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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만다라] 79. 윤회의 뿌리

기자명 법보신문

지혜를 키워 악을 제거함이 선행의 첫걸음

나무가 잘려 나가도
뿌리가 깊으면 새움이 돋아나듯
욕망의 뿌리를 뽑아내지 않으면
생사의 고통은 자꾸만 되풀이 된다.
                                      - 『법구경』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조계사 원심회 김장경 회장

얼마 전 소나무 약 100그루를 선물로 받았다. 처음 소나무 100그루라고 해서 심을 장소가 없다고 사양했지만 그 지인은 웃기만 할뿐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소나무 어린 묘목 100그루를 심은 화분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어린 묘목은 갓 씨앗에서 깨어난 듯 여리고 사랑스런 모습이 어린 아기와 같다.

이 나무가 커서 천년을 버티고 서있을 낙락장송이 될 것을 생각하면 신기하기 그지없다. 씨앗 하나가 싹을 티우면 점점 소나무로 자라나서 춘하추동에 솔바람을 전하고 소나무의 기상을 천하에 자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린 묘목은 아직 어린아이와 같아서 긴 장마에도 견뎌내기 어렵고 여름의 불꽃 더위에도 쉽게 말라 타버리고 만다. 벌서 몇 그루가 생명을 잃고 마른 묘목이 되어버렸다.

낙락장송도 어린 씨앗서 시작

오늘 소나무의 어린 묘목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작은 씨앗이 큰 나무와 인과관계에 놓여있음이 새삼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다. 세상에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어리고 여린 소나무의 묘목이 장대한 낙락장송의 모습임을 지인의 선물을 통하여 눈앞에 펼쳐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화분에 심어놓고 어린아이를 돌보듯 바라보고 있지만 곧 소나무 100그루에 걸맞은 빈 터가 있어야할 것이다. 빈 터라는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소나무 100그루도 뿌리 내릴 공간이 없어서 거룩한 소나무로 성장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시시각각 모습을 변해 가는 데에도 원인이 있고 조건이 있으며 그로부터 결과를 이루어 간다. 현상에 보이는 사물도 그렇거니와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는 더더욱 원인과 결과가 연쇄 고리가 되고 사슬처럼 얽어 메여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부모와 자식의 연결고리가 그 단적인 예일 것이다. 모습도 같고 성향도 같으면서 한 지붕 밑에서 희로애락하면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관계는 이와 같이 작은 원인으로부터 싹이 터서 점차로 선의 인연을 맺어가든지 아니면 악의 인연을 맺어가게 된다. 나와 남의 관계도 그렇고 나 자신의 생성 변화의 전개도 그와 같다.

오늘 나 자신에게 나쁜 악업의 인연이 싹트는 조짐을 알아차렸다면 풀뿌리를 뽑아버리듯 악업의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여기에서 ‘알아차림’은 곧 지혜를 의미한다. 나 자신이 악한 방향으로 행위하고 있음을 알아차림은 지혜가 활동을 시작한 증거이며 지혜의 힘이 악업을 이기는 것은 곧 선한 행위에 나아가는 첫걸음이 된다. 욕망의 뿌리를 알아차리고 뿌리를 뽑아내는 지혜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미 욕망을 제거하고 크나큰 자비의 덕행에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알아차림과 바로 실천에 옮기는 용기는 끝없이 이어지는 삶의 굴레를 단숨에 방향을 바꾸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된다. 스스로 좌절하고 앉아서 고통만을 호소한다면 자신의 삶은 고통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고통의 원인을 살피고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나서는 것이 바로 고통의 풀뿌리를 단숨에 제거하고 새로운 삶을 약속하는 것이 된다. 헤어나기 어려운 중독성의 일상에서 풀뿌리를 뽑아버리듯 한번 땅을 짚고 일어서 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끝없이 되풀이 되고 있는 생활의 타성으로부터 털고 일어나는 지혜가 요구된다.

눈에 띄는 즉시 악업 뿌리 뽑아야

위의 『법구경』 게송은 「집착」 또는 달리 번역하여 「애욕의 장」에 설해진 게송이다. 인간이 욕망에 물들고 애욕에 젖어서 끝없이 생사윤회에 헤매고 있는 모습을 경책하는 장이다. 게송을 설하신 인연담에 의하면 게송의 주인공은 열 세 번의 생을 바꾸어 태어나면서 윤회의 삶을 이어갔다고 한다.

때로는 동물의 몸으로, 때로는 고귀한 신분의 여인으로 태어나면서 욕망의 노예가 되어 고통의 흐름 속에서 윤회했다. 욕망의 물결은 끝이 없어서 풀뿌리처럼 질기고 칡덩굴처럼 무성하게 자란다. 세상에 만연해 있는 하찮은 쾌락에 노예가 되면 생사의 고통은 끝없이 이어진다는 경책을 설하고 계신다.

그러나 이 생사의 고통을 어떤 누가 악의적으로 만들어서 나에게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매일 나 자신의 일상 속에서 내가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두려운 것이다. 내가 잘못하고 나 자신이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이 악업의 풀뿌리를 부처님의 가르침에 힘입어서 뽑아 버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바로 좌절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바로 자신의 악업을 고치는데 있는 것이다. 풀뿌리를 뽑아 버리듯 말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또한 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항상 지혜의 힘으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살펴서 악업의 고리를 연결시키지 않도록 정진하는 것이 수행의 종교 불자의 힘인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버지를 살해하고 자신이 저지른 죄업에 전율하는 아사세왕에게 악업의 고리를 끊는 것은 바로 참회하는 마음이라고 타이르시는 경문이 있다. 이미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깊은 참회의 마음이 있을 때 악업의 고리는 끊어진다는 말씀이다. 오늘 풀뿌리를 뽑아버리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 참회의 마음으로 악업을 이어가던 행위를 버리고 선업으로 방향을 돌리라는 경책임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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