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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변호사의 세상읽기]

기자명 법보신문

관념의 늪서 벗어나야 진정한 자유

“너는 건강하게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해! 대기업가가 되어 돈도 많이 벌고, 대통령도 되고.” “경쟁하면 반드시 이겨야 하는 거야. 그러려면 먼저 학교에서부터 일등을 해야 돼.” “너는 공부는 안하고 만날 TV나 보고 핸드폰으로 게임이나 하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부모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란 아이들의 마음속에 우선순위 제일로 ‘나’라는 관념이 깊숙이 자리 잡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사람은 태어나기가 바쁘게 오관(五官)을 통해 받아들인 갖가지 경험과 나름대로 익힌 지식이 쌓여 각자의 관념의 세계가 꾸며져 간다.

사람이라면 경험이 많거나 적거나 또 많이 배웠거나 적게 배웠거나 관계없이 나름대로의 관념의 세계를 가지고, 그것을 밑천삼아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삶을 이어간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적극적으로 배우는 것은 물론,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으며 몸으로 접촉하여 느낀 것을 의식 속에 간직함으로써 관념화(觀念化)하는 속성이 있다.

사람의 삶이라는 것은 이처럼 쌓여진 관념의 울타리 속에 갇힌 신세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예사이다. 의식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관념은 여간해서 변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 내용을 추구하도록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관념은 선입견으로 작용하고, 그에 집착하게 만들어 결국 사람을 괴로움에 빠트린다.

우선 우리에게 가장 깊이 박혀있는 ‘나’라는 관념을 보자.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귀가 아플 정도로 들어온 ‘나’라는 관념에 아주 익숙해진 나머지 이제는 스스로 모든 일에서 ‘나’를 앞세우게 되었고, ‘나’라는 관념에 매이지 않고는 하루도 지낼 수 없다.

사는 것도 ‘나’가 사는 것이고, 먹는 것도 ‘나’를 위한 것이며, 경쟁에서 이기려는 것도 바로 그 ‘나’ 때문이다. 모든 것은 내가 있고난 뒤의 일이고, 모든 것은 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러니 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곧 나의 가족, 나의 집, 나의 고향, 나의 나라 따위가 나와의 친소에 따라 핵심인 나에 곁들이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 산다는 것은 어떻게 생겼는지 그 실체조차 알 수 없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그 나라는 관념이 살고 있는 셈이다. 이 세상은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도 뚜렷이 알 수 없고 실체도 없는 나라는 허상들의 싸움판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금강경』에서는 “모든 상을 떠난 것을 곧 여러 부처라 한다(離一切諸相 則名諸佛)”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편, 사람들은 태어나 삶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경험하고 배운 나름대로의 알음알이에 매어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살면서 얻은 지식이나 경험은 일단 우리의 의식 속에 들어와 관념화하면 그 내용의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여간해서는 바뀌거나 지워지지 않은 채, 의식 속에 깊숙이 들어앉아 우리를 지배한다. 곧 그 관념은 옳고 그름, 길고 짧음, 좋고 나쁨 따위를 가르는 척도가 되고 사고의 자료와 기준이 된다. 사람들은 입으로는 제법 큰 소리를 치고 자유를 외치지만 실은 각자의 관념의 울타리 속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사람을 핍박하고 있는 것은 남이 아니라 바로 자기 스스로의 관념인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그 관념에 매달리고 추구함으로써 집착을 이어간다. 그리고 집착하는 내용이 실현되지 않으면 스스로 불쾌해 하고 화내며 괜히 남을 원망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삼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관념의 늪에 빠진 중생을 구해내기 위하여 상(相), 곧 관념을 버리도록 『금강경』에서 거듭 거듭 가르치신 것이다. 하기야, 『방거사어록(龐居士語錄)』에서 볼 수 있듯이 “바다가 마르면 마침내 그 바닥을 볼 수 있지만,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을 모른다(海枯終見底 人死不知心)”는 것이니, 마음 속 깊숙이 들어앉은 관념을 쉽사리 다스릴 수 있겠는가! 

이상규 변호사 skrhi@rhi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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