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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두의 책안의 세상 책밖의 세상] 사람들은 왜 진실을 외면할까

기자명 법보신문

『들리지 않는 진실-빈곤과 인권』/아이린 칸 지음/우진하 옮김/바오밥/2009

최근 모 신문에 “인도 ‘노예 노동 아동’ 1200만 명, 노예처럼 혹사당하고도 대가는 한 달에 2500원”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것이 신흥경제부국 인도의 현재 모습이고, “인권과 빈곤이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보여주는 확실한 사례인데도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애써 모른 체 한다. 국제앰네스티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계·무슬림·여성 사무총장인 아이린 칸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엄연한 ‘진실’에 대해 생생한 증언을 해주지만, 여전히 “진실은 불편하다”고 여기며 끝까지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수많은 재계 인사와 정치가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인권은 사치일 뿐이고 자유는 사회 불안정이며 경제성장의 장애물이라 여긴다. 「이코노미스트」지를 필두로 한 보수주의 진영에서는 “앰네스티의 활동은 언론 자유와 고문·정치적 살인 등 시민 정치적 권리에 한정하고, 경제·사회·문화적 인권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말라”고 강권한다. 그리고 앰네스티 스스로도 오래도록 이런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 왔다. 그런데 아이린 칸이 사무총장으로 취임하면서 큰 변화가 왔다.

“우리 가족은 가난하지 않았지만 내 조국은 가난했다”고 술회하는 그 가난한 조국 방글라데시 다카의 한집에서 태어난 동갑내기 친구 파잘이 천형(天刑)과도 같았던 가난 때문에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는 파잘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기 위해 세상 구석구석을 찾아 나선다. 경제가 성장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빈곤에서 구해낼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아이린 칸은, “경제성장이 빈곤을 종식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이지만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구타를 당해온 남아공의 어느 불쌍한 여인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러 갈 차비조차 없어서, 법에 정해진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빈곤’은 차별받고 소외당한 사람들이 쉽사리 빠져 나올 수 없는 거대한 늪이다. 이 늪에서 이 사람들이 빠져나오게 도와주는 일이 아이린 칸이 느끼는 앰네스티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살 힘이 없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재화를 늘려주는 동시에 자유·정의·존엄을 확립하는 일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지역발전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인권 강좌를 들으러 온 방글라데시의 어느 여성은 “내 딸들은 나와 같은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러려면 우리 권리를 지키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당당하게 자기 인권을 주장하게 되었다.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이 “나도 똑같은 권리를 가진 사람”이라고 스스로 깨닫게 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진실을 알 권리가 곧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이다. 누구든 진실을 편하게 여기고 그 진실을 외면하지 않게 되면, 그곳이 곧 불국정토가 아닐까. 

이병두 불교평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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