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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명강의] 송광사 동당 법흥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출가수행자 되어 道 이루지 못하면 죽어서도 후회해

약인정좌 일수유 (若人靜坐 一須臾)
승조항사 칠보탑 (勝造恒沙 七寶塔)
보탑필경 쇄위진 (寶塔畢竟 碎爲塵 )
일념정심 성정각 (一念淨心 成正覺 )

만약 어떤 사람이 정좌하여 선정 삼매에 들것 같으면 우주법계에 칠보보배를 갖고 보탑을 짓는 공덕보다 수승하니 보탑은 부서져 필경에는 티끌 한줌으로 돌아가지만 한 생각 바른 마음을 깨달으면 정각을 이루기 때문이니라.
참선하라는 말입니다. 출가의 목적이 오직 도를 깨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서산대사의 게송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수많은 수행 중에 참선이 제일이니 천천만만생에 부처님 방에 앉음이 되느니라.’ 참선해야 도를 깨치기 때문입니다. 『지도론』에도 ‘계를 삼천겁을 지키고 부처님 말씀을 팔만세를 읽어도 밥 한 그릇 먹을 사이에 앉아서 실상을 생각함만 같지 못하다’고 하여 참선 공덕이 많음을 강조했습니다.

출가의 목적은 오직 깨달음

내가 1959년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서 효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득도 했을 때 효봉 스님의 첫 부탁 말씀이 “중 됐으면 참선해야지 다른 일이 있겠는냐. 강사가 죽을 때 후회하고 죽는다. 팔만대장경을 바로 읽고 거꾸로 읽어도 해탈하기 어려우니 참선하다 죽으면 지옥 갈 리야 있겠느냐”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각각의 종교들이 진리를 말하고 있지만 계정혜 삼학을 닦아서 해탈할 것을 말하는 종교는 불교밖에 없습니다. 계행을 청정히 지키면 정력이 생기고 그 정 가운데서 지혜가 밝아지면 생사가 해탈합니다. 이렇듯 계정혜 삼학을 닦아 생사를 해탈하는 종교는 불교뿐입니다. 참선이 이렇게 좋고 중요합니다. 출가한 목적이 도를 깨치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공부먼저 해야 합니다.

출가한 이후로 노장스님들을 뵐 때마다 들은 이야기가 또한 이처럼 참선 수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출가자가 되어 불사도 하고 헌 집고 고치고 절도 지어야 되지만 중은 죽을 때 가서 견성 못하면 그것밖에 후회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참선은 무엇 때문에 하는가. 선은 학문이 아닙니다. 직지인심견성성불이라, 성품을 보아서 성불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학문이 아닙니다. 학문의 왕인 철학이라는 것은 개념을 논리에서 구성한 세계입니다. 선과 논리는 적입니다. 논리는 분석이고 선은 화두에 대한 의심이고 공안에 대한 정신집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선이란 무엇입니까. 선이란 인간 현상이고 자기건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욕망충족을 위해 살기도 하고 타성에 젖어 살기도 합니다. 정치가는 권력을 잡기 위해, 예술가는 미의 창조를 위해 살고 있지만 인간 존재의 근원, 생명실상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이 마음을 깨치고 보면 생사의 근원을 알게 되고 선악의 근본을 알게 되고 우주가 내가 둘이 아닌 이치를 깨치게 되면 생사를 해탈하게 되니 그러므로 참선하는 것입니다.

서산 스님의 『선가귀감』을 보면 서산 스님께서도 간절히 말씀하시길 ‘총명불능적업 건혜미면고륜(聰明不能敵業 乾慧未免苦輪)’이라, ‘총명한 지혜만 갖고는 업의 힘을 능히 막을 수 없고 마른 지혜만 갖고는 윤회의 고통을 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마른지혜란 계행을 안 지키고 혜만 밝은 것으로 정혜쌍수가 안되기 때문에 생사해탈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말을 지껄이는 사람은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하지만 경계 부딪치면 말이 막혀 말과 행동이 달라집니다.

