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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명강의] 기림사 주지 종광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탐진치 비움이 참다운 작복 맑은 마음 드러나면 곧 공덕

오늘은 『육조단경』에 설해져 있는 복과 공덕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복은 닦고 도는 닦지 않으면서 복을 닦음이 곧 도라고 말한다. 보시 공양하는 복이 끈이 없으나 마음 속 삼업은 원래대로 남아 있도다. 만약 복을 닦아 죄를 없애고자 하여도 뒷세상에 복은 얻으나 죄가 따르지 않으리오. 만약 마음속에서 죄의 반연 없앨 줄 안다면 저마다 자기 성품 속의 참된 참회니라. 만약 대승의 참된 참회를 깨치면 삿됨을 없애고 바름을 행하여 죄 없어지리. 도를 배우는 사람이 능히 스스로 보면 곧 깨친 사람과 더불어 같도다.…”

『육조단경』 ‘멸죄송(滅罪頌)’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살펴보면 복을 지으려고 열심히 노력합니다. 하지만 복을 받기 위해 비는 것은 기복입니다. 거듭 말씀드렸지만 복은 빌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 짓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도를 닦는 것입니다. 공부하라는 말씀입니다.

탐진치 남긴채 쌓은 복은 헛 노력

그런데 우리는 지금 우리가 행하고 있는 신행 형태가 도를 닦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경전의 말씀처럼 보시 공양하는 공은 한이 없을지라도 마음속의 삼업, 탐진치는 원래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복을 닦아 죄를 없애고자 하여도 뒷세상에 복은 얻으나 죄가 따르지 않으리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탐진치를 그대로 담고 있으면 아무리 복이 많다하더라도 죄는 그대로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서 탐진치 삼독이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탐진치 삼독을 없앨 수 있다면 사람마다 자기 성품 속에 바른 참회가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참회하는 것은 내 마음 속에 탐냄, 성냄, 어리석음을 조금씩 없애가는 것입니다.

“…만약 장차 본래의 몸을 찾고자 한다면 삼독의 나쁜 인연을 마음속에서 씻어 버려라. 힘써 도를 닦아 유유히 지내지 말라. 어느덧 헛되이 지나 한세상 끝나리니 만약 대승의 단박 깨치는 법을 만났거든 정성들여 합장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구하라.…”

바로 깨닫는 법이라고 하는 것도 바로 탐진치를 덜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탐진치를 담고 내가 공덕을 짓는다거나 또는 공부를 한다거나 또는 복을 구한다는 것은 전부 부질없는 것입니다. 삼독의 나쁜 인연을 마음속에서 자꾸 씻어내야 합니다. 탐내는 마음, 화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을 자꾸 없애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어리석음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부처님께 자꾸 무엇을 구하지요. 그 구하는 마음의 바탕에는 욕망이 있습니다. 더 잘살아야겠다, 더 많이 가져야겠다, 더 높아져야겠다 뭐 이런 것입니다. 그것은 욕망, 욕심입니다.

물론 많이 가져야 합니다. 많이 가져서 많이 베풀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우리에게 욕망이 없다면 삶의 동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런데 그 욕망이 철저하게 자기만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함께 하는 생각을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나도 안락하고 너도 안락한, 우리 모두가 안락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철저하게 나, 우리가족에 한정돼 있습니다. 그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또 ‘힘써 공부를 하면서 유유히 지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유유히’라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벌써 한 해가 다 지나가고 오늘이 섣달 보름입니다. 일 년이 금방 지나간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황혼이 돼 있습니다. 늘 맑게 깨어있지 않다면 그렇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경전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유유히 한 세상 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성을 들여 지극한 마음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대충대충, 덤벙 덤벙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공덕은 어떻게 해야 공덕이 됩니까. 공덕 쌓으러 절에 간다는 말씀들 많이 하시죠. 그런데 공덕이 무엇인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자가 듣자오니 달마대사께서 양무제를 교화하실 때, 양무제가 달마대사께 묻기를, ‘짐이 한평생 동안 절을 짓고 보시를 하며 공양을 올렸는데 공덕이 있습니까?’라고 하자 달마대사께서 ‘전혀 공덕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시니, 무제는 불쾌하게 여겨 마침내 달마를 나라 밖으로 내보내었다고 하는데 이 말을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달마대사는 수많은 절을 짓고 스님들을 출가시키고 경전을 찍어낸 양무제의 공덕을 ‘무’라고 했습니다. 왜입니까. 무엇을 했다, 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한 그것은 공덕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로 공덕이 없으니, 사군은 달마대사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라. 무제가 삿된 길에 집착하여 바른 법을 모른 것이니라”라는 하셨습니다. 양무제가 잘못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다운 공덕은 안으로 자기를 잘 다스리고, 안으로 자기의 탐진치를 덜어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공경할 때 공덕이 생겨

