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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만다라] 92. 분노 버린 수행자들

기자명 법보신문

분노 뛰어넘는 자비 지녀야 참 수행자

미움을 가진 무리 속에 있으면서도 미움이 없고
난폭한 무리 속에 있으면서도 마음 편하고
집착하는 무리 속에 있으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수행자라 부른다               
                                                                - 『법구경』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조계사 원심회 김장경 회장

『법구경』 수행자의 장에서는 수행자의 모든 행위와 마음가짐이 참다운 수행자의 모습을 갖추었는가를 여러 게송에서 설하고 있다. 그리고 각 게송의 인연담에서는 진정한 수행자는 존재의 공성(空性)을 이미 깨달았고 일체의 현상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구애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음 속 깊은 데까지 화를 내는 일이 결코 없을 때 진정한 수행자의 자격이 있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현상에서 벌어지는 어떠한 일에도 아라한과를 성취한 수행자는 결코 화를 내는 일이 없다는 것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수행자의 척도가 되고 있다. 위의 게송은 네 어린 사미가 공양을 올리는 신자로부터 무시를 당하고도 마음에 조금도 동요가 없었음을 칭찬하신 일화에서 설해진 가르침이다.

부처님의 거룩한 제자들 가운데 화를 내지 않기로 유명한 분은 사리불존자다. 사리불이 걸식을 하고 있을 때, 사리불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말로 화를 내지 않는가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한 외도가 사리불의 뒤통수를 거세게 후려친 일이 있다. 사리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식하던 모습 그대로 그냥 걷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뒷모습은 거룩하고 고요하였다. 이를 본 외도는 깊이 참회하고 용서를 빌었다. 사리불은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그를 용서하였고 제자로 받아들였다. 또 하나 사리불존자에 대한 일화가 있다. 사리불존자의 어머니는 성격이 거칠고 남자다운 면모를 지닌 분으로 묘사되고 있다.

뒤통수 얻어 맞고도 인욕한 사리불

어느 때 사리불과 그 제자들이 걸식을 하던 중, 사리불의 어머니 집에 이르게 되었다. 어머니로부터 공양물을 받아서 음식을 먹고 있을 때, 어머니는 큰 소리로 화를 내었다. 남의 음식찌꺼기나 받아먹기 위해서 부모를 떠나고 가문을 버렸냐고 호통을 치는 것이다. 사리불의 제자들은 혼비백산하여 서둘러 공양을 마치고 정사에 돌아갔다. 그러나 사리불존자는 어머니의 어떠한 호령에도 동요됨이 없이 선정(禪定)의 경지에서 공양을 끝냈다.

그리고 일상과 조금도 다름없이 참으로 고요한 모습으로 공양을 베푼 이에게 예의를 다하고 정사에 돌아와 삼매의 경지에 들었다. 사리불의 이러한 모습에 모두가 감동하여 한 단계 높은 수행의 경지에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세상의 욕망을 모두 제거한 사리불과 같은 수행자는 이미 어떠한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대자유를 얻은 이라고 칭찬하셨다.

또 부처님 당시, 욕 잘하는 바랏와자 네 형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바랏와자는 평소 화를 잘 내고 부처님 승가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부처님 승가에 귀의하여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깊이 호흡을 들이 쉬고는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곤 하였다. 이러한 부인의 행동이 거슬린 바랏와자는 어느 날, 부처님을 찾아가서 욕설을 퍼부으려고 대문을 나섰다. 이를 본 부인이 바랏와자의 뒤에 대고는 기왕에 부처님을 찾아가서는 무엇 하나라도 유익한 것을 질문해 배우고 오라고 당부하였다.

바랏와자는 정사에 도착하여 험상궂게 화를 내면서 부처님께, “인간은 무엇을 부수어 버려야 초연한 삶을 누리며, 무엇을 던져 버려야 슬픔이 없는 경지를 누릴 것인가?”를 질문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성내는 마음을 부수어 버림으로써 초연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타이르셨다. 바랏와자는 일순간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화내는 마음을 던져버림으로써 아라한과를 성취했다고 한다.

바랏와자의 동생 악꼬사는 형이 비구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부처님을 찾아가서 불같이 화를 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그 유명한 가르침을 설하셨다. 예를 들어 집에 찾아 온 손님이 선물 보따리를 들고 왔는데 주인이 이를 받지 않는다면 손님은 할 수 없이 선물 보따리를 도로 갖고 가야 하듯이 마음의 고요를 성취한 성자에게 화를 내도 그 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화를 낸 악한 기운을 도로 갖고 갈 수 밖에 없다고 경책하신 것이다. 악꼬사는 큰 충격을 받고 부처님 승가에 출가하여 성자의 경지에 올랐다. 결국 바랏와자의 형제들은 평소에 화를 잘 내는 나쁜 습관을 버림으로써 모두 출가하여 성자의 경지에 올랐다는 이야기이다.

미움 있으면 화는 순식간에 자라나

화를 낸다고 하는 것은 미움이 불처럼 솟구치는 악의 기운이다. 미움의 뿌리가 있으면 화는 일순간에 줄기와 가지로 숲을 이룬다. 이에 미움의 뿌리를 제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미움으로 가득 찬 사람들 속에서 오히려 미움을 삭혀 버릴 수 있다면 미움도 화도 이미 자취가 없다. 남이 나를 난폭하게 대하면 나의 마음도 동요되어 난폭해 질 것이다. 이것이 일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참다운 수행자는 난폭한 사람의 행위에 동요됨이 없이 난폭함을 뛰어넘는 자비를 실천할 때, 마음의 평정을 지켜갈 수 있다. 그리고 모두가 집착으로 뒤엉켜 살아가고 있을 때, 집착 없이 사는 방법을 몸소 실천한다면, 부처님과 선신의 칭찬이 우리 주위를 맴 돌 것이다.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그러므로 오직 노력할 뿐이다. 수행자의 생명은 근행정진(勤行精進)에 있기 때문이다.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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