금지무생사(今知無生死)로되, 이불능탈생사자(而不能脫生死者)는 공부불도고야(功夫不到故也)라. 생사 없는 이치를 알기는 알았지만 내가 아직 생사를 해탈하지 못한 것은 내가 아직 공부가 이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경허 스님 법문에도 돈각문자 미명생사라, 문자만 깨달아서는 생사해탈이 되지 않는다는 말로 참선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문자로는 생사해탈 못 구해

중국에 일지 화상이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이 스님은 누가 와서 법문을 물으면 언제나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이 모습을 어린 상좌가 봤습니다. 하루는 스님이 출타하고 없는데, 한 스님이 찾아와 법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상좌가 스승을 흉내 내며 손가락 하나를 불쑥 내밀었습니다. 저녁에 일지 스님이 돌아오자 그 상좌가 스님에게 이 일을 고했습니다. 일지 스님이 이 말씀을 듣고는 “어찌 했는지 다시 한 번 해보라”고는 상좌가 손가락을 내밀자 시퍼런 칼로 그 손가락을 삭둑 잘라버렸다. 상좌가 놀라 엉엉 울자 일지 스님이 ‘아프냐’고 물었고, 그는 순간에 상좌가 깨쳤습니다.

이 공부란 이런 것입니다. 그러니 쉽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보다 쉽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중국 대선사에게 어느 학인이 묻길 “관세음보살이 어떤 분이십니까”하니 선사가 대답하길 “관세음보살은 부처님을 대신해서 중생을 제도하시는 무연자비의 화신이라” 하셨습니다.

무연자비란 무엇입니까.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어미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애욕과 집착에 의한 사랑이지만, 부처님이 중생을 사랑하는 것은 무연자비입니다. “중생이 원하는 바가 있어 내 명호를 부르면 그 소리를 들어 다 성취시켜주겠다”는 것이 관세음보살님의 원입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을 관자재보살이라고도 합니다. 지혜로써 사바세계의 모든 것을 자유자재로 관조하여 중생의 능력과 성격에 따라 구제한다는 뜻입니다. 관세음은 사바세계 중생의 괴로움을 관조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관조는 중생을 사바의 고해에서 건지고자 하는 서원에서 나왔으므로 대비의 승자, 구세자사라고도 합니다.

특히 세상의 소리를 본다는 것은 매우 시적입니다. 여러 가지 수많은 뒤섞인 소리를 듣기보다는 낱낱이 보는 것이 그 소리를 더욱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길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한 꺼번에 구제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손과 눈이 필요하기에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고 천, 백억 화신으로 중생을 구제합니다.

일음청진삼천계 (一音淸震三千界)
칠변선담팔체문 (七辯宣談八諦門)
운비수원응군기 (運悲隨願應群機)
차계타방증육취 (此界他方拯六趣)

한 소식 맑게 삼천대천세계에 진동하여 보살의 칠변으로 팔제를 쉽게 설하시니 모든 중생 원을 세워 근기에 맞게 상응하네. 이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향한 육취를 건지시며 배를 띄워 모든 오탁 넘어 피안으로 건너 주시네.

이분이 관세음보살이십니다.
그럼 지장보살은 어떤 분이십니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에 사바세계의 육도중생을 건져 제도하라고 부처님으로부터 부촉 받은 분이 지장보살이십니다. 56억7천만년 후에야 미륵부처님이 오시는데 그 동안 중생을 구제하라고 석가여래로부터 부촉 받으신 보살입니다. 그러므로 영가를 천도하기 위해 지장보살님 명호를 많이 부릅니다.

지장대성위신력(地藏大聖威身力)
항하사겁설난진(恒河沙劫說難盡)
견문첨례일념간(見聞瞻禮一念間)
이익인천무량사(利益人天無量思)

지장대성위신력은 항하의 모래만큼 많은 겁을 설하여도 못 다함일세, 잠시 동안 보고 듣고 절하더라도 인간천상 이익됨이 한량없도다.

출가자의 본분은 수행이고 수행 중에는 참선 공부가 최고이니 열심히 하시고, 기도 정진도 하시어 모두 성불하시기 바랍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2월 16일 송광사에서 봉행된 금강산림대법회에서 법흥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법흥 스님

1931년 충북 괴산에서 출생. 1959년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서 효봉 스님을 은사로 득도수계. 1974년 송광사 주지, 4대, 5대, 8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하고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오대산 상원사 등 제방선원에서 안거했다. 현재 송광사에 주석하며 청정 수행가풍을 계승하고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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