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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명강의] 한국테라와다불교 상가라자 뿐냐산또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부처님 법 중 으뜸은 알아차림 오온을 정확히 보는 것이 수행

오늘은 우리나라에 테라와다 수행 공동체가 정식으로 탄생하는 날입니다. 그동안 테라와다를 수행하는 스님들의 수가 많지도 않았고 특별하게 조직을 구성해 이끈 것도 아니었는데 짧은 시간 동안에 이렇게 모임을 구성하게 되어 무척이나 기쁩니다.

저는 국내에 테라와다 불교가 소개되기 전에 해인사에 살면서 운 좋게 테라와다 불교정신과 위빠사나 수행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다른 분들을 통해서도 우리나라에 테라와다 불교와 수행법이 전해졌지만 그 발단은 한국을 대표하는 율사이셨던 자운 스님이 주석하고 계셨던 해인사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테라와다 가사를 입은 시기는 1969년 자운 스님께서 스리랑카를 다녀오시며 가사 한 벌을 가져오신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저는 해인사 선방에 있었는데 편수 스님의 도움으로 그 가사를 샘플로 몇 벌을 제작해 제가 한 벌을 갖고 주위 분들에게 나눠 드렸습니다. 틈틈이 그 가사를 꺼내 입기를 여러 해 이어가다 남방 가사를 본격적으로 입기 시작한 것은 1973년입니다.

팔리어 경전 아는 게 불교 발전 지름길

송광사 방장 일각 스님의 초청으로 태국 왓벤자마보핏 사원의 담마 딧띠소폰 스님 일행이 통도사에 와서 남방의 계율을 설하신 적이 있습니다. 당시 범어사에 살고 있던 저는 전혀 그 소식을 들을 수 없었고, 다만 사형인 도견 스님이 어느 날 은사 지월 스님 간병을 잠시 맡아 달라고 연락이 와서 스님이 주석하고 계시던 부산 영도 법화사로 내려갔을 때입니다. 그런데 지월 스님께서는 저를 보자마자 대뜸 “지금 빨리 통도사로 가서 태국의 계를 받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은사 스님 간병을 하려고 내려갔는데 오히려 스님께서는 자신은 괜찮으니 계를 받으러 가라고 재촉하셨던 것입니다.

스님의 당부를 듣고 오전에 부산을 출발해 오후에 통도사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계를 받은 스님이 30여 명 된다고 하는데 늦게 도착한 바람에 어느 스님들이 계를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확한 것은 그당시 태국에서 전계사와 교수아사리, 갈마아사리, 습의사 스님들이 모두 오셔서 정식으로 테라와다 계를 설했고, 수계자들에게 가사 3벌과 발우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때 비로소 ‘아, 이제 남방 가사를 계속 입어도 되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후 태국에서 보낸 정식 승려증까지 받은 사람은 제가 유일했습니다. 왜냐하면 태국에서는 계를 받고도 가사를 입지 않는 수행자의 승려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데, 한국에서 계를 받은 사람 중 저만 유일하게 가사를 계속 입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남방 가사를 입는 것을 좋게 보는 사람보다는 반대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가사가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은사 지월 스님도 “자네가 그것이 절대 옳다고 믿는다면 입어도 좋다”고 허락하셨고, 그 뒤 선암사에서 지내는 5년 동안에도 석암 스님께서 저를 잘 봐주셔서 오늘날까지 가사를 계속 입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게 힘을 주셨던 석암 스님은 당시 자운 스님과 함께 계율을 힘써 행하신 분이십니다. 스님은 제가 출가할 당시 “너는 생기기도 밉상스럽고 평안도 사람이라서 성질이 급하니 참회로 누르며 자비스럽고 부지런히 정진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108참회문을 주셨고 저는 그 책을 베껴 써서는 저녁마다 펼치고 참회기도를 했었습니다. 팔리어를 접하기 전까지는 그것으로 예불을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테라와다 계를 받은 이후에도 국내에는 팔리어를 우리말로 번역한 책 한권이 없었습니다. 그저 언젠가는 팔리어를 공부하겠다는 막연한 생각뿐이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일본어를 조금 알고 있었는데 미얀마 마하시 선원에서 포교를 위해 일본으로 파견을 나오신 우 짜난다 스님이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스님을 만나 팔리어 예불을 소리 나는 대로 받아 적어 그 구절을 외우면서 다녔습니다.