집 짓고 밥 먹이고 옷 입히고, 이것은 공덕이 아닙니다. 당연히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 도와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 그것이 무슨 공덕입니까. 불자로서 절 짓는 것 당연합니다. 불자로서 부처님 위해 일하고 부처님 위해 공양하고 보시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은 공덕이 아니니 진짜 공덕을 쌓으려면 네 안에 있는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없애라는 것입니다. 육조스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절을 짓고 보시하며 공양을 올리는 것은 다만 복을 닦는 것이다. 복을 공덕이라고 하지는 말라. 공덕은 법신에 있고 복밭에 있지 않느니라. 자기의 법성에 공덕이 있나니, 견성이 곧 공(功)이요, 평등하고 곧음이 곧 덕(德)이니라. 안으로 불성을 보고 밖으로 공경하라. 만약 모든 사람을 경멸하고 아상(我相)을 끊지 못하면 곧 스스로 공덕이 없고 자성은 허망하여 법신에 공덕이 없느니라. 생각마다 덕을 행하고 마음이 평등하여 곧으면 곧 가볍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항상 공격하고 스스로 몸을 닦는 것이 곧 공이요, 스스로 마음을 닦는 것이 곧 덕이니라. 공덕은 자기의 마음으로 짓는 것이다. 이같이 복과 공덕이 다르거늘 무제가 바른 이치를 알지 못한 것이요, 달마대사께서 허물 있는 것이 아니니라.…”

안으로 자기 자신을 맑히고 밖으로 다른 사람을 공경하는 것이 공덕이지 그 외에는 공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안으로는 자기 자신을 맑히기 위해서 노력하고 밖으로는 다른 사람을 공경할 때 비로소 나에게는 공덕이 생기는 것입니다.

공덕이 무엇인지 아시고 복을 짓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지요. 복은 빌어서 얻어지는 것. 기복해서 얻어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복을 받고 싶으면 복 받을 행동을 해야 합니다. 밥 먹을 때부터 복 받게 먹어야 합니다. 밥 맛있게 먹는 사람보고 복 받게 먹는다고 하지요. 복 받게 먹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던 복 받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복을 받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복 짓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을 뿐입니다. 겸손하고, 남을 공경하면 복이 생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은 열심히 짓고, 공덕은 내 마음에 내재돼 있는 것이 현현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 내재돼 있는 올바른 평등함, 맑음이 바깥으로 나타는 것이 공덕입니다. 그러니 기복은 이제그만하고 작복하시고, 그것을 통해 내재되는 공덕이 바깥으로 나타나고 일상에 구현되어 너와 나, 우리 모두가 안락함을 누리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경북 경주 기림사 주지 종광 스님이 1월 29일 대적광전서 봉행된 보름법회에서 설한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종광 스님은

1968년 법주사에서 월산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1년 해인사에서 고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91년 법주사 불교전문강원 강주, 조계종 11, 12, 13대 중앙종회 의원, 실상사 화엄학림 강주, 학교법인 능인학원 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조계종 14대 중앙종회의원이며 경주 기림사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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