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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의 생명을 위한 변명] 역행보살 헌터스

기자명 법보신문

멧돼지 사냥 방송 ‘헌터스’는 인간의 오만함
생명, 웃음거리로 전락시켜…폐지 결정 환영

불가에 역행보살이 있다. 원성 스님은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고 인욕을 가르치는 보살이라고 한다. 역행보살의 음덕은 상대로 하여금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깨우치게 하고, 자비의 마음을 기르게 하는 것이란다. 그러나 경봉 스님은 어떤 경우에도 역행보살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했다.

멧돼지 사냥논란으로 작년 연말을 뜨겁게 달구었던 MBC 일밤의 헌터스는 역행보살이었다. 인간의 오만이 인간 이외의 다른 종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헌터스는 잘 보여주었다. 공영방송 MBC가 생명을 웃음거리로 전락시켰다가 시청자의 몰매를 맞고 결국 프로그램을 내린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여라,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 친족을 만나면 친족을 죽여라, 그리하면 비로소 해탈을 얻을 것이다.”

활인검을 썼던 임제선사의 유명한 법어이다. 역행보살 헌터스는 멧돼지를 죽이려 했고, 헌터스폐기공동대책위원회는 헌터스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아무도 죽지 않았다. 헌터스는 인간과 생태계의 공존이라는 화두를 들고 에코하우스라는 선방에 스스로 기어들어갔고, 공동대책위는 삼라만상의 만물과 지구생태계의 위기가 인간 이외의 종에 대한 인간의 오만한 헌팅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재확인한 채, 동안거에 들어갔다. 근대이성은 인간중심의 철학과 과학을 바탕으로 인간을 인간 이외의 종에 대한 반생명적, 반생태적 헌터스로 만들었다. 인간은 누구나 역행보살이 된 것이다.

성서의 생태학적 시편이라 불리는 시편 104편은 생태계의 균형과 법도를 어기는 존재는 인간뿐이라고 하고, 이런 인간을 악당이라 칭하여 하나님의 정원에서 내쫓고 있다. 삼라만상이 이미 부처인데, 인간만이 유독 탐, 진, 치의 사슬에 매여 부처가 되지 못하는 불교의 이치와 같다. 고금을 막론하고 선지식의 매서운 죽비가 존재하는 까닭이다.

선방은 치열한 공간이다. 기어들어갔던, 스스로 들어갔던 선방에서 무너지면 희망이 없다. 이런 점에서 역행만 저지르던 헌터스가 온갖 부처가 사는 생태계에 대한 그간의 무지를 통렬하게 자각하고, 에코하우스에서 인간 탐욕의 찌꺼기인 탄소를 철저히 잡아내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작자와 MC들이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우선 말부터 가려야 한다. 탄소 제로는 실천으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관세음보살, 시청자들의 충고로 태도를 바꾼 만큼 물러서지 말고 진일보해 주기를 바란다.

각별히 주문한다. 선방수행의 기본원칙은 묵언정진이다. 인내의 한계를 넘어 흘리는 땀과 눈물은 수행자 뿐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아름답게 한다. 겨울추위가 매섭다. 서산대사의 눈길을 경인년 새해의 경구로 새기며, 에코하우스 마당에 연꽃이 피기를 기대해 본다.

답설야중거 불수호난행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정호 동물보호단체 카라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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