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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명강의] 인도 다람살라 수행 23년 청전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행복은 치열한 신앙의 희생 위에서만 꽃핀다

부산 관음사에 다녀 간지도 벌써 2년이 됐습니다. 그 때 티베트의 라닥 스님 여섯 분을 모시고 법회를 했습니다. 그 스님들과 함께 통도사와 범어사, 멀리는 송광사뿐만 아니라 해인사, 동화사도 갔습니다.

인도로 돌아가기 전 저는 한국에서 무엇이 제일 좋았는지 물었습니다. 스님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용두산 공원의 탑 꼭대기에 올라가서 본 부산시 야경을 떠올렸습니다. 80세가 넘은 스님들이 한결같이 “여기가 극락”이라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전깃불을 보고는 ‘꽃’이라며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습니다. 당신들의 말을 빌리면 한국은 분명 극락입니다. 그러나 정작 극락 같은 한국에서 불만과 불신으로 살아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보통 삶의 결과는 모습에 드러납니다. 대표적인 것이 얼굴입니다. 얼굴은 우리 삶의 결과물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정신적인 평화와 내적인 고요함을 얻기 위해 먼저 희생을 감내해야 합니다. 부연하면 신앙의 희생을 치러야 합니다. 희생을 치르지 않는 신앙은 관념적이기 쉽습니다. 새벽마다 보는 예불은 자기 신앙에 대한 희생의 하나입니다. 여러분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티베트 스님들의 편안한 모습, 인도 난민들의 가난하지만 평온한 미소를 접했을 것입니다. 행복한 모습으로 오체투지를 하고, 거리에서 염주를 들고 진언을 외우는 장면도 있습니다. 모두 신앙이 밑받침 될 때 행복해 질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어느 종교나 행복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행복해지기 위해 먼저 자기희생을 하라고 하면 쉽게 하지 않습니다. 어디 불사를 한다고 하면 동참을 하지만 자기 몸으로 땀 흘리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업장은 불사금을 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직접 몸과 말과 행동으로 실천할 때 소멸됩니다.
티베트에서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의 소멸을 중요시 합니다. 몸으로 지은 허물은 절, 입으로 지은 허물은 염불이나 진언, 마음으로 지은 허물은 간경이나 참선을 통해서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특별히 신구의 삼업을 한꺼번에 정화하는 길로 성지순례를 권합니다. 그런데 한국 불자들이 성지순례 하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성지관광입니다. 성지에 가서 사진 찍고 기념품 사오는 것이 성지순례인양 착각합니다. 성지순례는 순례를 통해 업장도 소멸하고 부처님 앞에서 더 나은 삶을 살겠다고 약속하는 시간입니다. 지금 삶보다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내가 되겠다는 다짐입니다.

남 배려할 줄 알면 스스로 행복

지난 법회 때 카일라스 순례의 경험을 다 말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제가 카일라스 성지순례를 할 때 상황은 처절했습니다. 덕분에 업장이 많이 소멸된 것 같습니다. 특히 유목민을 통해 카일라스 순례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인도남단을 한발로 출발해 12년 만에 카일라스를 오른 힌두교 수행자, 사천성에서 카일라스까지 삶의 절반을 오체투지한 티베트 불자, 마지막으로 오체투지로 고비 사막을 건너 카일라스에서 열반한 몽골 스님까지, 그 분들의 이야기를 할 때면 지금도 숙연해집니다.

어떻게 보면 저는 행복합니다. 성지순례 이후 남을 배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앙에 대한 희생을 통해 배우는 것이 바로 남에 대한 배려입니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은 스스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고 보면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공양의 대상은 남이 아닌 바로 자신입니다.

티베트에서는 폐관수행을 합니다. 이른바 무문관 수행입니다. 이 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천일동안 밖을 나가지 않습니다. 누군가 시간에 맞춰 공양만 넣어 줄 뿐입니다. 달라이라마께서는 폐관 수행을 통해 천일동안 집중하다보면 몸과 마음, 그리고 모든 기관이 바뀌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아라한과에 들어가면 육신통이 나온다고 합니다. 난행, 고행, 집중하는 기간을 통해 심신이 불보살의 몸으로 바뀐다는 내용은 경전에도 나와 있습니다.

