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지하가 쓰는 화엄개벽모심의 길] 2. 거대한 변화 속에서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 인류문명사대전환 시대의 문제에 답할 때

참으로 이시기에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인가? 이 가을. 이른바 ‘가운데도 아니고 양 가장자리도 떠난(非中離辺)’ 당파(鐺把), 또는 그것이 안팎 여섯 갈래쯤으로 찢어지고 겹치는 겹당파, 그리고 그것이 주변 동아시아·태평양 및 전세계의 복합적인 정세나 생태위기, 기후혼돈, 이상한 바이러스와 괴질(怪疾)의 가능성, 산불, 지진, 해일, 토네이도, 융기, 침강과 생명체의 괴변 따위와 겹쳐지는 그야말로 대혼돈(Big Chaos)에 곁들여 문화예술과 감수성의 치명적인 타락과 퇴폐. 윤리의 실종.

여기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나는 이미 여기에 세 가지 명제를 제기한바 있다. 화엄개벽의 선(禪)적 실천으로서의 지극한 모심, 흰 그늘의 미학에 따른 아시안 네오·르네상스, 그리고 인격-비인격, 생명-무생명 등 일체존재를 우주공동 주체로 들어올리는 모심의 세계문화대혁명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심이며 그 모심의 주체인 여성과 어린이다.

인류는 이제껏 어찌 보면 한가하게 낮잠을 자면서도 세상을 그럭저럭 편하게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인류를 공격하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기운(氣)이며 생명(菌)이며 정신(靈)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선 사람이 아니다. 즉 인격체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활동인자다.

우리는 수 천년 역사를 통해 오직 인격체로서의 사람을 상대로만 싸워왔다. 기운, 생명, 정신 그 자체를 대적해서는 단 한번도 싸움다운 싸움을 싸운 적도 없거니와 싸워서 이긴 적은 더욱이 없다. 그리고 싸움 뒤 가슴을 열고 그 적에 대한 피나는 앎을 강화시켜본 일도 없다. 인류의 이 경우 유일한 자랑인 생명과 우주에 대한 과학은 솔직히 말해서 극히 제한된, 도구적 필요에 따른, 참으로 한가한 탐색에 한정된 것이었다.

인간은 아직까지도 제 몸 속에 어떤 우주생명학적 질서가 살아 있는지도 잘 모른다. 우선 우주생명이나 우주생명학이란 말 자체가 어느 나라 언어 속에도 아직 없다. 과학용어로서는 더욱이 없다.

인간은 우주에 대해서도 그저 ‘블랙·홀’ 같은 시커먼 붕괴나 해체현상밖엔 익숙하게 알지 못한다. 최근에 압도하기 시작한 ‘화이트·홀’ 같은, 우주공간에 서식하는 물이나 생명의 존재와 같은 긍정적 지표가 나타남을 그저 생소함이나 놀라움 속에서 비공개, 공개유보, 반공개와 같은, 전혀 비과학적인 좀스런 태도로 대응하고 있는 정도다.

생명 내부에서도 예컨대 피부피하지방질촉성 박테리아 속에 뇌신경세포가 살아 활동한다는 분자생물학이나 뇌과학 방면의 놀라운 발견들, 각종 생명체들의 관념능력방면의 재진화와 소멸되지 않는 항구적 생명체들의 줄지은 등장 따위에 대해 전혀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과학 철학적 대응을 못하고 그저 지리멸렬할 뿐이다.

태양흑점이 80일 이상 저미한 활동을 보이고 태양력 자체의 주기가 불규칙해지는 싸이클 붕괴현상을 빤히 보면서도 그 원인이 해와 대척적인 주기적 생성활동을 하는 달의 강력한 상승작용 때문이라는 견해를 감히 내세우지도 못한다. 다시 말하면 BC 전후한 율리우스역(曆)이나 그레고리오 역은 항구불변한 태양계 중심의 법칙일 뿐 그 변경 가능성은 생각할 수도 없다는 식이다. 그러한 그들이 어떻게 천동설과 천원지방의 무서운 바다에서 지동설의 세계로 기어 나왔는지 이해를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서양은 이제껏 동아시아 외면
동양인조차 자기네 사상 무시
서구 편향 짝퉁 지식인이 문제

갈릴레오는 과학자가 아닌 마법사였던가?
인류는 참으로 이제야말로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자기의 앎의 실체와 삶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몸서리치도록 확실히 깨달아야 할 캄캄한 절벽 앞에 부딛친 것이다.
그들은 이제껏 동아시아를 외면해왔던 것이다.

