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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효 교수의 다시 읽는 신심명] 24. 놀이하는 마음

기자명 법보신문

대승은 선과 악의 경계마저 없는 평등세계
이분법적 논리는 사회를 더욱 경직시킬 뿐

젊었을 때에 나는 불행히도 불교적 사유방식을 싫어했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뜨뜻미지근한 소리처럼 불교가 들렸다. 그렇게 해서 세상을 구제하기가 어렵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세상을 선악으로, 진위로 따지고 판단하고 심판하는 사상이 세상을 위하여 얼마나 기여했으며 세상을 얼마나 정화시켜 놓았던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른바 도덕철학과 정치철학의 예리한 선악의식이 세상을 정화시키기 위하여 세상에 발을 들어 놓자마자, 그 사상과 대립 반대되는 또 다른 사상이 등장하여 철학사상들끼리 일대 논쟁의 회오리바람에 휘말리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그래서 현실은 두 쪽이나 세 쪽으로 쪼개져서 피투성이의 역사를 꾸려가기 어찌 한 두 번이었던가.

이런 사실을 역사적으로 체험한 적이 여러 번이었던 인류는 또 어리석게도 세상을 구제하려한다는 사상을 제조하여 내놓으려는 발상을 반복하려 한다. 어리석은 중생의 치심(癡心)이 이보다 더 심할 수 있을 손가.

불교의 일승과 대승은 선이 악을 완전히 장악하여 악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교정의식의 사유가 아니다. 일승과 대승이 그런 교정의식이 아니기에 더욱 더 우리에게 귀중하다. 일승과 대승의 사유는 선이 악과 함께 배를 타고 욕망의 바다를 건너 불국토에 안착하겠다는 사상이다. 그러면 악을 어떻게 요리하겠다는 발상인가? 불국토에서 악을 어떻게 대처하겠다는 발상인가? 나는 여기서 우리시대의 경봉 대선사가 법어집에서 남긴 말씀을 기억한다.

“여보게! 이 세상에서 한 판 잘 노시고 가시게!”
십수년 전 그 법어집을 읽었을 때 나는 그 의미를 간파하지 못했다. 불교가 기독교와 유교처럼 목적론도 아니고 엄숙주의도 아님을 잘 알았지만, 이 세상에서 잘 놀다가 가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좀 알 것 같다. 일승과 대승의 사상은 결국 놀이의 사상이다.

말하자면 선/악이 놀이하고, 진/위가 함께 놀고, 미/추와 성/속이 뒤섞여 노니는 곳에 무엇이 일어나는가? 니이체는 어린 아이의 놀이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대망각’을 말했다. 전에 나는 니이체를 좋아해서 좀 읽었으나, 겉멋에 취해서 그 진국을 소회하지 못했다. 그러나 불교의 이해와 더불어 니이체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경봉 선사가 말한 놀이하는 인생살이는 결국 사회생활에서 각자가 놀이의 재미에 함빡 젖어 선악인이 다 함께 일승에 실려 다 자기를 잊은 상태를 말한 것이 아닌가? 악인의 자아망각은 이미 악인이라고 부르기 어렵지 않겠는가? 자기망각에 빠진 인간들의 사회는 이미 선악을 넘어 함께 즐거워하지 않겠는가?

악을 증오하면서 선의 칼날을 예리하게 가는 도덕윤리사상보다 놀이하는 아이의 마음과 같이 서로서로 맡은 역할에 따라 주고받는 놀이의 교환하는 행위가 더 부드러운 사회를 만들지 않겠는가?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주자학적 원리주의에 세뇌되어 선원리주의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으리라는 망상에 젖어 있다.

그 선원리주의는 실상의 구체적 내용과 달리 추상적 명분의 이념으로 신앙화 되면서 한국사회를 더욱 더 경직화시켜 나갔다. 조선조 주자학 사회가 놀이를 추방시켜 나갔듯이 우리는 놀이를 무가치한 잡것들의 시간낭비로 여기는 병폐가 있다. 우리는 선이 악을 짓눌려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선이 악과 함께 놀아주는 예술의 경지를 깊이 사유해야 한다. 일승의 사상은 예술적 마음으로 선악의 예리함을 달래고 무디게 하는 자기망각의 묘미를 생활화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자.

김형효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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