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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한국불교 최초] 62. 교양대학

기자명 법보신문

1973년 장경호 거사가 건립한 대원불교강원

동국대 불교대학 교수들로 강사진 구성
매일 저녁 식사·토큰 2개 무료 제공도

 
불교계 최초의 교양대학 대원불교대학은 1975년 첫 졸업생 15명을 배출했다.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쇠퇴한 불교는 도심을 떠나 산 속으로 은둔하는 경향이 짙었고, 이 때문에 포교활동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일제강점기에 일부 선각자들이 대중포교의 절박함을 느끼며 일요학교를 개설하고 법회를 여는 등 포교에 나섰으나, 총독부의 서슬 퍼런 감시로 인한 활동 제약과 대중들의 의식 부족 때문에 뚜렷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해방 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이 땅에 깊숙이 뿌리내린 기독교가 서구의 지원을 등에 업고 공격적 선교에 나설 때에도 불교는 정화라는 명분에 매달려 내홍을 겪느나 포교활동에 나서지 못했다. 이처럼 대중포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동안 한국불교는 철저하게 기복으로 치달았고, 사찰은 그저 복을 비는 곳으로 전락하는 듯 했다.

1975년 첫 졸업생 15명 배출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눈밝은 선지식들이 있어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고, 재가불자들 사이에서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면서 대중포교의 기치를 드는 곳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가불자를 교육하는 것만이 한국불교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는 믿음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때 이 믿음을 실천에 옮긴이가 장경호 거사였다. 젊은 시절 옛 선사들의 말씀이 담긴 선서를 읽으면서 발심하고 불교를 이해했던 장경호 거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체험한 “사람이 배워 익히는 것이 모든 것의 바탕이 된다”는 교훈을 잊지 않았다.

부처님 가르침을 바탕으로 사업을 하면서 사업에서도 크게 성공한 그는 당시 “너와 내가 더불어 사는 존재이고 그래서 한 뿌리 한 생명이라는 관계성과 원인을 지으면 반드시 결과가 뒤따른다는 인과성이 흐르고 있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며 세상사를 가로지르는 진리다. 이러한 관계성과 인과성을 이해하고 실천하게 하는 것이 교육이며, 그 교육으로 인해 인간은 인성을 다듬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는 이때부터 많은 학자들을 만나는 한편 종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스님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가진 힘을 사회에 환원하려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 진보적 사고를 지닌 학자 김동화를 만났다. 그리고 그와 의기투합하면서 대중불교운동의 뜻을 한층 공고히 했고, 재가불자들의 교육을 전담할 교육기관 설립에 대한 의지도 세우게 됐다.

마침내 1969년 교육을 위주로 하는 포교당을 건립할 결심을 굳힌 장경호 거사는 1970년 2월 1일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본격적으로 대중포교당을 짓기 시작했고, 드디어 1973년 5월 대지 1000평에 연건평 1200평, 5층 건물의 포교당을 건립했다. 이것이 곧 재가불자들의 교육도량으로 첫 선을 보인 대원불교대학의 모태가 된 대원정사다.

대원불교대학은 1973년 4월 14일 대원불교강원으로 첫 모습을 드러냈고, 이 대원불교강원이 바로 한국불교 최초의 교양대학이다. 대원불교강원은 이듬해인 1974년 3월 1일 2년 학제의 대원불교교양대학으로 이름을 바꾸고 법사과와 통신과를 신설해 교육을 시행했다. 대원 장경호 거사가 이 땅의 불교를 중흥시킬 인재양성을 발원하고, 일반인들에게 불교를 알리기 위해 세운 불교교양대학은 이렇게 시작됐다.

대원불교교양대학은 당시 주 5일 교육과정으로 교육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그리고 학장에 조명기 교수를 선임한데 이어 김동화, 홍정식, 이종익, 원의범, 김영태. 고익진 등 당시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교수들을 대거 교양대학 교수진에 포진시켰다. 김동화, 고익진 등 이들 교수진은 오늘날까지 후대 학자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불교학자로 선정될 만큼 뛰어난 인품과 학식을 겸비한 인물들이었다. 당시 교양대학에 불과한 이 학교의 교수진이 얼마나 화려했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원불교교양대학이 문을 연 시기는 아직 일반대중을 향한 교육이 생소한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들이나 배우는 학생들 모두의 열기가 한없이 뜨거웠다. 때문에 초창기 강의가 주로 야간에 진행됐음에도 학생 중 그 누구하나 결석하는 법이 없었고, 강의시간에 조는 사람조차 없을 정도였다.

당시 학교에서는 저녁에 공부하러 오는 재학생들에게 저녁을 무료로 제공했고, 열정을 북돋우기 위해 매일 버스를 탈 수 있는 토큰 2개를 나눠주기도 했다. 또한 1기 졸업생 중에는 공부하면서 발심한 한 여성이 출가해 비구니 스님이 되기도 했다. 대원불교교양대학은 1975년 3월 첫 졸업생 15명을 배출했다. 이어 1981년 대원불교교양대학을 대원불교대학으로 개칭하고, 1년 학제의 연구과정을 신설했다.

동산은 1982년 3개월 강좌 개설

 
위는 대원불교대학의 초창기 간판 모습.

