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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 깊은 책읽기]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가장 따뜻한 배웅

기자명 법보신문

『어머니를 돌보며』/버지니아 스템 오언스 지음/유자화 옮김 / 부키

“나를 떠나지 말아다오. 우리 손은 서로 묶여 있어. 나는 네 손을 잡고 있어.”
7년여의 투병 끝에 어머니는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버지니아에게 어머니는 인생의 모델이었습니다. 지혜롭고 대담하며 유머를 즐기고 인정이 많았으며 게다가 신앙심이 굳건한 분이었기에 어머니는 그렇게 고운 모습 그대로 천국에 이르실 분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70대로 들어서면서 뇌졸중을 일으키다가 파킨슨병을 앓게 되고 급기야 치매 증상까지 보이자 버지니아는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병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어머니에게는 일어나면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그야말로 고문이었습니다. 엉뚱한 말을 늘어놓고, 걸핏하면 서운해 하고 분노하고, 뭔가에 쫓기는 듯 불안해하며 미치광이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예전의 내 어머니 맞아? 그 굳은 신앙은 어디다 처박아두신 거야?’ 이런 의구심이 불쑥 고개를 쳐드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그럴 때마다 버지니아는 자신도 미쳐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간호를 계속하면서 그녀는 깨닫습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미쳐버릴 것 같은 사람은 바로 어머니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치매환자는 정신은 말짱하지만 급속하게 어휘력과 시간개념이나 계산능력을 상실해가고 있으며, 그런 쇠퇴의 과정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음을 또렷하게 지켜보고 있기에 그 두려움과 수치스러움과 불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치매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어느 날 온두라스에서 일어난 대형지진 참사 현장을 뉴스로 보다가 그녀는 해답을 얻었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린 사람을 보여주었는데 그는 현재 정신이 말짱하지만 건물 잔해에 깔려 있어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그의 가족 중 누군가가 잔해더미 밖에서 자꾸만 그에게 말을 건네는 모습을 버지니아는 본 것입니다.

어쩌면 치매환자와 그 가족도 저와 같지 않을까? 지금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환자의 손을 잡아주며 당신이 결코 혼자 내버려지지 않았다는 위안을 주고, 우리는 언제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에게서 힘을 얻는다는 말을 나지막하게 건네주는 것이 최선의 길은 아닐까?

홀로 걸어갈 수밖에 없는 길이기에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손을 잡아주고 따뜻하게 눈을 맞춰주는 일. 들리지 않는 순간까지 나지막하게 말을 건네주는 일. 이것이 치매를 앓다 세상을 떠나는 어머니에게 드릴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배웅일 것이요. 버지니아는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드렸습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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