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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묵 스님의 풍경소리]

기자명 법보신문

조사선 가풍은 일과 함께 현실생활로 구현
수행의 일부분인 울력전통 새롭게 세울 때

올해도 장들밭에서 가꾼 약 만오천 포기의 배추를 강원과 율원 학인 등 대중스님들이 꼬박 3일 동안 울력을 통해 배추를 절이는 일부터 시작해 오늘 보살님들과 함께 버무려 저장하는 일까지 해서 마무리 했다.

하지만 일이 학인 스님들에게만 미루어진 듯해서 미안한감이 많다. 물론 복 짓는 일이고 대중으로 해야 될 일기에 당연한 울력이긴 했지만 많은 울력이 학인 스님에게만 모이는 경향이 없지 않나 싶어서다. 그것도 공부고 수행이니 신심을 내서 하라고 하면서 왜 어른 스님들은 동참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해선 학인들에게 어찌 말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런 일은 절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만의 몫이라 한다면 승가의 가풍이 아닌 듯하다.
송광사 강원 시절의 김장 울력이 생각난다. 송광사의 김장도 대중이 많기에 양이 제법 많긴 했지만 일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큰 방에서 아침 대중공양 시간에 사중 소임자가 김장울력 발표를 하면 대중들은 개별적 일은 아주 긴요한 일이 아니면 자제하고 울력에 동참했다. 첫날 오후에 온 대중이 절 위 밭에 가서 배추를 뽑아 후원 마당으로 옮겨오는 일부터 시작해 양념을 버무리는 일까지 선방 스님들은 물론 뒷방 노스님들까지 나오셔서 일을 거들었다. 절집 울력엔 누워있는 송장 빼고는 모두 동참해야 한다는 말씀을 사실로 새길 수 있었다. 구산 큰스님께서 울력 하시면서 납자들의 공부를 점검하셨다는 가풍이 느껴지기도 하면서 울력 도중 평소에 대하기 힘들던 어른스님들과 친근도 해지고 공부를 비롯한 이런 저런 말씀을 편안하게 들을 수도 있어 좋았다.

그 후 실상사에 살적에는 울력이 제법 많았지 않나 싶었는데 사부대중 공동체 살림을 지향했던 터라 모든 울력에 열외가 있을 수 없었다. 평상시 청소 울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고사리 채취 울력 등에 주지스님 학장스님을 비롯한 스님들은 물론 재가자인 종무원, 작은 학교 선생님, 농장 식구들까지 함께 동참해 새로운 느낌이 있었다.

법주사에 살적에는 당시 주지 스님이 열반하신 정일 큰스님이셨다. 아침 마다 청소 울력이 있었는데 이때에는 뒷방 노스님들은 비롯해 주지스님도 사중에 계신 한 꼭 동참하셨기에 울력이 단순한 노동이 아닌 수행의 한 부분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다른 큰 절도 모두 이러하겠거니 했다. 하지만 이절 저절 살면서 보니 전 대중이 함께 하며 수행의 일부분으로의 울력 전통이 살아있는 곳은 드물구나 싶다.

그리고 절 집에서 대중울력으로 해결해야 할 일도 많이 없어진 듯 하다. 예전엔 절집에 가장 큰 울력이 농사울력과 땔감 울력이었다 하는데 이런 울력은 나 조차도 거의 경험해 보지 않은 울력이다. 큰 농사일은 이제 거의 기계와 품을 얻어서 하고, 땔감울력은 구들방이 거의 사라지고 보일러를 사용하기에 필요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큰 울력이라고 해봐야 김장울력 정도가 아닌가 싶지만 이런 추세라면 얼마 안가서 김장조차도 김치공장에 주문해 먹게 되어 필요 없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앞으로도 대중이 함께 하는 울력은 필요하고, 온 대중이 함께하는 우리 승가의 바람직한 전통은 이어가야 한다.
백장청규에 ‘一日不作 一日不食’이란 말씀이 드러내듯이 조사선의 가풍이란 것이 수행이 좌선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일과 함께 현실에서 생활로 구현되는 것이라 한다면 우리는 이 시대에 필요한 대중 울력을 새로이 찾아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울력을 통해 온 대중이 김장처럼 하나로 버무려지고 잘 익어서 우리 불교가 이 시대 온 중생의 양식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한다. 

정묵 스님 manib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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