의 형태로 진술되지 않았던가. 오늘날 우리들이 통속적으로 선시(禪詩)라 부르는 바로 그것 말이다.

그러므로 시는 ‘내’가 쓰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 속에 든 것을 표출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시는 내가 없는 상태 속에 (쓰는 것이 아니라)쓰여지는 것이다. 그것은 무아의 산물이다. 무아의 상태가 되어 어떤 절대 자유의 경지에 도달할 때 홀연히 도래하는 어떤 밝은 빛이다. 시인은 다만 그것을 언어로 그려내는 일을 담당할 뿐이다.

따라서 시는 시인이 쓰는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 제법이 쓰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를 쓰는 작업은 무엇보다 일상의 자아를 버리고 참다운 자아를 찾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인은 우선 일상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나아가서 현상의 ‘나’ 즉 가아(假我)나 실아(實我)를 구성하는 여러 인자들을 버린다. 그리하여 의식의 순수 상태로 진입해야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이제 시인은 자의식을 넘어서야 한다. 내가 있다는 의식, ‘나’로서 생각하고 사유하고 느낀다는 의식의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 있으면서도 실제 없는 나, 다시 말하자면 무아(無我)의 경지에 진입해야 한다. 그 순간 시인에겐 홀연히 깨우치는 그 어떤 것이 도래한다, 그것을 시인은 언어로 받아 안아야 하는 것이다.

아니 하이덱커에 의하면 존재가 무(無)로 환원된 어둠의 세계 속에 돌연히 비치는 이 찬란한 광휘(光輝)는 언어 이외의 어떤 다른 것으로는 현현될 수 없다고 한다. 이 언어는 이미지, 비유, 상징의 언어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시라는 것이다. 경전에서도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던가. “모든 지혜 있는 자는 비유에 의해서 깨달을 수 있다”(『화엄경』<비유품(譬喩品)> 제 3)

물론 앞서 제시한 바 『화엄경』의 ‘자아의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말씀은 시창작에 관한 가르침은 아니다. 그것은 생사의 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시인으로서의 나는 그것을 항상 내 시작의 금과옥조로도 삼고 있다.

오세영(서울대명예교수.시인)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