서양인들 이야기다.
그러나 동양인들 자신마저도 부분적으로, 또 때때로는 동양을, 특히나 동아시아를 어떤 특수한 부분 이외에는 철저히 외면할 뿐 아니라 그 사상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해왔고 또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그들이 서양인이건 동양인이건 그런 그들이 과학이니, 신이니, 자유니, 진리니, 지혜니, 부처님이니를 참으로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나아간다.

나는 수년 전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던 중 하바로브스크와 연해주 근처에서 그곳에서 발간되는 한 영자신문에 실린 기이한 그곳의 기후관계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은 2년 내지 3년 간격으로 그 근처의 기후가 겨울에는 평균 영하 5도 정도, 여름에는 평균 섭씨 15도 정도로 온화하면서 서늘한 날씨로 거의 완전히 바뀌고 있는 현상을 지적한 기사였다. 그리고 그런 간격이라면 앞으로 전적인 기후변동이 가능하다는 예측마저도 싣고 있었다.

이미 김일부 정역에서 올해 기축년 7월 22일 동아시아 대일식 때에 일어날 대윤초 즉 태양력 중심의 365일 1/4의 윤달이 없어지고 음력중심 360일의 무윤력(無閏曆) 즉 정력(正曆)이 선다는 일대 기후변화와 함께 동지·하지 중심의 혹독한 추위·더위가 아닌 춘분·추분중심의 서늘하고 온화한 유리세계(琉璃世界) 4천년이 다가오는데 그 조짐이 사실상 동아시아 일부 지역에 미리 나타날 수 있음을 읽어서 이미 알고 있었던 터이다.

그런데 그 직후 동서양지식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했을 때 그것을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고사하고 도리어 날더러 없는 사실을 만들거나 거짓말을 한다는 식으로 공격하는 것을 목격했다. 참으로 껄껄 웃음밖에는 안 나오는 코믹한 일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지식인이라니!

동아시아인이면서도 동아시아에 대한 과학적 인식 따위와는 담을 쌓은 짝퉁 지식인들!
그런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바로 올해. 그러니까 바로 한 여름철인 지금의 얘기다. 동해안이 내리 저온상태다. 왜 그런가? 온통 섭씨 35도 이상으로 매일 매일이 온난화타령 일변도인데도 왜 동해안은 그 모양인가?

이미 신문은 그것이 오오쯔크해 바다 속의 ‘기단(氣團)’ 즉 ‘공기덩어리’가 현저히 한냉해져서 그 영향을 받는 동북방 아시아 거의 전역이 한여름에 비교적 서늘해진다는 것인데, 그 기사를 봤는지 안 봤는지 모르나 동해안 저온은 그저 일시적, 잠정적이며 곧 평균적 온난화로 돌아간다고 우기며 침을 튀기는 것이다. 강원도청의 높은 간부가 그 모양이다. 또 곁에 서 있던 한 예술가이며 대학 교수를 하는 지식인 한사람까지도 내 말을 ‘도저히 못 믿겠다’고 한 술 더 뜬다.

모두다 거의 예외 없이 이 모양이다.
신문은 분명 오오쯔크해의 ‘기단’ 현상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상당히 지속적인 변괴라고 보도했는데도 그런다.
이유는 무엇일까?
비겁이다.

신문을 안볼리는 없고 사태 자체를 외면하는 타고난 비겁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서양쪽 일반화된 지식이나 상식 이외의 현상은 동아시아에서 뭐라 하든 안 믿는다는 것이다. 우선 주장은 그렇지만 그것도 두고봐야 알 일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과연 서양쪽 과학지식을 믿으면 자기네 삶의 안정성과 우주나 지구의 끄떡없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인가?
사실은 지금의 현실에서 그 반대 아니던가?

서양쪽 과학이야말로 ‘화이트·홀’ 계열의 긍정적 지표들. ‘그린·포플러’나 ‘옐로우·보우넛’, ‘블랙·헷지’ 따위를 비공개, 공개유보, 반공개하는 비겁을 다반사로 저지르고 있는데도 그런 태도를 정당한 항속적 진리추구의 자세로 보고 꽁무니 쫓는 것이 또한 병신육갑이 아니고 무엇인가?
욕이 너무 심한가?
빨리 해결해야한다는 독촉장일 뿐이다.
왜?

