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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 무쟁삼매

기자명 법보신문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가을밤은 온통 소리의 바다로 넘실거리고 있다.
온갖 풀벌레들이 저마다 자기의 빛깔과 곡조로써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있지만 걸림 없이 어우러진 장엄한 합창은 마치 관음의 교향곡이다. 모든 소리의 주체들이 낱낱이 텅 비어있고 자기를 들어내지 않아 일체 상이 끊어졌다. 또한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들으니 본래 하나의 소리도 찾을 수 없어 일체 다툼이 사라진 무쟁삼매를 이루고 있다.

그 동안 밤낮없이 들려오던 귀에 익은 곡조가 바뀔 것 같지 않았지만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어느덧 변하고 말았다. 이제 바람에 사각거리는 파초 잎에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로 넘어가고 있어 신비스럽지만 듣는 성품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고 들고 남이 없으니 더없이 그윽하기만 하다. 이것이 관세음보살이 깨달음에 들어간 인연이기 때문이다.

파초는 속이 텅 빈 덕이 좋아서 옮겨 심은 지 벌써 몇 해가 지났다. 올해는 거름까지 수북이 해주었더니 더욱 무성하게 자라 지붕에서 달아오르는 열기를 식혀주어 참 좋았다. 바람에 잎사귀가 꺾이고 나면 다시 널따란 새 잎이 금방 밀고 올라오니 아무리 뜨거운 폭염이라도 비껴가고 말았다. 이처럼 텅 빈 성품에는 본래 더위와 추위가 없음을 설하고 있는 파초가 덤으로 가을비에 싱그러운 곡조를 타고 있으니 삼매가 더욱 현전하고 있다.

반딧불이는 먼 하늘에서 내려온 작은 별인양 빛과 어둠을 함께 나투면서 다툼이 본래 없음을 끝까지 요달해야 한다고 자꾸 유리창을 두드린다. 처마끝 풍경은 빠르게 지나가는 바람에 큰 소리로 울며 점점 깊어가는 어둠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가을밤 소리에 취해 문득 화두가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져 아직 꿰맨 흔적이 남아 있어 온통 쉬지 못하고 있다. 풍경은 번뇌가 다 할 때까지 끝까지 반조하면 어느덧 주객이 사라진 무쟁삼매를 성취 한다고 경책하고 있다.

아침이 오니 도량은 아직 안개 속에 갇혀있고 파도소리는 더욱 가까이 들려오고 있다. 모처럼 비 내리는 가을밤에 온통 깨어 있으니 더없이 뿌듯하고 기운이 충만하다. 이제부터는 일체 대상을 만나더라도 조금도 차별이 없어 가는 곳 마다 평등하여 다툼이 사라지고 주위를 편안하게 보듬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서서히 안개가 물러나고 바다는 온통 끝이 없는 성품을 드러내어 하늘과 하나로 만나고 멀리 지나가는 여객선이 그림처럼 정지되어 한가롭게 흐른다.

바야흐로 종단의 대표를 뽑는 선거철이 찾아왔다. 출사표를 던진 스님들이 표밭을 찾아서 분주히 움직이고 벌써부터 여론 몰이가 시작되어 여기저기서 기대와 더불어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금강경』에서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일체 욕심을 떠난 최상의 아라한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선거에 나서는 스님들은 저마다 욕심을 떠난 수보리처럼 종단을 위하여 보리심을 발원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모든 종도들의 긍지와 자부심이 되고 인천의 사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선거가 끝나고 나면 그 간의 일체 다툼을 화합하여 저마다 욕심을 떠난 무쟁삼매를 성취하고 본래 자리로 돌아가 화합 종단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해 본다.

관음상 뒤에는 갈대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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