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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남은 경구] 서울대 천문학부 이시우 명예교수

기자명 법보신문

본래 청정한 자성 일깨우는 화두

다른 데서 그를 찾지 말라/오히려 그는 너를 떠나리라/이제 나 혼자 스스로 가니/어디에서나 그를 만나리/그는 바로 나지만/나는 바로 그가 아니다/이것을 깨달아야/본래의 얼굴과 하나가 된다. -동산 양개 스님 게송-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는 조동종의 개조로서 운암담성(雲巖曇晟, 782~841)의 법제자이다. 동산은 운암을 만나자마자 “생명없는 물건이 설법을 할 때는 누가 들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운암은 “그야 생명없는 물건이 들을 수 있지”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아미타경』에서 물과 새와 나무, 모두가 불법을 외운다는 구절을 읽지도 못했는가?”라고 물었다.

이를 듣고 문득 깨친 동산은 다음과 같은 시로 표현했다.
“신기하고 신기하다!/불가사의한 무정물의 설법이여/귀로 들으려하면 도무지 알 수 없으니/눈으로 들어야 참으로 안다”
동산이 스승 운암 곁을 떠나 헤어지면서 “스승께서 돌아가신 뒤 세상 사람들이 저더러 ‘당신 스승의 진면목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무어라고 대답해야 좋을까요?”라고 물었다. 운암은 한참 동안 침묵하고 있다가 “바로 이것이다”라고 답하면서 “이것에 관해 생각하는 데 있어 각별히 조심하고 신중하길 바라네”라고 당부했다.

동산은 이 뜻이 무엇인지를 계속 생각하면서 지나가다 얼마 후 냇물을 건너다가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여기서 “바로 이것이다”의 참 뜻을 깨닫고 위에 적힌 시로 그 깨달음을 표현했다.

나는 대학에서 기초 교양과정에서 <인간과 우주>라는 과목을 강의했으며 주로 인문계 학생들이 많이 들었다. 이 강의에서는 천문학의 내용뿐만 아니라 우주와 인간과의 관계를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무척 힘든 강의였지만 한편으로는 흥미로운 과목이기도 했다. 나는 강의가 끝날 때쯤이면 반드시 동산의 시를 제시하고 이를 설명해서 제출토록 했다.

사실 나 자신도 동산의 간결하면서도 심오한 시의 근본 뜻을 잘 모르지만 내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강의 내용과 관련하여 동산의 시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를 알고 싶었다. 물론 정확한 시의 해석이 아니라 학생들의 주요 관점이 어떠한 것인지에 중점을 두었다. 실제 학생들의 레포트 내용을 보면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나 대체로 천문학적 우주와 인간과의 관계를 빠트리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러한 내용이 옳은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른다.

운암이 말한 “바로 이것이다”는 것은 분명 붓다가 강조한 보편타당한 진리로서의 불성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동산이 찾아야 했던 것은 무엇이 보편타당한 진리인가를 알아내는 것이고 그것이 곧 “그는 바로 나지만 나는 바로 그가 아니다”에 있다고 본다. 여기서 동산이 말하는 ‘그’가 무엇일까? ‘그’는 나를 포함하지만 나는 ‘그’를 포함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자신에 내재한 본래의 청정한 자성을 드러내는 묵조선을 표방한 동산은 신비적인 것이 아니라 감각기관을 통해 諸法實相을 如實知見하게 관하는 것을 중시했기에 동산이 본 제법실상에는 우주 만법이 내포되어있다. 그렇다면 동산은 이런 만법에서 그의 스승의 진면목을 보았을 것이며 또한 자신의 본래 부처도 현현했을 것이다.

이시우(서울대 천문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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