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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효 교수의 다시 읽는 신심명] 23. 대승

기자명 법보신문

세상은 본디 양가적으로 구성돼
무위의 자연이 곧 일승이자 대승

지난번 말처럼 철학적 형이상학이 결코 존재론이 아니다. 신에 관한 형이상학, 인간에 관한 형이상학, 자연에 대한 형이상학 등의 표현이 가능하지만, 그 형이상학이 바로 존재론은 아니다. 그 동안의 철학자들은 착각했다. 엄밀한 의미의 존재론은 명사적 개념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명사적 개념(존재자)으로 분류함은 곧 자연히 비교에 의한 판단과 감정적 호오의 선택을 하게 한다.

『신심명』을 다시 읽자. “지혜로운 이는 무위(無爲=인위적으로 작위함이 없음)하고,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자박하도다. 법에는 다른 법은 없고 망령되어 스스로 애착하도다.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니, 어찌 크게 어긋남이 아니랴. 미혹하면 고요함과 어지러움이 생기고, 깨치면 좋음과 미움이 없거니.”

지난 회에 우리는 일승(一乘)의 법을 보았다. 일승의 법은 대승(大乘)의 법과 다르지 않겠다. 삼라만상의 자연 자체가 바로 일승이고 곧 대승이다. 자연은 인위적으로 작위함이 없이 모든 존재자들을 다 여여하게 존재하게 한다. 자연은 고요함과 어지러움의 구분이 서로 척을 짓게 하지도 않고, 또 사랑스러움과 미움이 서로 갈등의 소지를 일으키도록 갈라놓지도 않으며, 선을 지지하여 거기에 애착하지도 않고, 악을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도 않는다. 무위의 자연은 이미 그 자체가 일승이면서 동시에 대승이다. 어떤 자연도 어리석게 자승자박하지 않는다. 자연은 일체를 다 머금고 존재하는 일승이요, 또한 모든 것을 다 섭수하는 대승이다.

자연과 전혀 다른 모습의 존재방식이 있다. 그것이 인간의 사회생활이다. 인간의 사회생활은 택일하고 선별하고 분열시킨다. 인간의 지능이 그런 일을 감행한다. 인류의 역사가 그런 지능의 힘에 의하여 발전되어 왔다. 지능은 가급적이면 선한 자와 악한 자를 준별하고, 고요하고 시끄러운 자를 갈라놓고, 좋은 자와 미운 자를 대결시켜 놓는다.

그런데 그동안 인류의 사회법칙은 좋은 자를 살려주고 악한 자를 징벌하여 사회를 정화시키려 노력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동서를 불문하고 작위적인 이런 노력은 다 실패로 끝났다. 우리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간과하고 또 어리석게 도로(徒勞)를 시도한다. 불교는 세상을 한 가지 측면으로 청소하려는 모든 운동을 모두 마다한다. 왜냐하면 세상은 한 가지 측면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양가적으로 짜여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여여한 구성법칙은 양가적이기에 마치 약과 독이 서로 다르지만, 약과 독은 같은 근원성을 지니는 이치와 같다 하겠다. 즉 약과 독의 동근성을 우리는 약독의 이중성이라 부르겠다. 이 세상의 여여한 자연법칙을 이중성의 법칙으로 읽어야 한다. 약독만 이중적이겠는가, 선악(善惡)도 그리하고 미추(美醜)도 그러하고 진위(眞僞)도 그렇다. 다 이중적인 모습을 띠고 있어서 단가적인 하나로 통일되지 않는다.

원효대사가 불교의 철학을 논리적으로 정립할 때 동이(同異)의 이중성을 양가적으로 보기를 제의한 것은 깊은 철리를 담고 있다 하겠다. 우리는 원효대사의 사유를 유감스럽게도 너무 멀리 둔다. 그리고 불교의 만(卍)자를 그렇게 가까이 하지 않는 것 같다. 불교나 기독교나 다 믿음(信)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 믿음의 의미가 아주 다르다.

기독교의 신앙은 이성의 영역을 벗어난 곳에서는 오직 신앙만을 강조하지만, 불교는 이성의 영역마저 아예 거부하는 다른 철학을 정립했다. 이 다른 철학이 부처님이 보여주신 사실의 세계다. 불교의 믿음은 그것이 진짜 사실임을 신뢰하라는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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