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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만다라] 96. 삶이 천차만별인 이유

기자명 법보신문

매 순간 업따라 현상 나타나니 영원한 것 없어

인간 세상의 모든 인연을 끊고
천상의 인연도 초월하고
온갖 인연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수행자라 부란다.                                  
                                   - 『법구경』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조계사 원심회 김장경 회장

우리의 삶은 인연의 얽매임으로부터 시작된다. 좋은 사람들끼리 만나면 좋은 인연을 엮어가고 나쁜 사람끼리 모이면 나쁜 인연을 엮어가면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세상을 둘러 보면 천차만별한 사람들의 인간관계를 볼 수 있다.

『화엄경』 보살문명품은 문수보살과 각 분야 최상의 지혜를 갖춘 보살들이 모여서 문답하는 내용이다. 그 중에 문수보살은 짐짓 보수(寶首)보살에게 묻는다. ‘모든 중생들이 다 각각 근본 실체는 공(空)하여 평등한 것인데, 왜 각각의 삶이 이토록 차별하여 괴로움을 받기도 하고 즐거움을 받기도 하며, 단정하기도 하고 누추하기도 하며, 부유하기도 하고 빈궁하기도 하는 등’의 차별이 있는가를 묻는다. 이에 보수보살은 지혜제일 문수보살에게 성심성의로 답을 하고 있다. 그 까닭은 중생들이 매 순간 그들이 행위(行爲)하는 업을 따라서 여러 가지 현상이 과보로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업을 짓는 나 자신도 허망한 존재이며 지어서 눈앞에 나타난 업 또한 영원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에 울고 웃는 우리들의 모습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비유하면 깨끗하고 밝은 구술은 그 존재가 무색투명한데 그 앞에 다가와서 나타나는 물체가 붉은 색이면 붉은 빛을 내게 되고 푸른빛이면 푸른색을 낸다는 것이다. 괴로움의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행위로서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현상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이치를 현세만 바라보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지만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로 압축시켜서 바라보면 과보로서의 결과가 확연히 보이게 된다. 금생에 부족한 부분은 과거생의 부족함이라고 보고 금생에 채워가도록 노력하면 된다. 그와 꼭 같이 미래의 충만을 위해서는 지금 금생에 채우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모든 행위가 현실을 좌우

이러한 이치는 남에게 적용하면 무자비한 이론이 된다. 불교는 어디까지나 자신을 바로세우고 자기를 올곧게 지키는 종교이다. 자신에게는 인과응보를 적용하여 수행을 더욱 철저히 하고 남을 향해서는 오직 자비의 실천만이 요구된다. 귀하고 천함을 떠나서 일체중생을 동일진성(同一眞性)이라고 보는 평등의 원칙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오직 자비의 실천을 강조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현상은 천차만별하다. 이러한 천차만별의 현장에서 깊은 수행도가 펼쳐져야 한다. 중생의 업이 각각의 세계를 만들어 가기 때문에 자신의 업을 정화(淨化)시키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 가야 할 것이다.

삶은 사람과의 만남의 연속이고, 자신의 업을 정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자연히 선업(善業)을 쌓게 된다. 선업을 쌓는 사람은 좋은 인연을 만날 확률이 높다. 좋은 사람을 만날 때 비로소 우리는 행복을 얻게 된다. 이렇게 말하면 좋은 사람은 상대방으로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고정관념을 전환시켜서 생각해 보면, 좋은 사람은 나로부터 만들어 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세상의 논리라면 당연히 다가오는 상대방을 좋은 사람으로 만나려고 노력하겠지만,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는 불교인의 이야기라면 선업을 쌓는 좋은 사람은 나로부터 만들어가야 한다. 내가 먼저 선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서 상대방에게 향할 수 있다면, 자연히 좋은 사람이 나를 향하여 다가오게 될 것이다.

설혹 악업의 사람이 나의 가까이 있더라도 나의 맑은 기운이 더욱 힘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종교의 세계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좋고 나쁜 만남이라는 것은 맺고 끊어야 하는 인연이 아니라, 항상 가꾸어 가야 하는 일상의 삶인 것이다.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가꾸어 갈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인연에 얽매이는 삶이 아니라 인연을 벗어나서 사는 초탈(超脫)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맑은 구슬은 각양각색의 빛을 다 비추어 내면서도 자신의 맑음을 잃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들의 하루하루의 삶이 인연의 얽매임 속에 괴로움의 연속이라고 토로하고 있지만, 그러나 서로가 엮어가고 있는 매 순간의 만남을 기쁨과 감사로 승화시키는 힘을 길러 내어야 한다. 그리하여 인연의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서 사는 모습이 ‘온갖 인연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며, 참다운 불교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는 가르침이다.

주인되는 능동적 삶 가능

출가수행자들은 출가 이전의 과거의 삶이 있다. 그러나 부처님 교단에 출가한 이후에는 과거의 삶은 모두 떨쳐버리는 것이 승가의 법칙이다. 출가자의 자리매김은 세속적인 권력이나 세상의 연배(年輩)로 상하(上下)를 따지지 않는다. 과거에 쌓아온 모든 소유는 출가를 결행하는 순간에 모두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오직 얽매임이 없는 바람과 구름처럼 성자(聖者)의 품격을 갖추어 가는 것이다. 세속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도 연꽃이 진흙 속에서 향기를 내뿜듯이, 괴로움 속에 살면서 괴로움을 벗어나 살 수 있어야 한다. 적게 소유하고 자기를 비워버림으로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오늘 날 이 세상에 불교가 필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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