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법문 명강의] 전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지하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전법도생 않고는 佛恩 갚을 길 없어

가사정대경진겁(假使頂戴經塵劫) 신위상좌변삼천(身爲狀座遍三千) 약불전법도중생(若不傳法度衆生) 필경무능보은자(畢竟無能報恩者).
가령 부처님의 말씀을 머리에 이고 모시기를 미진수겁을 지나고, 내 몸을 바꾸어 의자를 만들어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모신다 해도, 만약 부처님 법을 전해 중생을 제도하지 못하면 필경에는 부처님 은혜를 갚을 길이 없네.

우리가 보살이 되기 위하여 공덕을 쌓고 경전을 배워 지혜를 닦는 이유는 오직 중생을 구제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산림법회에 동참하여 복을 쌓고 지혜를 닦는 불제자라 하더라고 여러분의 가족과 형제, 그리고 이웃에게 이러한 법석에 함께할 것을 권해야만 비로소 부처님의 은혜를 갚게 되는 것입니다.

『화엄경』을 배우는 목적은 오직 중생교화에 있습니다. 보살이 중생을 제도해야만 성불하고, 보살이 성불해야만 이 땅이 정토가 됩니다. 여러분은 불제자로서, 그리고 보살이 되길 서원한 이로서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하는데 그중 제일 좋은 일이 바로 전법도생입니다. 법을 전하여 중생을 제도하지 않고서는 부처님 제자로서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말씀이 위의 게송입니다.

부처님의 입멸 후 500여 년이 지난 후에야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대승적인 부분이 별도로 분류되어 연구되기 시작했습니다. 익히 아시겠지만 대승은 큰 수레라는 뜻으로 큰 수레와 같이 여러 사람이 함께 타고 간다는 즉,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이 복과 지혜를 닦아 중생교화를 많이 하면, 혹은 중생교화를 많이 해서 보살이 되면 고통이 많은 이 땅 사바세계가 곧 정토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즉 사바세계가 그대로 극락이 되는 것입니다. 이점이 소승과 대승의 차이입니다. 소승에서는 부처님의 말씀대로 계율을 지키고 수행을 하면 성인의 경지에 올라가고 성불한다입니다. 하지만 대승의 견해에서는 지옥과 극락이 다르지 않습니다. 지옥도 이곳에 있고 극락도 이곳에 있습니다. 지옥과 극락이 하나입니다. 사바세계와 극락세계가 다르지 않습니다.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이것이 대승의 세계관입니다.

여러분께서는 부처가 되려면 열심히 마음을 닦고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어야 된다고 생각하시지요. 그러나 대승에서 말하는 부처님은 무엇입니까. 심즉시불입니다. 마음이 곧 부처입니다. 이는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다만 그것이 대승불교에 와서 강조되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쉽게 이해가 되십니까. 사바세계가 있고 지옥이 있고, 극락이 있고 삼천대천세계가 있는데 그것이 같다고 하니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이해시키려고 애쓰는 것이 대승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면 세상에서 앞서가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중생이 보살되면 사바가 곧 정토

