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묵 스님의 풍경소리] 믿음과 진리 사이에서 종교적 방황
[정묵 스님의 풍경소리] 믿음과 진리 사이에서 종교적 방황
  • 법보신문
  • 승인 2009.12.01 18: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치인, 국민을 겁나고 반목하게 하면 안돼
자기 뜻 옳다 확신해도 공감 얻고 실행해야

어릴 적엔 동무들과 대화중에 ‘매우’ ‘아주’라는 말 대신에 ‘겁나게 ~하다.’는 표현을 많이 썼었다. 한창 커가는 어린 아이 눈에는 주변의 많은 일들이 새롭고 대단해 보였기에 자기의 생각이나 경험을 벗어난 경우 즉 일상보다 많이 벗어났다 싶을 때 이런 표현을 흔히 사용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이런 표현은 마음이 크고 넓어져가는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라면서 세상에 익숙해질수록 주변 일들을 그저 그런 상례로 받아들이게 되어 이런 표현이 적어지고 어른 되어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잊고 있던 표현이 몇 해 전부터 주위에서 들려오더니 요즘은 뉴스를 대할 때면 내 입에서도 맴돌기 시작했다.

‘겁나게 밀어붙이네’
‘겁나게 서두르네’
‘겁나게 편가르네’
‘겁나게 휘두르네’
‘겁나게 바꾸려 하네’ 등으로.

헌데 이 말들은 어릴 적의 정겨운 감탄어가 아니라 정말 마음이 놀라서 자신의 생각으론 감당이 안 되어서 나오는 말이다. 누군가를 기쁨으로 깜작 놀라게 한다면 모를까 두려움과 염려와 불안에 싸여 놀라게 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반대로 남에게 두려움을 주지 않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없애주는 공덕은 크나크기에 보시(布施)에도 무외시(無畏施)가 있고 부처님의 수인(手印)에도 무외인(無畏印)이 있다.

강원 시절 깊이 존경하는 강사 스님 한 분이 계셨다. 그런데 어느 날 강주 스님이 그 강사 스님이 요즘 고민 중이라 하셨다. 강주스님이 말씀하시길 “내 방에 가끔 찾아오는 보살님을 보고 강사 스님이 ‘보살님은 왜 나는 피하는가요?’하니 그 보살님이 ‘스님이 좀 무섭고 어렵습니다.’해서 스님이 충격 좀 받으신 모양이야. 내 모습이 남에게 평온을 주지 못할망정 수행자가 되어 다른 이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하냐고 말이야. 이런 마음이 바로 수행자의 마음이 되어야 해” 라고 하셨다.

그 후 다른 처소에서 그 분의 특강을 청해 듣게 되었다. 문득 이전 일이 생각나 스님의 얼굴을 살펴보니 스님의 모습은 부처님의 모습을 그려낸 듯 그렇게 평안하고 맑고 밝음이 퍼져 나오는 환희로움 그 자체였다. 그동안 스님은 자신을 가다듬어 새벽 예불시 행선축원 한 구절인 “見我形者得解脫(견아형자득해탈·나의 모습 보는 이는 해탈을 얻으시길)”을 오롯하게 실현해 내신 듯 했다. 그래서 그 때의 특강은 강의 내용도 좋았지만 함께 한 도반 모두 그 강사스님의 상호를 통해 법희(法喜)를 느끼던 시간이었다.

나도 그 스님을 본받고자 해보지만 아직도 거리가 먼 듯하다. 얼마나 더 나이가 들고 닦아야 그 강사 스님이나 노스님들이 우리 후학들에게 베풀어주시는 단아하면서 온화로운 모습을 담아낼 수 있을 지 고민이다.

이와 같은 고민을 위정자들도 많이 했으면 한다. 잘은 모르지만 정치의 첫째 덕목은 국민이 믿고 따를 수 있도록 신뢰를 형성하고 불안을 내려놓고 평안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국민이 겁이 나게 해서는 안 되고 갈라져 반목하게 만들면 안 된다. 자신의 뜻이 옳다고 확신이 들어도 우선 주변의 공감을 얻은 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는 사심을 버리고 공정하게 내린 판단이라고 하지만 중생살이는 스스로에게 조차 속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여러 가지로 겁나는 것이 참 많은 요즘 세상살이인데 우리의 입에서 불안으로 ‘겁나게 ~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고 환희심으로 ‘겁나게 잘 하네요’라는 말이 나올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정묵 스님 manibo@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