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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 천도재비

기자명 법보신문

새해 벽두부터 천도재의 상업화가 도마 위에 올랐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이 천도의식에 대해 비판해온 게 사실이다. 육신과 생명을 간직하고 있는 모든 중생들에 대한 무한의 사랑을 넘어 육신을 떠난 영혼에게까지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자하는 불교의 가르침은 정말 다른 어떤 종교의 가치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대단한 사상임에 틀림없다.

처음 불교를 접하고 한순간에 스스로 불자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지장보살의 대원력 때문이었다. 교리책에 지장보살을 ‘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모두 구제하기 전에는 성불도 뒤로 미루고 지금도 지옥의 문 앞에서 육환장을 들고 연민의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보살님’이라고 설명해 가르쳤다.

젊어서 한 때 다른 종교에 몸을 담은 적이 있었다. 그때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 모순은 그들과 같은 종교적 신앙이 없는 자들에 대한 가차 없는 증오심이었다. 사회의 보편적인 선(善)에 대해 단호히 부정하고 오직 자신들의 신앙체계만이 유일하다고 하는 가르침을 강요받으며 힘들어 했었다. 어찌 보면 자신들의 선명성을 부각하기 위한 발버둥이었겠지만 결국 그 교리체계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젊은이는 스스로 떠나야 했고, 긴 시간의 목마름 후에 접하게 된 불교 사상은 환희로움 그 차제였다.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중생을 어려움에서 구원하겠다는 원력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사상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토록 무한의 용서와 사랑을 담고 내게로 다가왔다. 출가 이후 지장보살님에 대한 생각은 본의 아니게 많은 상처(?)를 받아야만 했다. 무한의 자비로 중생들도 모두 구원하신다는 지장보살님이 사찰에서는 오직 죽어간 영혼들을 구원하기에 급급해 하는 모습으로만 비춰져서 혼자 쓴웃음을 짓곤 했다.

어젠가 막 입문한 보살이 상담을 하러 왔다. 경영하는 일에 어려움이 많아 어느 스님을 만나고 오는 참이었다. 그 스님은 용케 자신이 현재 여러모로 어렵다는 것을 아시고 계셨고 그 해결 방법을 물었더니 조상 천도재를 지내라고 하셨단다.

보살이 재를 지내는데 비용이 얼마나 드느냐고 물으니 비싼 것, 중간 것, 좀 싸게 지내는 것이 있다고 하여 비싼 것은 어떤 염불하고 싼 것은 어떤 염불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스님이 갑자기 당황해하면서 염불은 다 같은 염불한다고 했다. 그러면 왜 가격이 차이가 나느냐고 하자 정성이 다르다고 했다. 초심보살은 현재 여유가 없으니 스님께서 조금 적게 받으시고, 정성을 많이 드려주시면 안되겠느냐고 물었다. 갑자기 스님은 그러면 천도가 잘 안된다면서 역정을 내어 더 이상 묻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궁한 나머지 다시 스님께 천도재를 지내면 확실히 장사가 잘 될 것이냐고 하자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초심보살은 우선 천도재를 지내고 장사가 잘되면 벌어서 재비를 꼭 드릴 테니 재를 지내 달라고 했지만 그 스님은 또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했다. 더 이상 묻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할 건지를 몰라 내게 상담을 온 것이었다.

정말이지 천도재가 그토록 중생을 이익되게 한다면 스님들이 우선 여법이 정성을 다해 천도를 해드려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재를 지내다보면 자광조처연화출(慈光照處蓮花出) 이라는 게송이 나온다. 자비의 빛이 비칠 때만이 불교의 이상세계인 연화장세계를 이룩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약천사 주지 성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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