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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선한 위구르인을 떠올리며

기자명 법보신문

『하늘을 흔드는 사람』/레비야 카디르, 알렉산드라 카벨리우스 지음/이덕임 옮김/열음사

지구상에는 아직도 숱한 민족들이 주권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쿠르드족, 티베트인들, 그리고 위구르족이 그러합니다. 이들은 강성하고 화려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지녔으면서도 지구상에 고아처럼 부평초처럼 숨죽이며 살고 있는 민족입니다.

위구르족의 현실을 확인한 것은 몇 해 전 실크로드 여행길에 우루무치에 들렀을 때입니다. 우루무치 시내를 다니며 위구르인들의 시장과 골목을 둘러보려는데 조선족 가이드가 사색이 되어 말렸습니다. 더럽고 난폭하고 무지한 날강도 같은 위구르인들에게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그러냐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우루무치를 자유롭게 돌아다녀 본 나는 위구르인들의 상냥하고 선량한 분위기가 매우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내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화약고를 철없이 돌아다녔는지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습니다. 위구르인들의 순한 표정 그 이면에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던 중국 정부와 한족들에 대한 적대감을 미처 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위구르인들은 교육받을 권리도 빼앗겼고, 돈을 벌 직장도 변변치 못할뿐더러, 억울한 일을 하소연할 데도 없고, 심지어는 한족들의 무분별한 개간으로 인해 호수와 강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도 고스란히 기갈을 견뎌야 합니다.

1964년 중국이 신장 지역의 로프노르에서 원자폭탄실험을 했을 때 20만 명의 위구르인들이 고스란히 방사능에 노출되었으나 아예 방치되었고, 1996년부터 중국 정부가 에이즈 보균자들을 신장 지역에 유입시키기 시작하면서 신장에서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이 해마다 기록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940년대부터 지금까지 위구르인들이 수십 차례 시위를 벌였지만 죽거나 감옥에 간 사람만 부지기수였고, 차츰 위구르인들 사이에서 가난과 무지와 억압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짙게 깔릴 때 즈음해서 위구르 여성 한 사람이 목소리를 키웠습니다.

레비야 카디르. 배우지도 못하고 가난한 여성입니다. ‘여자는 집안에서 숨죽이며 살아야 한다’는 관습을 젖히고 사업에 뛰어든 그녀는 막대한 부를 쌓은 뒤에 정계로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하지만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자기 민족이 처한 부당한 현실을 폭로하는 그녀를 중국 정부가 내버려둘 리 없습니다. 투옥과 재산 박탈, 그리고 망명길은 제 목소리를 내는 그녀에게는 정해진 수순이었습니다.

위구르인들이 동투르키스탄이라는 이름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레비야는 분명 그 날이 오리라고 확신합니다. 미물일지라도 쉬지 않고 기어서 중앙아시아로부터 유럽대륙으로까지 건너갔다는 개미 우화를 그녀는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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