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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의 생명을 위한 변명] 위대한 침묵

기자명 법보신문

인간만이 구원의 대상이라는 신부의 강론
사탄의 신학이자 지옥문턱에 이르는 구업

‘침묵은 금이다’라는 침묵의 경제학이 있다. “구시화문(口是禍門)이니 수구여병(守口如甁)하라.” 그러면 경제적으로도 잘 살수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 영화가에 침묵의 경제학이 작동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사가 거의 없는 다큐영화 ‘위대한 침묵’이 ‘아바타’ 등 대작의 홍수 속에 주말평균 좌석점유율 60%를 점하며 ‘고요한 흥행’이 계속되고 있다.

알프스 깊은 계곡의 해발 1200m 고지에 있는 수도원의 일상을 비 오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눈 내리는 소리, 새의 지저귀는 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담고, 계절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수도사들의 침묵을 영상에 담았는데, 예상을 깨고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침묵이 속도와 소음에 지친 현대인들의 영혼을 치유하는 효과를 발휘하며, 흥행이라는 경제효과를 내고 있다. 죽임의 시대를 넘어 생명살림의 시대로 가는 길목에 오만한 인간의 철저한 반성을 침묵으로 촉구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면, ‘소음은 쓰레기다’라는 발언의 경제학이 있다. “구시화문이니 구업 짓지 말라” 그러면 망하지 않고 잘 살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연말 한 방송이 내보낸 프로그램 하나가 쓸데없는 시간 허비와 통화비용을 발생시키는 등 몇 사람의 기회비용을 앗아갔다. 평화방송이 강원도 횡성의 시골신부에게 예수흉내내기를 주문하고 강론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는데, 이 시골신부는 ‘사람이 개보다 소중하다’라는 제목으로 신념에 찬 강론을 했고, 평화방송은 무려 9차례나 방송을 내보냈다. 요지는 이렇다.

“개는 생물학적으로 사회적 기생동물이기 때문에 특별히 보호하거나 사랑할 필요가 없다. 개는 개일 뿐이며, 사람은 얼마든지 개고기를 먹어도 된다. 물건이나 동식물은 쓸모없어지면 버려도 되지만, 사람은 버리면 안 된다. 사람만이 구원의 대상이다. 이게 창조의 섭리이고 자연의 섭리이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자기를 개엄마라고 부른다. 자신이 개라는 것이다.”

가톨릭 신부의 강론을 평화방송이 다루었다는 점에서 심각했다. 하느님의 말씀을 사제가 대신 전한 꼴이 됐기 때문이다. 담당PD와 시골신부에게 동물보호법상 국가와 모든 국민은 동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데 이 강론은 이에 반하고, 최근 논의되고 있는 생태신학에도 배치되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음을 설명하고 재방중단을 고려해 줄 것을 요청했다.

홀아키적 세계관에 따르면 창조적진화의 주체인 하느님은 온 우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피조물 전체가 구원의 대상이 된다. 생물종다양성의 보존과 동물권의 회복, 오만한 인간의 무의식이 치유되는 과정 없이 하느님의 구원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만일 하늘나라에 동물이 없다면 그곳은 진정 천국이 되지 못할 것이며, 이런 신학을 사탄의 신학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한다. 불가에서는 “방자한 말놀음은 지옥문턱에 이르는 지름길이니, 구업 짓지 말라”며 신신 당부하고 있다. 이 시골신부의 강론이 우려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금년 겨울 많은 눈이 내렸다. 침묵을 요구하는 폭설이다. 이 눈이 다 녹으면 다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올 것이다. 죽음처럼 고요한 자연의 ‘위대한 침묵’의 봄은 오래갈 것이다.

정호 동물보호단체 카라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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