지금 서양의 과학계에서는 동양, 불교사상을 부러워하는데 그 가장 핵심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서양사상은 예수의 말씀, 성경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학문이고 그 철학을 바탕으로 삼고 있는 것이 서양철학입니다. 그러나 지금 서양의 사상은 스스로가 동양의 사상에 밀리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옛날에 『반야심경』을 읽으며 ‘색즉시공 공즉시색’하면 학자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다고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있으면 있는 것이고 없으면 없는 것이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니 이것이 무슨 소리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영혼과 육체가 따로따로 있어 서로 다르다고 주장했던 서구의 학자들도 그것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둘이 아니라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확인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를 처음으로 입증한 사람이 아이슈타인입니다. 이 사람은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원리를 과학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 사람입니다. 그 논리가 상대성 이론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절대적,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인슈타인 이전의 시대입니다. 지구가 자전하는 시간, 태양계를 공전하는 시간 이런 것들이 모두 다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고 봤는데 그것을 다른 눈으로 본 사람이 아인슈타인이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놓은 것이 그의 상대성 이론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이치를 과학적으로 설명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지구는 은하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은하계에는 지구 말고도 수많은 별들이 있으며 그러한 은하계조차도 셀 수 없이 많다고 합니다. 그 모두를 감싸고 있는 것이 허공입니다. 그런데 그 허공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 이전에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변화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 듯 말씀하셨습니다. 『화엄경』에서는 일체유심조라, 모든 중생이 마음먹은 대로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 『원각경』에서는 허공이 우리의 마음에서 생겼다고 설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그 허공이 생기는 것이 마치 바다에 파도가 일어 물거품이 생기듯 허공도 그렇게 생겼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나이가 32억년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인류가 살아온 나이는 약 130만년 정도라고 합니다. 부처님이 오신지 2500여 년 됐고 단군이 나라가 세운지 5000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엄청 오래 세월인 것 같지만 이 지구를 비롯해 수많은 별, 은하계를 싸고 있는 그 허공도 처음 생길 때 물거품처럼 생겼다고 말씀하신 부처님입니다.
이 허공이 마음에서 나왔으며 그것이 물거품처럼 생겨났다고 말씀하신 이치를 여러분께서는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절에 가면 무명, 무상, 연기, 일체개고 이런 말씀을 많이 듣습니다. 여러분이 화엄산림에 동참하시어 공부를 하신다면 이러한 단어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셔야 할 것입니다.

무명이라는 단어는 곧 중생이라는 뜻입니다. 글자 그대로 보자면 ‘밝지 않다’는 뜻이지만 이것은 곧 중생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어두워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경전에는 광명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지요. 이것은 부처님이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렇게 이해하시면 쉽습니다. 중생은 무명, 광명은 부처님입니다.

무상, 무아를 이해하기도 어렵지요. 무상은 없을 무(無)에 항상 상(常)자를 쓰는데 이를 그냥 이해하기는 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고락(苦樂)이 반반씩입니다. 고가 다하면 락이 오고, 락이 다하면 고가 옵니다. 고인가 했는데 락이고, 락인가 했더니 고입니다. 그렇게 인생에는 고락이 반반씩 있기에 무상입니다. 세상이 무상하다는 것은 늘 괴롭기만 한 것이 아니고 늘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늘 변화하기 때문에 무상입니다.

무상이라는 말과 함께 무아가 나옵니다. 영가법문을 보면 육신은 무너져도 영혼은 영원히 우주법계에 있다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해 놓고는 금방 무아다, 내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느 것이 맞을까요.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색즉시공 공즉시색’과 같습니다.

법계가 마음서 나온 이치 알아야

무아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연기법을 알아야 합니다. 연기법의 12연기를 설명하자면 복잡하지만 쉽게 설명하자면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니 이것이 있다 입니다.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이 없어지고 저것이 없어지면 이것도 없어집니다. 가정에서 나를 주장하여 아내는 남편, 남편은 아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또 자식이 부모를 인정하지 않고 부모가 자식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가정은 유지되지 못합니다. 즉 나를 주장하면 아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주장하지 않으면 아가 없습니다.

그러니 무아라는 것은 연기법을 말합니다. 아내가 있어야 남편이 있고 부모가 있어야 자식이 있는 법입니다. 그것이 무아이고 이를 달리 설명한 것이 곧 ‘색즉시공 공즉시색’입니다. 없는 가운데 있는 것이고 있는 가운데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 세상에 수 천의 부처가 있어도 싸움이 없습니다. 그런데 속세에서는 둘 만 있어도 싸움이 생깁니다. 이 싸움을 없애려면 내가 없어야 합니다. 나만 내세우지 말고 타인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무아이고 세상을 이루는 연기의 원리이자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의미입니다.

오늘 화엄산림에 동참하신 불자님들께서는 아무쪼록 이러한 원리를 마음 깊이 새기시어 세상을 정토로 바꾸는 보살의 길을 가시고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불제자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1월 19일 서울 조계사에서 봉행된 화엄산림법회에서 지하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 게재했습니다.


지하 스님은

1940년 경북 울진에서 출생했다. 1960년 법주사에서 사미계를, 1970년 통도사에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84년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거쳐 1988년부터 5, 6, 7, 9, 10, 11, 12대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과 2000년~2004년 조계종 12, 13대 중앙종회 의장으로 활동했다. 1994년 조계종 총무원 부원장,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중앙승가대 초대 총장을 역임했다.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