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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묵 스님의 풍경 소리]

기자명 법보신문

앎이 삶으로 구현되지 않으면 삶을 질식
작은데서 의미와 기쁨 발견해 희망 찾길

본디 자리에는 가고 오는 것이 없다고 하지만 중생살이에서는 경인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새해 머리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 자기 마음에 희망이란 기름을 들이붓곤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의 얼굴에서 밝은 희망의 미소가 아닌 체념어린 굳은 표정을 본다.

지난 해 경상수지 누적 흑자가 11월 기준 4백억 달러를 넘어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하고 도로에는 외제차가 많아 운전하기 부담스러울 정도이지만 국민 대다수인 중소시민의 살림은 해가 갈수록 각박해지고 어려워지는 탓이라 여겨진다. 그런 탓에 많은 이들이 꿈을 잃고 그저 하루하루를 모면하듯 꾸려가는 모양새다.
왜 우리는 지금 이런 슬픈 자화상을 바라보게 된 것일까.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시절에도 우리는 꿈을 이야기하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과 이루어야만 한다는 책임 의식이 가득 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강당에선 부녀회원들에게 초청강사가 굶주린 배를 달래가며 하루에 쌀을 한 움큼 씩 모아 그것으로 소를 사고 집안을 일으킨 이야기를 하면 박수를 치며 우리도 할 수 있다며 주먹을 꼭 쥐곤 했었다. 우리 누이네들은 서울 방직 공장에 다니면서도 야간학교를 다니고 돈을 모아 시골집 동생들 학비를 내려 보내야 하는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미래를 생각하며 웃음 짓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각자는 더 많은 기회와 능력을 가지고 있고 종교는 번창해 수천억원이나 하는 종교 시설을 거리낌 없이 올릴 정도인데 희망보단 체념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렇게 된 까닭은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어 부와 기회가 소수에게 편중됨에 따라 대다수가 일과 기회와 재화에 대한 소외감이 극심해짐에 따른 것이라는 게 일반적 견해일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 근본원인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배워 알고 필요 이상의 소유에 과부하가 걸리고 우리 서로가 서로의 희망이 되어주지 못하고 원(願)이 부족한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앎이 삶으로 점차적으로라도 구현되지 않고 그저 쌓여 비대해지기만 하면 앎이 그 삶을 이끌기보다는 들뜨게 하다가 종래에는 짓눌러 질식 시키게 마련이다. 그런 예가 우리 주변에서 교리 공부를 많이 한 분이 오히려 믿음을 잃고 오락가락하다 신행을 포기한 경우일 것이다.

그리고 필요와 능력 이상의 소유는 그 소유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리수를 두게 되고 자칫 자포자기에 떨어지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잘 수행하던 스님이 불사를 할 때에 뜻만 앞세워 지나친 불사를 하다가 오히려 정법과 멀어진 경우도 그렇다.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자기 삶의 형태를 뻥튀기처럼 부풀려 가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취업 등에서 적절한 기회를 놓치게 되고 결국은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새해 들어 원(願)을 세울 때는 무엇을 더 많이 얻어 삶의 형태 부피를 부풀리겠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오히려 지금의 부피를 줄여 줄어듦에서 오는 자유와 집중함을 통한 작은 것에서 의미와 기쁨을 발견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으면 한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가 주변에게 아픔과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다가들 수 있기를 발원 했으면 한다. 그리고 그 원을 일상 삶으로 담아 낼 수 있으면 한다. 그 원이 우리 삶의 하나하나에 담길 때 앎은 힘이 되고 삶은 깨끗해지고 서로의 희망이 된다. “밤에 잠을 잘 때에는 중생이 모든 활동을 쉬고, 오염되지 않는 청정한 마음 얻기를 원할 지어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에는 중생들이 모든 것을 올바로 알고, 시방의 중생을 저버리지 않기를 원할 지어다” 화엄경 ‘정행품’에서 바로 그런 삶을 그린 내용이다. 우리 모두 비로자나 대원의 바다에 흘러들기를 기원해 본다. 

정묵 스님 manib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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