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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인정사정 보지 않는 우리 사회

기자명 법보신문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홍세화 지음/창작과 비평사

똘레랑스-아시다시피 ‘관용’이라는 프랑스어입니다. 관용(寬容)이라고 하면 ‘너그럽게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이에 해당하는 프랑스어 똘레랑스(tolerance)는 그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프랑스 말 사전에는 “똘레랑스란,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뜻한다”(289쪽)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 홍세화씨는 이것을 좀 더 자세히 풀어줍니다.
“‘당신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과 행동이 존중받기를 바란다면 우선 남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과 행동을 존중하라.’ 바로 이것이 똘레랑스의 출발점입니다. 똘레랑스가 강조되는 사회에선 강요나 강제하는 대신 토론합니다. 아주 열심히 토론합니다.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그러다 벽에 부딪히면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섭니다. 강제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습니다. 치고받고 싸우지도 않습니다. 또 미워하지도 않으며 앙심을 품지도 않습니다.”

프랑스가 똘레랑스를 미덕으로 내세우는 나라라면 우리나라는 정(情)을 중요시하는 나라입니다. 정을 설명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그만큼 논리적으로 수사학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 ‘정’을 모르고 사는 것은 어쩌면 가장 불행한 삶의 방식일 수도 있다는 것이 ‘한국의 정’입니다. 심지어는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것이 한국의 ‘정’이요, 갈등에 대처하는 한국식 방법인 것입니다.

똘레랑스가 상대방과 생각이 다를 때 설득하려고 토론하다가 어느 순간 ‘다름’을 인정하고 물러선다면 한국의 정은 그와는 조금 다릅니다. 우선 품어주고 잠시 감싸줍니다. 그러고 난 뒤에 문제의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설 때까지 기다려주는 방식을 선호해왔습니다.

이렇게 똘레랑스와 정이 다르기는 하지만 공통점을 든다면, 그건 나와 다른 상대방을 미워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생각, 다른 말을 하는 상대방을 미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느 결엔가 ‘다른 생각’=‘미워해야 할 자’, ‘한곳에 같이 살지 못할 자’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아이돌 스타 한 사람이 몇 해 전에 인터넷으로 친구와 주고받은 글이 논란이 되어 끝내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과 글까지 올렸건만 거의 증오에 가까운 인신공격성 반응에 그는 더 이상 발붙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의 오래전 글이 그를 그토록 미워할 이유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똘레랑스는 그만두고라도,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관대함마저도 사라져버린, 인정사정 보지 않는 각박한 땅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싶어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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