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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남은 경구]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박동춘 소장

기자명 법보신문

한계 부딪칠 때마다 마음 다스리게 해

삼계의 모든 현상은 단지 마음에서 일어난다.(三界所有 惟是一心)  

                                                           -화엄경37권 대지품-


단풍잎이 하나 둘 붉게 물들어 간다. 무덥고 사납던 여름날의 열기는 어디로 갔는지. 점잖은 가을빛이 대지를 감싸고 곡지(曲池)의 가을 물, 명경(明鏡)처럼 맑다.

분수에 따라 마음을 쉬나니 인간세상의 대장부라
망탕의 구름 사라졌어도 꽃 아래 새들은 서로 부르네.
(安分心休歇 人間大丈夫 芒雲一去 花下鳥相呼)

서산 스님의 「감흥(感興)」이란 시이다. 곡지(曲池)에 비친 산 그림자가 하도 아름다워 한동안 서성이다 이 시를 읊조려 본다. 안분(安分)은 마음이 고요해져야 알 수 있는 경계, 분수를 따라 마음을 쉬라는 서산 스님의 이 시는 곡지의 고요함 때문에 기억이 난 것이다. 마음을 쉬라는 서산 스님의 시구는 분명 욕망과 갈애를 없애라는 것일 터. 하지만 사람은 따뜻함, 만족스러움, 편안함, 희열에 대한 갈애에 얼마나 목매 사는 존재인가. 나 자신의 가여운 갈애의 실증(實證)을 느낀 것은 어떤 배우의 인터뷰 장소에 모인 수많은 군중 사이에서이다.

얼마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떤 배우가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책을 썼다. 그와의 인연은 필자 역시 전통문화의 한 끝을 공유하고 있다는 명분 때문이었다. 이 책은 출판 후, 공전의 인기를 누리며 한국 전통문화의 장점을 온 세상에 알리는 전령(傳令)이 되었고 그는 나름대로 자신의 正名을 잘 살린 듯하다.

이 책의 출판을 기념한 인터뷰 장소에는 수많은 군중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한 순간 그를 보기 위해 모인 수많은 군중은 무엇에 대한 갈애 때문일까. 그의 주변을 몇 시간이고 서성이는 사람들, 이 배우를 통해 얻은 감동은 어떤 힘을 가졌기에 이런 현상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참으로 경이롭고도 알 수 없는 현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술렁거림 속에도 내 마음은 아프고 저려와 창밖에 서성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제대로 쳐다 볼 수 없었다. 아마 나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따스함에 대한 갈애가 저들과 같으며 다만 유형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한 셈이다. 두려움과 부끄러움으로 감히 창밖에 서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지 못한 것이다. 일시적인 회피책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알 수 없는 자괴감으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나 자신의 한계에 대한 처절한 처지를 알아버린 것이며 인간의 한계를 확연히 본 것이다. 거의 한달 간이나 머릿속에는 온통 “사람은 과연 고귀한 존재인가”라는 의문이 무수히 일어났다가 사라지곤 하였다. 그리고 책상 위에 널린 소중했던 책들이 하잘것없는 변명처럼 느껴졌다.

며칠이 지났다. 우연히 다시 잡은 책 속에 “삼계소유 유시일심(三界所有 惟是一心)” 누군가 화엄경 대지품을 인용해 쓴 글인데 유독 이 언구만이 눈에 띄었다. 이것이로구나. 삼계의 모든 현상은 다 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일 뿐이로구나.

아, 서산 스님이 「감흥」에서 읊조린 마음을 쉬란 것도 바로 이 마음인가. 망탕에 서렸던 상서로운 오색구름, 왕이 될 상서로운 징후도 이미 사라졌지만 여여한 자연의 순리는 꽃 아래 새들이 서로를 부르게 하는 것인가.

박동춘(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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