지난해 폐관 수행을 하는 곳에 간 적이 있습니다. 움막에는 창문도 없습니다. 폐관 수행은 빛을 차단시킵니다. 빛이 차단됐다는 것은 시간이 단절됐다는 것을 뜻합니다. 심지어 보름에 한 번 공양물을 넣는데 전에 넣었던 음식이 그대로 있으면 선정 상태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죽은 경우입니다. 다음 달 신호를 보내서 응답이 없으면 죽은 것입니다. 그러면 움막을 해체합니다. 그곳에서는 죽어서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폐관 수행자는 수행에 앞서 서약을 합니다. 부처님과 스승 앞에서 죽음이 와도 이 수행을 하겠다고 말입니다. 이런 모습을 처음 본 우리나라 스님들의 반응은 눈물입니다. 어떤 말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웁니다. 부끄럽다고 합니다.

하루 15분 수행은 건강 지름길

우리는 천일동안 어디 가지 않는다고 하면 답답증이 생깁니다. 한국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컴퓨터와 휴대폰을 끊임없이 사용합니다. 그러다보니 머리만 있고 가슴이 없습니다. 눈물도 없고 감동도 없습니다.

불자라면 매일을 수행으로 업장을 소멸시켜나가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극락세계를 인식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 이 몸 받은 것 그대로입니다. 더 이상 어떤 대안이나 편리나 풍요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 소중한 시간에 이 몸이 얼마나 보배로운지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부처님 경전에도 인간 몸 만나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끝까지 경전을 봐야 합니다. 많이 본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마음을 맑히기 위해 하루에 한 줄도 좋습니다. 부처님 말씀은 법보입니다. 경(經)을 매일 읽는 습관을 지니십시오. 이 수행은 결코 흩어지지 않습니다.

절도 마찬가지입니다. 108배가 어려우면 처음에는 좀 낮게 잡으십시오. 21배만 하겠다. 33배만 하겠다, 이 정도 역시 괜찮습니다. 절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의 희열감은 돈과 매스컴, 영상매체로 얻을 수 없는 영양제이며 삶의 활력소입니다. 하루 15분만 배려하면 그 자체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건강도 좋아집니다.

이 시대의 불안 중 하나는 ‘건강’입니다. 암, 심장질환, 당뇨 등 불치병 환자가 많습니다. 이 병들은 대부분 규명이 되지 않습니다. 미국 정부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최고의 의학자 600명에게 숙제를 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불치병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결과 보고서가 지난 2008년 나왔습니다. 달라이라마의 법문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대인의 불치병을 치유하는 길은 단 한가지입니다. 착하게 살고 사랑의 마음,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병이 올 수 없습니다. 놀라운 결과입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보리심’이라고 합니다.

연말연시면 불우이웃돕기 행사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도움이 아닙니다. 연말에만 찾아가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사진을 찍는 것은 폭력이나 다름없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드러나는 도움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행동입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도 모르게 하는 무주상 보시입니다. 저는 티베트 라닥에서 수행 차원으로 산골 마을이나 절간에 약을 드립니다. 스님도 재가불자도 약을 받고 웁니다. 그 약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닙니다. 진심이 통했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위한 행동은 자기의 일이고 자신의 행복입니다.
기쁨이 있고 미소가 있기 위해서는 자기희생이 따르는 신앙의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자,

여러분 얼굴을 봅시다. 다음에 오면 더 밝은 모습, 행복이 깃든 모습을 확인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주시길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부산 관음사(주지 지현)가 지난해 12월 30일 경내 원통보전에서 봉행한 ‘청전 스님 초청 보름 법회’ 법문을 요약 게재한 내용입니다.


청전 스님은

1953년 생으로 1977년 송광사로 출가했다. 1987년 남방불교와 티베트불교 수행을 경험하기 위해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의 수행처를 방문한 스님은 같은해 달라이라마와 만난 후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를 보좌하면서 수행 중이다. 스님의 저서로는 『입보리행론』(2004, 하얀연꽃), 『깨달음에 이르는 길』(2005, 지영사), 『달라이 라마와 함께 지낸 20년』(2006, 지영사) 그리고 최근 출간한 『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2010, 한겨레출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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