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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파리의 명물 서점 이야기

기자명 법보신문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제레미 머서 지음/조동섭 옮김/시공사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는 파리 센 강변 근처에 백 년 된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라는 서점이 있습니다. 이 서점은 본래 1919년 책을 사랑한 여성 실비아 비치에게서 시작합니다. 에즈라 파운드, 제임스 조이스, 헤밍웨이 등 당대 최고의 작가들이 찾고 사랑한 곳이며, 특히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 초판본을 출간한 곳으로 이 서점은 매우 유명합니다.

하지만 지금 파리에서 만날 수 있는 서점은 실비아 비치의 서점이 아니라 그 건너편에 문을 연 미국인 시인 조지 휘트먼의 서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실비아 비치가 은퇴한 뒤 10년이 지나 방랑자이며 공산주의자인 조지 휘트먼이 서점을 열게 되는데, 조지는 자기 서점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전통을 잇는 공간으로 꾸며갑니다.

조지의 서점은 말이 서점이지 관리는 엉망입니다. 직원이 있기는 하지만 서점의 문을 열고 닫는 일, 책을 판 돈을 관리하는 일 등 모두가 그 서점에서 공짜로 먹고 자는 나그네들의 몫입니다. 서점의 캐쉬박스는 근처 좀도둑들이 주기적으로 털어갔고, 사람들은 이곳에서 책을 슬쩍 한 뒤에 다른 서점에 팔아 빵값을 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서점 주인 조지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는 한 술 더 떠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 슬픈 일은 도둑들 대부분이 자기가 훔친 책들을 읽지 않는다는 거야. 그냥 다른 서점으로 가서 책을 팔아 빨리 돈을 손에 쥐려고만 하지.”

오갈 데 없는 젊은 여행객이나 작가 지망생들은 이 서점을 무료숙식소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조지에게 자기 이력서 한 장만 제대로 쓰면 기한에 상관없이 맘껏 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변변찮은 침대는 독일어 문고 사이라거나 러시아소설 책장 근처, 또는 고서실에 마련되었고, 그렇게 이 서점을 거쳐 간 공짜 식객들은 지금까지 무려 4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타고난 반골기질을 제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서점주인 조지 휘트먼의 서점 운영 원칙은 다음의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항상 이곳에 대해 꿈꾸는 게 있어. 저 건너 노트르담을 보면, 이 서점이 저 교회의 별관이라는 생각이 들곤 하거든. 저곳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별관.”

애초 이런 낭만적인 세계와는 동떨어져 살아온 캐나다 기자 출신 제레미 역시 마법에 이끌린 듯 서점에서의 1년여를 머물면서 자유로운 정신을 지닌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이상적인 공동체를 어떻게 이끌어 가는지를 지켜보고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사원을 위한 별관’이 아니라 ‘사원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별관’으로 꾸미고 싶다는 서점 주인. 이 세상 모든 서점 주인들이 똑같이 꾸는 꿈일 것입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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