문명의 중심 東으로 급속이동
불교가 자기사상 상승시킬 때
화엄개벽이 참다운 삶의 길 돼

서양지식인, 그것도 과학자들일수록 동아시아를 우습게 여긴다. 마르크스의 저 유명한 말씀 ‘아시아적 생산양식’ 타령은 지금까지 백여 년을 지속해온 진리중의 진리이고, 지금도 역시 프랑스 유학으로 진리를 완전 터득했다고 자부하는 유명한 한 여성 서구파는 가라사대 ‘나는 아직도 민족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잘 모르겠다’고 도무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공언하고 있는 상태다.
그것이 옳은가?
만약 옳지 않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이미 유럽이나 미국에 동풍(東風·EASTTURNING)이 불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다만 그 인구가 소수일 뿐이다. 그러나 항상 새로운 일은 소수 속에서 일어나는 것 아니던가.

불교나 참선 붐은 누구나 아는 일이고 주역, 동북방 샤마니슴, 풍수학, 노자, 장자 등은 날이 갈수록 대유행이다.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이다. 문명사의 중심이동이 이젠 화안히 눈에 보일 정도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과학은 서양이고 신비주의나 인문학은 동아시아라는 이분법이 아직도 문제이고, 그렇게 서양과학을 맹신하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서양과학 쪽의 극히 최신 생명 발견·발명이나 최근 우주관찰의 지표나 기록들은 도무지 캄캄인데다가 또 나아가 동아시아 전통과학이나 개벽학 등과 연관된 서양쪽 증거능력 표현들 따위에 대해서는 거의 체질적으로 눈을 감아버리거나 고집스럽게 저항하는 것이 지금 여기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내노라하는 지식인, 종교인, 교육자와 지도자들 일반이다.

어느 자리에서다.
일본 분자생물학계의 거의 20년 전 발표인 뇌세포를 가진 피하지방촉성 박테리아 ‘산성(酸性) 쎈트라우볼’이 재작년 영국 네이처지에 실린 마이클·위팅의 보고서 ‘재진화(re-evolution)’에 의하면 곤충 겨드랑이에 새로이 돋아나기 시작한 날개 속에 다량으로 함유돼 있다는 점을 지적한 린·마굴리스 여사의 논평문 ‘내부공생(內部共生)도 재진화하는가?’에서 이 현상이 곧 ‘만물해방’ 또는 ‘세계가 세계자신을 인식하는 대해탈’의 과학적 복음이라고 칭송한 여사의 말을 강조한 내 발표를 분명히 귀로 듣고 난 뒤인데도 어느 화엄학 전공의 머리 깎은 비구니 학자 가라사대 ‘중생의 고통은 변함없이 근본적인 어리석음 때문이다’라는 아득한 옛날부터 줄기차게 써온 전통불교의 고정 메뉴를 되풀이하는 것을 들었다.
말이 되는가?
당연히 고민해야만 되는 것 아닌가?

작년인가. E채널의 ‘세상에 이런 일이…’란 프로그램에서는 고양이가 병든 강아지를 안마해주고 닭이 고양이 새끼를 안아 기르는 씬 들이 나온다. 코끼리가 사람 말을 열두 마디씩이나 흉내내는데 그 소리를 분석한 파동학자는 인간 언어의 파동과 너무 흡사하니 코끼리의 뇌세포를 정밀 조사해야 된다고 결론 내리는 것을 또한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시골 노인들은 오히려 이런 사태를 두고 천지개벽 이후 처음이라고 놀라는데 수의과 의사는 도리어 ‘안마’를 ‘할킴’이라고 폄하 하고 있었다.

‘안마’와 ‘할킴’이 같은 것인가?
중생은 내내 어리석기만 한 것인가?

생명계 내부에서 알게 모르게 무엇인가 달라지고 있다면 거기에 준해서 불교나 선(禪)이나 동아시아의 전통사상도 오히려 몇 단계씩 펄쩍 뛰어 오르며 지식체계와 단위들을 상승시켜야 마땅한 것 아닌가!

경락학을 미신이라고 비웃던 서양의사가 침·뜸의 치유효과를 보고 나서 입을 쩍 벌리는 것이나 안마를 할킴이라고 우기는 수의과 의사 못지 않게 ‘어리석은 중생’, ‘모든 것은 애초부터 부처님 말씀 안에 다 들어 있다.’ ‘공자로 세계 통일하자’ ‘주역이 최고의 변증법이다’ 운운하는 짝퉁 짓이나 무엇이 크게 다른가?

문제는 뿌리 깊은 비겁과 게으름이다. 뭐든 편한 것만 찾는 버릇! 그것이 다름 아닌 어리석음 아닌가! 이런 점들부터 철저히 극복해야만 화엄개벽이 정말로 현대인간, 현대지구, 현대중생의 참다운 삶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