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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명강의]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한 생각 바꿔 진여 보면 이 자리가 곧 영산회상

오늘은 「전심법요(傳心法要)」라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짧은 책을 갖고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 「전심법요」는 제가 송광사 선방에서 한 철 난 후 지대방엘 갔을 때 만난 책입니다. 그곳에는 「법륜」이라는 잡지가 있었는데 그 잡지 중간에 「전심법요」가 번역 돼 실려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다가 너무 좋아서 그 「법륜」이라는 책에서 이 「전심법요」 뜯어 갖고는 집게로 집어서 겉장까지 만들어 한 10년을 걸망 안에 넣고 다니면서 수시로 보았던 책입니다.

이 「전심법요」는 내용이 아주 간명하고 쉽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활과 같다면 이 황벽 희운 선사의 「전심법요」는 활줄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부처님 법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일러주신, 부처님 법의 요결이라고 저는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정법 의지한 바른 견해가 최우선

황벽 스님의 「전심법요」는 아주 간명합니다. 군더더기가 붙지 않아요.
‘심외무물(心外無物). 마음 밖에 한 물건도 있지 아니하다. 어떤 것이 마음인가? 바로 허공이니라. 허공에 무슨 상이 있더냐? 허공에 무슨 늙음이 있더냐? 허공에 무슨 젊음이 있더냐? 허공에 무슨 안팎이 있더냐?’

이런 내용들입니다. 「전심법요」는 배휴 거사라고 하는, 아주 신심 깊은 재가 불자가 없었다면 이 「전심법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완릉록」과 「전심법요」는 배휴 거사가 황벽 스님의 말씀을 기록을 해 놓은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온 것입니다. 아무리 황벽 스님이 좋은 법문을 하셨다 하더라도 배휴 거사가 올바른 견처, 깨달음에 안목을 갖지 않았더라면 이 책을 만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즉, 아무리 부처님 경전을 많이 안다고 하더라도 견해가 올바르지 못하면, 자신의 소견만큼만 받아들이기 때문에 결국은 올바른 경전을 만들어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전심법요」를 이렇게 기록하고 우리들에게 이렇게 전해줘서 읽을 수 있게 만든 배휴 거사는 배상국이라고도 불리는데 ‘상국’이란 영의정보다도 높은 당나라 때의 벼슬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입니다. 위로는 천자 하나가 있을 그런 자리에 있으면서도 배휴는 불법을 옹호하고 수호했습니다. 그냥 법을 따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법의 깨달음 얻어서 부처님 법을 옹호한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 앉아계신 거사님들이나 보살님들 모두 ‘나는 재가자니까, 나는 세속에 사니까’하는 퇴타심(退墮心)을 버리세요. 부처님 법은 형상에 있는 것이 아니니 머리를 길렀는지, 머리를 깎았는지, 아니면 산중인지 저잣거리인지를 갖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견해를 가졌는가, 못 가졌는가’ 오직 그것 하나만을 판단할 뿐입니다. 한 생각 척 돌이켜 번뇌가 바로 진여심(眞如心)임을 알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이고, 그건 뭔가 열심히 정진하고 닦아야만 얻어지는 결과물이다’라고 생각하고 믿지 않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진리를 코앞에 두고도, 눈앞에 두고도 스스로가 멀리하고 마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입니다.

이 「전심법요」를 보는 과정에 나는 우리 신도님들이 턱하고 깨달음을 얻어서 저한테 한마디씩 묻는 분들이 나오신다면 그것이 바로 영산회상이고, 그 자리야 말로 달마대사와 이조 혜가선사께서 법을 전하고 받았던 그 자리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전심법요」가 우리들에게 전해지도록 한 배휴 거사는 791년에 태어났습니다. 이분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었던 데다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셔서 외삼촌 손에 자랐습니다. 그런데 배휴 거사가 열 살을 조금 넘겼을 무렵 외삼촌 집에 찾아온 한 스님으로부터 “집안을 망하게 하고 고을을 망하게 할 만큼 박복한 관상”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 말을 듣고 그 길로 집을 나선 배휴 거사는 거지가 되어 구걸을 하며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거지가 된 후에도 배휴 거사는 능력이 닿는 만큼 남을 돕고 좋을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외삼촌댁을 다시 찾은 배휴 거사는 그곳에서 관상을 보았던 그 스님을 다시 만납니다. 그런데 그 스님이 배휴 거사를 보고는 “일국의 정승이 될 관상이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배휴 거사가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그런데 스님 말씀이 이렇습니다.

