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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신심명] 25. 본능예찬

기자명 법보신문

불성은 인간만이 지닌 가장 수승한 본능
일심은 그 자연의 본능으로 돌아가는 것

『신심명』으로 되돌아간다. “모든 상대적인 두 견해는 자못 짐작으로 하기 때문이로다. 꿈속의 허깨비와 헛꽃을 어찌 애써 잡으려 하는가?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일시에 놓아버려라. 눈이 만약 졸음이 없다면, 모든 꿈 저절로 없어지고, 마음이 만약 다르지 않으면 만법이 한결같느니라.”

놀이하는 마음이 곧 대승의 사고방식과 다르지 않음을 지난번 우리가 관견하였다. 진/위, 선/악, 미/추, 성/속 등을 이분법으로 가리는 마음은 득/실, 시/비를 가르는 마음처럼 인간의 지능이 작용하는 마음과 같다. 이분법적 마음은 바로 지능적 분리의식이다.

자연의 마음은 이중성을 놀이로서 엮는 마음이지만, 인간의 사회적 마음인 의식은 지능적인 기능을 소유하고 있어서 이해득실과 시비에서 자기에게 이로운 것만 가지려고 한다. 인간은 사회생활에서 자연의 삼라만상처럼 얽히고설켜 놀이할 줄 모른다. 지능의 택일적 사고방식에 얽매인 의식을 승찬대사는 졸음이 오는 눈에 비유했다.

오히려 지능의 이분법적 영리함을 승찬대사는 상식과 정반대로 몸 안의 헛것을 보는 것으로 비유했다. 인간의 사회생활이 자랑하는 지능적 활동을 불교는 오히려 정반대로 인간으로 하여금 이기배타적인 탐욕의 구덩이로 몰아넣는 몰락의 길이라고 여겼다.

나는 부처님이 가르치신 이고득락(離苦得樂)의 길은 지능에 의한 사회생활의 소유지향적 생활방식을 버리고, 본능에 의한 자연생활의 존재지향적 생활방식을 터득하는 길로 접어드는 것이라고 여긴다. 여기서 우리가 본능을 예찬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랄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불교는 가급적으로 지능을 닫고, 본능을 열려고 하는 철학이요 종교라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본능을 동물적 충동처럼 오인한다. 사실상 동물은 별로 충동적이지 않다.

우리는 본능을 성적 흥분과 충동처럼 오해한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충동과 본능은 다르다. 본능은 동식물들이 자기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자동적으로, 즉각적으로 깨달아서 행동하는 자연적 능력을 말한다.

불성도 자연적 본능의 일종이겠다. 조주선사에게 어떤 이가 ‘개에게 불성이 있는가?’하고 물었다. 그는 여기서는 “없다”, 저기서는 “있다”고 대답했다. 충직한 개의 본능은 불성의 한 보기지만, 개에게는 인간의 본성처럼 확 트인 활연관통하는 마음의 직관력이 없기에 불성이 없다. 그러나 불성은 인간만이 지닌 자연의 가장 수승한 본능이다. 동식물의 본능은 어느 한 구석 일각의 장기를 드러내지만, 인간의 본성인 불성은 무한대로 광활하게 티여서 열려 있고, 결코 고갈되지 않으며 결코 다 퍼낼 수 없는 무한대의 에너지이면서 무한대로 비어있는 자유의 터전이다.

자연적 본능과 인간의 본성인 불성은 다 같은 우주 일심(一心)의 본질에 속한다. 원효대사가 말한 일심은 흔히 생각하듯이 사회적 인간의 한 마음이란 뜻이 아니라, 우주적 삼라만상이 모두 한 그물망으로 짜여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적 본능의 힘은 사회적 지능의 이기배타심과 달리, 우주적 마음의 인드라망인 그물처럼 자리이타심의 행위가 서로 얽히고설킨 것을 말한다.

자연은 서로 자리이타적 행위를 의도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심코 자리하고 이타한다. 예컨대 늑대가 순록을 쫓아가는 것은 순록을 잡아먹기 위해서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순록의 튼튼한 건강을 가능케 한다. 자연의 상극 속에 상생의 싹이 있다. 승찬대사가 말한 “마음이 만약 다르지 않다면, 마음이 한결같느니라”는 것은 원효대사가 말한 일심과 같다. 일심은 자연의 본능으로 돌아가는 것을 일컫는 것이겠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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