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묵 스님의 풍경소리]
[정묵 스님의 풍경소리]
  • 법보신문
  • 승인 2009.11.1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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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보다 법사 지명도 따라 법회 찾는 불자
자신의 삶을 부처로 향한 삶으로 전환 못해

우리 산천은 사시사철 어느 모습이나 부처님 몸인 국토신(國土身) 아님이 없지만 온 마음을 토해낸 듯한 가을 산야의 모습은 더욱 그러함을 새기게 한다. 이렇듯 장엄한 가을 산야에서 부처님을 볼 수 있으면 그 뿐, 더 이상 무슨 언설이 필요할까 싶다.

그래서 통도사에서는 해마다 한 해를 정성스레 갈무리하고 새해와 모두를 향해 회향하고자 화엄산림법회를 갖는다. 선재동자가 물러섬 없는 구도행을 통해 53선지식을 만나 법을 구하듯 53분의 법사를 통해 모든 존재들이 불성의 현현으로 각각이면서도 한 둥우리로 어우러지는 절대적 존재임을 일깨우는 화엄세계를 만나게 된다.

이런 뜻 깊은 법회인 탓에 해마다 원근 각지에서 참 많은 불자님들이 동참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도 하고 나 자신도 다시금 신심을 더하기도 하지만 더러 아쉬움이 있다. 이는 비단 이 법석에 동참하는 분들 뿐만 아니라 다른 법회에서도 느끼는 소회다. 법회에 동참해 부처님 법과 선지식을 친근히 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복덕인연을 심는 것이겠지만, 다수가 거기에서 그칠 뿐 법회에 동참하는 뚜렷한 원(願)과 수행에 있어서의 취향성이 부족한 듯하다.

그러다보니 법사스님들의 법문도 이에 응하여 심도 있고 진지하게 법문을 하시지 않고 일상적인 늘 하시던 듯한 내용에 재미를 곁들여 웃음 한마당을 만들거나 심지어 팬모임을 하는 듯한 분도 더러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연예인 팬그룹이 연예인 따라 몰려다니듯 법회의 내용보다도 법사 지명도에 의지해 법회에 참여하는 분들도 있는 듯하다. 이런 법회 동참은 인연은 심을지 몰라도 자신의 삶을 부처를 향한 삶으로 전환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화엄경』 「입법계품」 서두에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에게 법을 구하는 대목을 통하여 법회에 임하는 불자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엿볼 수 있다.
“바라옵건데 거룩하신 이여, 저에게 일러 주소서. 보살은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의 행을 닦으며, 어떻게 보살의 행에 나아가며, 어떻게 보살의 행을 행하며, 어떻게 보살의 행을 깨끗이 하며, 어떻게 보살의 행에 들어가며, 어떻게 보살의 행을 성취하며, 어떻게 보살의 행을 따라가며, 어떻게 보살의 행을 생각하며, 어떻게 보살의 행을 넓히며, 어떻게 보살의 행을 빨리 원만하게 하나이까?”

선지식을 찾아 법회에 참석할 때는 일차적으로 선지식을 친근히 하고 공양함을 갖추고, 나아가 선재동자의 말과 같은 마음을 지녀야 할 것이다. 법사 스님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현재 삶과 행을 비추어 문제점을 진단해보고 올바른 원을 세우고 자신의 삶과 수행의 방향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른 삶과 수행을 지향해가며 만나는 문제는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 힘이 들고 해태심이 일어나는 때는 어찌해야 중도에서 물러서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지, 마음이 한 길로 모아지지 않고 이곳저곳으로 분산 될 때는 어찌해야 그 마음을 한 길로 거두어들일 수 있는지, 안팎으로 밀려드는 여러 장애는 어찌해야 극복 할 수 있는 것인지 등등을 그저 그런 것이려니 하고 듣지 말고 자신의 행과 일치 시켜가며 법문을 통해 듣고 배우고자 해야 한다. 그저 법사스님이 좋은 말씀 하시는구나만 해서는 스쳐가는 이야기일 따름이지 별 반 소득이 없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온 정성을 모아 법문에 귀 기울여야 문혜(聞慧)가 이루어지고 내면화 하는 사유와 수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바로 이렇게 이루어져 가는 법회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화장찰해를 이루어 동참 대중 모두가 불보살의 현현이 될 것이다.
 
정묵 스님 manib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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