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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신심명] 26. 불성의 보편성

기자명 법보신문

일반적 보편성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주장
불교적 보편성은 모든 것 인정하는 너그러움

우리는 제법 오랜 세월 동안 서양식 교양의 영향으로 보편적 논리라는 것이 있고 그 보편적 논리에 바탕을 둔 보편성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 사고방식에 세뇌돼 한국의 학자들은 대학에서 보편성을 주장하고 또 학생들에게 보편성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그러한 보편성은 있지도 않는 망상에 속은 사고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 보편성은 서양 사상가들이 생각해낸 그들의 의식의 정당성을 변호하기 위한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서양식 보편성에 저항하고자하는 하나의 다른 동양식 보편성의 주장을 일삼기 위한 항변이 아니다. 서양식이고 동양식이고 간에 그런 의식의 보편성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대학에서 가르치는 이른바 보편성이라는 것은 모두 의식의 보편성으로서 의식의 보편성은 다 자기의 주의주장을 보편적인 것으로 확장하려는 사고방식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성은 서양의 모더니즘이 구상한 계몽주의적 진보의 신화에 불과하다.

그러면 보편성이 전혀 없는 것인가? 그렇다. 의식의 보편성은 없다. 그러나 불교적 의미에서 우주적 보편성은 있다. 그것은 의식이 아닌 마음의 보편성이다. 마음의 보편성은 곧 불성의 보편성이다. 지난 회에 우리는 인간의 불성이 자연이 지니고 있는 각양각생의 본능의 계열과 같은 류에 속한다고 보았다.

개에게는 주인에게 충성을 바치는 충직성이, 사자에게는 모든 동물들을 제압하는 힘과 권위의 상징인 용감성이, 독수리에게는 지상의 미세한 것 까지도 투시할 수 있는 시력의 영명성이 각각 주어져 있다. 이 충직성과 용맹성과 영명성은 우주 법계를 관통하고 있는 법신불의 특수한 모습이겠다. 자연 속에 퍼져 있는 동식물들의 다양한 본능들은 법신불의 다양한 전공이라고 불러도 괜찮겠다.

대학에서 우리는 서양적인 학문을 전공별로 나눈다. 그것은 동식물들의 다종다양한 본능들의 전공이 아니라 인간 지능들의 전공이라 부를 수 있다. 다만 동물들의 본능은 미리 종에 따라 결정되어 나왔지만, 인간의 지능적 전공은 미리 결정된 영역이 아니고 무한한 자유 속에서 어느 정도 경향성을 띤 성향이겠다. 따라서 지능의 보편성이란 엄밀한 의미에서 성립되지 않는다.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 보편성이란 인간의 본성인 불성에서 가능하다. 그런데 불성의 보편성은 무엇을 주장하는 보편성이 아니다. 불성은 어떤 자기의 생각을 주장하거나 의식의 생각에서 튀어나온 견해가 아니다. 지금까지 서양에서 말한 보편성도 그들의 환경과 의식에서 영글어진 어떤 견해일 뿐이다. 물론 그 견해는 대단히 세련된 견해인 것은 사실이다. 불성의 보편성은 그런 견해의 주장된 논리가 아니다. 불성의 보편성은 우주 공간의 허공과 같다. 자기 것이 없고 텅 비어 있으면서 자연스런 삼라만상을 하나로 포괄하는 보편성이다.

그런 보편성을 노자는 포일(抱一)이라고 불렀다. 노자가 말한 포일은 굽은 것과 온전한 것이 그리고 움푹 파인 것과 가득 찬 것이 서로 상반되면서도 동시에 별개로 존재하지 않을 만큼 서로 동거하고 있다고 보는 우주의 실상을 말한다. 불교적인 보편성인 불성의 허허로운 존재 방식은 노자가 말한 포일적 또는 이중적 사물의 존재 양식을 무궁무진하게 허용하는 너그러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불성의 보편성은 자기주장이 없는 즉 자기 고집을 피우지 아니하는 그런 허공의 미학과 다르지 않겠다. 그 허공의 미학이 공이다.

우리는 의식의 보편성이란 망상적 허구성을 떠나서 그리고 자의식을 보편성이란 이름으로 미화하거나 확장하는 이기심을 떠나야 한다. 부처의 마음은 스스로 무엇을 주장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견해가 없으나, 그렇기 때문에 부처의 마음은 자연의 허공처럼 한 없이 너그럽다. 한없이 너그러우면서 모든 것들을 다 제 자리에서 놀게 하는 편안함을 지니고 있다.

김형효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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