그리고 1987년 8월에 후 학기 입학과정을 개설해 교육기회를 확대했고, 1995년에는 미국 워싱턴과 LA에 분교를 설치하기도 했다. 또 2003년에는 부처님 가르침을 생활화, 현대화, 대중화하기 위한 불교지도자와 포교사 양성을 목적으로 교계 최초로 불교사이버대학을 설립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대학원과 부산 대원불교대학을 신설, 2005년부터 신입생 200명을 시작으로 부산과 경남 지역의 불교인재 양성에 기여하기 시작했다. 이어 2009년 대원불교대학의 이름을 대원불교문화대학으로 바꿔, 보다 폭넓은 교육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다. 한국불교 최초의 불교교양대학인 대원불교교양대학은 이렇듯 대중불교운동에 뜻을 둔 장경호 거사에 의해 1973년 대원불교강원으로 출범한 이래 오늘날까지 재가불자 교육의 산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는 아직 재가불자교육이 널리 확산되지 못했다. 대원불교교양대학이 설립돼 불자들의 배움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기는 했으나, 공간이 한정된 상황에서 그 모든 것을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교육에 대한 열기만큼은 널리 전해져 1980년대 들어서면서 곳곳에서 불교교양대학이 문을 열게 되는 기폭제가 되었다.

1980년대 가장 먼저 재가불자 교육에 발을 디딘 곳이 동산반야회다. 재가불교 신행단체인 동산반야회는 1982년 3개월 과정의 불교교양강좌를 개설해 재가불자 교육에 참여했고, 이 불교강좌가 큰 호응을 얻은 데 힘입어 1992년 2년 과정의 동산불교대학을 설립했다.

1학년교과과정에서 근본불교, 대승불교, 비교종교론 등 9개 과목을 가르치고 2학년 과정에서 법화, 화엄, 반야 사상과 불교사회복지론, 포교방법론 등 9과목을 교육한다. 또 2년 과정의 불교대학을 마친 후 보다 심도 있는 경전공부를 희망하는 불자들을 위해 동산불교전문연구원을 개설해 놓았다. 동산불교대학이 오늘날 재가불교근본도량으로 일컬어지기까지는 고 김재일 회장의 노력이 적지 않았다.

동산반야회가 서울에서 불교강좌를 개설한 시기와 때를 같이해 1982년 불교도시 부산에서는 부산불교교육대학이 문을 열었다. 1991년 이하우 학장 취임 이후 교육의 기틀을 다지면서 조계종 포교사를 가장 많이 배출시킨 것으로 알려진 부산불교교육대학은 불교교육의 명문으로 발전하면서 지역불자들의 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이어 동방불교대학이 1982년 서울 중곡동에서 불교포교사 전문대학으로 개교하는 등 1980년대 초부터 불교교양대학이 잇따라 설립됐다.

그리고 1986년에는 능인불교대학이 3개월 과정의 불교학교를 개설해 운영하면서 오늘날 대표적인 불교교양대학으로 이름을 확고히 하고 있다. 불교교양대학 설립은 서울과 부산 등 불교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 각지로 이어졌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전북불교대학이다.

1988년 강건기 교수를 중심으로 설립한 전북불교대학은 호남지역의 불교중흥을 이끌면서 호남 제일의 불교교양대학으로 성장했다. 특히 이 학교 졸업생들은 지역사회에서 많은 활약을 하면서 지역불교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불교교양대학이 지역포교와 불교발전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모델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어 1988년에는 청년불자들의 열망을 모아 만해학당이 개설돼 2개월 과정의 교양강좌를 진행했고, 이 만해학당을 모태로 해 1996년 만해대학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1989년 드디어 한국불교 1번지 조계사에도 여성불교교양대학이라는 이름의 교양대학이 개설되기에 이르렀다. 이 대학은 1992년 교육과정을 2년 과정으로 확대하면서 지금의 조계사 불교대학으로 이름을 바꿨다. 조계사 불교대학은 조계종의 신도전문교육 방침에 따라 포교원에서 발간한 『불교입문』을 기본 교재로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면서 조계종 신도교육의 모범적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1980년대에 전국적으로 불교교양대학이 설립되기 시작한 이래 1990년대 들어서도 그 열기는 식지 않았다.

현재 전국 110여개 대학 운영중

그 가운데 법륜 스님이 이끄는 정토회가 1991년 9월 종로 대각사 불교회관에서 문을 연 정토불교대학은 특성화 대학으로 꼽히고 있다. 바른 불교, 쉬운 불교, 생활 불교를 건학 이념으로 한 정토불교대학은 자원봉사와 환경교육에 집중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2년 재학기간 중 반드시 16시간의 자원봉사활동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는 것. 때문에 서울 본교를 비롯해 부산, 대구, 대전, 청주, 마산 등 전국 5곳 분교에 매년 400여명이 입학해 겨우 50명 정도만 졸업하는 기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1992년 문을 연 영남불교대학(현 한국불교대학)은 매 학기 3000여명의 신입생이 입학하는 신기원을 이룩하며 전국 최대규모의 불교대학으로 성장했다.

한편 대원불교교양대학 설립 이래 재가불자 교육기관으로의 성격을 뚜렷하게 한 불교대학은 최근까지도 전국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고, 현재 조계종 신도전문교육기관으로 등록한 불교대학 82개와 한국불교교육단체연합회 소속 교양대학 30개 등 110여 개의 불교대학이 재가불자 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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