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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도밀교는 삿된 수행법일까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10.01.21 22:41
  • 댓글 0

이용현 금강대 연구교수, ‘헤바즈라’ 조명
불교해석학적 접근…‘탄트라 코드’ 소개

 
헤바즈라 탄트라 도상

인도 후기밀교를 대표하는 성전인 『헤바즈라 탄트라』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성적인 부분과 더불어 극도로 혐오스러운 것들의 섭취를 장려하는 등 현대의 도덕적 규범이나 관습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는 탓에 『헤바즈라 탄트라』로 대변되는 좌도밀교는 불교계 내부에서조차 심한 거부감은 물론 삿된 법이라는 비판을 공공연히 받았다. 실제 중국 원말 황제가 『헤바즈라 탄트라』의 일부 음란한 의례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행함으로써 원나라의 멸망을 촉진시켰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이상한 수행들로 가득 차 있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처럼 보이는 『헤바즈라 탄트라』에 대해 인도 후기밀교와 티베트불교의 저명한 고승들은 그토록 높이 평가했던 것일까.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밀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 이용현(52) 연구교수가 국내에선 드물게 이 문제를 다뤄 관심을 모았다. 이 교수는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가 1월 20일 금강대 본관에서 개최한 제10차 콜로키움에서 기괴한 수행법과 표현들이 가득한 『헤바즈라 탄트라』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오랜 세월 어떻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면밀히 고찰했다.

이 교수는 “범부의 눈에는 선악을 초월한다는 것이 어떤 지고의 중립상태보다는 단순히 악마적인 것으로 비추기 십상”이라고 전제한 뒤 “『헤바즈라 탄트라』에 대한 높은 평가 배경에는 윤회에 지배되는 세속과 윤회를 초월한 열반이 본질적으로 하등의 차이도 없다는 용수의 가르침에 근거한 대승불교의 이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당시 학식이 높을 뿐 아니라 위대한 성취자들이기도 했던 후기밀교의 저명한 학승들은 헤바즈라 전통에 속한 수행법들이 제대로 행해질 때 불교에서 알려진 어떠한 방편보다도 효과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는 것. 그리고 이들은 『헤바즈라 탄트라』처럼 이교도적이고 악마적인 표현들로 가득한 탄트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 그 대안으로 온건한 표현들로 바꾸는 동시에 해석학적인 기준에 의해 이중 혹은 다중적인 의미들의 계층들을 적절히 살펴 구분했다는 것. 그리고 그 대표적인 인물로 캉하, 라트나카라샨티와 같은 저명한 주석자들을 꼽았다.

이 교수는 이들 주석자들이 불교의 해석학적 방법[4依說]을 이 기괴한 내용의 탄트라에 어떻게 적용했는지를 개괄적으로 고찰했다. 특히 4의설 중 “‘잠정적인 의미’의 경(불요의경)이 아니라 ‘궁극적인 의미’의 경(요의경)에 의존해야 한다”는 불교해석학이 인도 후기밀교가 들어서면서부터 크게 변용되고 발전됐음을 논증했다. 즉 ‘잠정적인 의미’이거나 ‘궁극적 의미’ 중 하나만 지향했던 현교와 달리 인도후기 밀교의 주석자들은 탄트라의 많은 구절들에 이중적 의미를 포함시켰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또 비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탄트라 코드’를 소개하며 금강, 연꽃, 보리심 등 어휘들이 남성기, 여성기 등 성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장뇌, 유향, 네 개의 성분이 들어간 마실 것, 쌀 등 어휘들은 정액, 월경 시의 피, 대변, 인육 등을 상징하고 있음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인도 후기밀교의 영역에 있어서 탄트라 코드만큼 학계의 주목을 받고 논쟁을 불러일으킨 주제도 거의 없을 것”이라며 “인도 후기밀교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불교해석학에 대한 지식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의 이번 논문은 엄연한 불교학의 한 영역임에도 금기처럼 여겨지던 좌도밀교의 빗장을 풀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헤바즈라 탄트라』에 “사람들을 얽어매는 바로 그것에 의해 그들은 해탈한다.…사람들은 실재에 대한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망상에 빠져 있고 실재에 대한 진리를 결여한 사람은 성취를 얻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듯 좌도밀교 수행이란 번뇌를 회피하는 게 아니라 번뇌의 한 복판으로 뛰어들어 번뇌의 고리를 완전히 끊고자하는 치열한 구도의지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을 듯싶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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