“네가 외삼촌 집에 머무는 동안은 외삼촌에게 빌어먹으며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얻어먹을 수 있을까만 생각하는 거지근성을 갖고 있었지만 네가 막상 거지가 된 후에는 조금이라도 남을 돕고 좋은 일을 하려는 원력을 세웠다. 그러니 거지의 업력을 가진 것과 뭔가 좋은 일을 하려고 마음을 바꾼 것과의 차이에서 너 자신의 운명이 바뀌었다.”

이 말씀은 우리한테도 적용이 됩니다. 어느 자리에 있든, 무엇을 하든 간에 원력을 세워야 됩니다. 시시한 원력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내가 무슨 일을 해야 될까? 지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이티라는 그 조그만 나라에서는 천만 명의 인구 가운데 20만 명이 거의 죽은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야말로 생 아비지옥입니다. 그런 곳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내가 그들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자비심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여러분들의 운명을 바꾸는 차제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티 난민 돕는 자비심 내야

육조 스님을 찾아간 남악 회양 선사가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될까를 무려 6년이나 고민합니다. 도대체 뭐라고 대답을 해야 될까? 이것이 도대체 어떤 물건인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있다면 무엇이고, 없다면 이렇게 생각하고 웃고 슬프고 눈물 나는 이것은 도대체 뭔가? 있다고 하자니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다고 하자니 분명하고 또랑또랑하게 보고 듣고 느끼는 이것은 또 도대체 무엇인가?

여러분! 있고 없음을 떠나서 고정관념, 있다 없다 익혀온 업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우리는 버려야 합니다. 습관은 업으로 생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업으로 인해서 ‘나’라는 게 생겼습니다. 이 ‘나’라는 게 결국은 그림자 같은 것, 저녁노을 같은 것, 허공에 떠 있는 구름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구름이라는 게 실체가 있나요? 실체 없는 것을 실체라고 생각하는 착각으로부터 번뇌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세하게 말씀드리는 것은 선을 너무 신비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깨달음을 나하고는 상관없는, 산중에서 공부한 스님들만 깨달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셔야 됩니다. 한 생각 바뀌면 됩니다. 잘못 안 지식, 잘못 받아들인 견해, 그로부터 나오는 악습, 잘못된 습관, 이것이 지금의 나입니다. 그러니 욕심을 내서 뭘 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저녁노을을 구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육조 스님이 ‘불사선 불사악(不思善 不思惡)’, 선도 놔 버리고 악도 놔 버려라고 하셨습니다. 다겁생으로부터 익혀 왔던 모든 습관, 금생에 받아들인 모든 지식, 또 모든 정보, 모든 앎을 다 내려놓으라는 말입니다. 결국은 우리를 속박하고 우리를 묶고 있는 우리를 가두고 있는 의식, 그것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결국 묶여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명주실로 짠 선업의 밧줄이든, 가시철망으로 짠 악업의 밧줄이든 간에 다 끊어 내고 완전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본래 자유가 있음을 알아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본래 자유입니다. 이 「전심법요」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명쾌하게 잘 정리돼 있습니다.

번뇌심, 지식, 견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등 사상으로 뭉쳐져 있는 ‘거짓 나’를 주인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그 당처가 뭘까? 스스로 묻는 사람. 그 사람은 도를 닦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공부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부처님의 정법에 의지해서 자기 삶의 운명을 바꿔 나가는 사람입니다.

나는 불자들이 그렇게 돼야 하고 그렇게 안 되려면 절에 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당히 빌어서 복 좀 받고 살다가 생로병사 윤회의 구렁텅이에서 끝없이 헤매는 그런 불자가 아니라 생사윤회를 영단하고 깨달음을 얻어서 정말 진리의 세계 속에 들어가려고 원을 세우는 불자. 내가 바로 삼천 대천세계에 광명을 두루 놓는 부처의 자리에 들어가고자 하는 대원력을 세운 불자가 돼야 합니다. 원력을 세우는 순간 여러분들도 틀림없이 그렇게 된다는 것을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월 17일 서울 봉은사에서 봉행된 일요법회에서 주지 명진 스님이 ‘황벽 선사의 전심법요’를 주제로 한 첫 번째 법문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명진 스님은

1950년 충남 당진 출생. 1969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 1974년 법주사에서 탄성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수지, 1975년 혜정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송광사, 해인사, 봉암사, 상원사, 망월사, 용화사 등 제방 선원에서 40안거를 성만했다. 1988년 대승불교승가회 회장, 1994년 조계종 종단 개혁위원회 상임위원, 조계종 11, 12대 종회의원 및 부의장,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상임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6년 서울 봉은사 주지 소임을 맡아 도심 사찰에서의 수행과 포교 활성화를 모색하며 천일기도·재정공개 등을 단행, 도심 사찰의 새로운 위상을 정립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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