그러다 1983년 거해 스님을 통해서 미얀마의 우 빤디따 스님 한국 초청법석이 열렸고 저도 그 때부터 팔리어를 공부하며 테라와다 수행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 팔리어 공부를 희망하는 한국 수행자들을 위해 마하출라롱컨대학 한국분원을 개설하기도 했습니다.
그당시 미얀마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출입이 거의 없던 곳이었습니다. 우리가 미얀마를 처음 갈 당시가 그 나라에서는 외국인들의 발길을 겨우 허용할 때였습니다. 이후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정진을 하러 가게 되자 미얀마에서는 우리의 영향으로 다른 사람들도 가게 된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수행자들에게는 특혜로 미얀마 언어를 배우는 기회도 제공해 주셨습니다.

스리랑카에서는 저 같은 부족한 사람에게 오늘날 이런 소임을 맡기기 위해 그러셨는지 ‘삼붓다 사사나 조띠까 마하테라’라는 칭호를 주셨습니다. 그 때의 감동은 말로는 이루 표현할 수 없습니다. 스리랑카의 많은 스님들이 더운 날 넓은 공원에 모여서 오직 저를 위해 뜨거운 땀을 흘리며 축하를 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오늘 우리에게 한국에도 테라와다가 머물도록 하라는 경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올바른 수행자 늘 때 삼장·삼학도 전해져

테라와다 불교를 한국에 전하는 가장 큰 목적이자 여러 어른 스님들이 강조하는 바는 경, 율, 론 삼장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팔리어 경전을 알아야 된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수행이 올바르게 나아가고 불교의 발전과 함께 사회의 모든 교양이 올바르게 성립해 나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모임의 창립은 단지 테라와다 불교를 한국에 세워놓기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과거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있도록 협조해 주었다면 미래의 우리는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테라와다 불교에서 전해 내려오는 부처님의 말씀을 조금도 어기지 않고 전하겠다는 사명이 필요합니다.

부처님의 법에서는 가장 으뜸가는 것이 ‘사띠’, 즉 알아차림입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학교 운동장에서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차렷”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알아차림입니다. 알아차림을 분명히 하는 것이 주인공을 확실하게 아는 방법입니다.

자기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육근의 작용에 있습니다. 눈으로 볼 때 마음이 가야 볼 수 있습니다. 귀의 소리를 들으려면 귀에 마음이 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밥이 타는 줄 모르고 있다가 타는 냄새가 난다고 하면 그때서야 알게 됩니다. 마음이 가지 않으면 모르는 이치가 그와 같습니다. ‘이 작용이 좋은 것이다, 나쁜 것이다’라고 알아차리는 것, 다시 말해 오온을 정확히 보는 것이 수행입니다. 자비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때 모든 존재들에게 나오는 무한한 마음을 말합니다. 결국 자신의 몸을 바르게 움직이는 것이 가장 편안한 곳, 열반으로 가는 길입니다.

오늘날 불교가 찬란하게 세계 각국에서 발전된 이유는 우리가 부처님 말씀을 바탕으로 화합을 했다는 점입니다. 올바른 생각과 건전한 몸을 가진 수행자들이 늘어나서 지금만이 아니라 후세 여러 대 어디까지라도 경, 율, 론 삼장과 계, 정, 혜 삼학이 잘 이어질 수 있도록 정진해 나아갑시다. 남방의 불교 국가 관계자들과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면서 법문을 마칩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10월 31일 서울 불교방송 대법당에서 봉행된 한국테라와다불교 창립법회에서 상가라자로 추대된 뿐냐산또(도성)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이다.


뿐냐산또 스님

1919년 북한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출생, 부산 선암사 지월 스님 문하로 출가해 56회의 안거를 지냈다.

1973년 태국 왓벤자 마보핏 사원 담마 딧띠소폰 스님으로부터 테라와다 비구계를 받은 스님은 1983년 이후 미야마, 스리랑카 등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지속했다. 해인사, 대흥사 주지를 지낸 스님은 부산 태종사를 창건하고 국내외 수행자들의 위빠사나 정진 도량으로 이끌고 있다. 지난 2003년 스리랑카 상가로부터 ‘삼붓다 사사나 조띠까 마하테라’ 라는 최고의 칭호를 받은 스님은 현재 태종사 조실로 주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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