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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를 말하다] 한양대 국문학과 이도흠 교수

기자명 법보신문

동서양 철학 아우르는 비판적 지식인

화쟁기호학 이론 개발…불교미학 정립 추진
현실 거세된 학문은 공허…비전 제시해야

지식인은 많아도 지성인이 드문 시대다. ‘욕망을 욕망한다’고 할 정도로 도처에 욕망이 들끓고 지식과 예술조차 저항이 아니라 욕망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공공연히 나온다.

매일 8억5000만 명이 굶주리고 5초마다 어린이 한 명이 굶어 죽는 세상. 그럼에도 한 편에선 모두가 더 너른 아파트, 더 높은 지위, 더 강한 권력, 더 많은 연봉을 열망하는 게 이 시대의 모순된 현실이다. 그러면 지식사회는 어떨까.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해결하려하기보다는 곡학아세로 영화를 누리거나 상아탑에 안주해 학문을 현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공리공론으로 떨어뜨리고도 외려 이것을 ‘학문의 순결함’ ‘학문의 엄숙함’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도흠(53)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는 시대의 문제를 끌어안고 아파하는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문학, 철학, 역사를 얘기하는 동시에 우리 사회의 구조적 폭력이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공세 속에서 제3세계의 독자성에 대해 진지하게 거론한다. 또 고전 시가나 외국 스님의 저술을 번역하는가 하면 인간성의 상실과 소외의 심화 문제 혹은 환경의 위기에 대해서도 진지한 모색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비전이 없는 학문이 경박하다면 현실이 없는 학문은 공허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인문학은 한국이라는 땅에 굳건히 발을 내리고서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불교학자 또한 정토를 지향하면서도 굳게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아미타불처럼 꿈과 현실, 종교와 세속적인 삶을 하나로 아우르고 그 길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올바르게 읽는 만큼 세계를 보고 올바르게 읽는 만큼 자유로워진다’는 이 교수의 확고한 신념처럼 그의 학문은 비판적 성찰을 통해 이데올로기나 권위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 ‘자유로움’을 향하고 있다. 그의 유명한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1999)도 이러한 학문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독창적인 인문학 이론이다. 언제부터인가 인문학은 물론 영화나 무용에서도 종종 적용되고 있는 화쟁기호학은 원효의 화쟁사상을 통해 내용자체에 치중하는 형식주의 비평과 정치·경제·사회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마르크시즘 비평을 하나로 아우르는 ‘상생(相生)의 인문학’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사회는 서로를 살리는 문화가 아니라 서로를 도구화하는 죽임의 문화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화쟁은 자연과 인간, 주체와 객체, 말과 글, 동양과 서양을 화해시키고 상생토록 하는 대화와 회통의 철학입니다. 그런 점에서 진(眞)과 속(俗), 부처와 중생, 도와 언어를 융합했던 원효의 화쟁사상은 인류가 지향해야할 대안사상이 되기에 충분하죠.”

이 교수는 스스로 화쟁기호학 이론을 적용해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2000)는 저술을 펴내기도 했다. 문학, 역사, 철학, 문헌학과 고고학적 성과를 종합해 가능한 그 시대의 문화적 맥락에서 당시 신라인의 마음을, 나아가 신라인의 실체를 읽고자 시도했던 것이다. 이로써 종의 몸으로 부처가 된 욱면, 관음보살에게 빌어 천 개의 눈에서 한 개를 떼어내 눈 먼 아이의 눈을 뜨게 한 희명 등 신라의 이름 없는 위대한 민중들을 드러냈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화쟁기호학에 대한 반향도 계속 되고 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호학적 역사학-화쟁기호학을 중심으로」(조지형, 2000), 「범부춤의 심층구조와 의미에 대한 화쟁기호학적 연구」(이찬주, 2005), 「한국 민속춤의 동작 코드와 의미 체계에 관한 연구」(김지원, 2005) 등 화쟁기호학을 적용한 논문들이 꾸준히 발표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 단락의 글을 쓰기 위해 수십 편의 논문 읽기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이 교수는 치밀한 글쓰기로 정평이 나있다. 실제 그는 2002년 4월엔 교수신문 주최 학술에세이 공모전에서 ‘생태이론과 화쟁사상의 종합’이란 글을 발표해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소쉬르에서 바르트, 원효에서 데리다, 플레하노프에서 바흐찐을 넘나들며 고금과 동서를 ‘화쟁’시키며, 지금까지 20여 권의 저서(공저)를 비롯해 110여 편에 이르는 논문과 문학·문화비평 글들을 발표했다. 특히 최근엔 시를 통해 욕망, 연기 등 불교철학의 핵심 개념들을 정감 넘치게 전달하는 동시에 불교미학의 이론 정립을 시도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인문학, 불교학, 사회과학에 두루 깊이 밝다. 어떤 일이건 한 번 맡으면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한다. 그는 우리 불교학의 허약한 부분을 채우는 꼭 필요한 학자다.”(김성철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특정분야에만 매몰되지 않으며 학문적 시야가 대단히 넓다. 언제나 열정이 넘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로 늘 마음이 향해 있는 따뜻한 사람이다.”(이형대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엄청난 독서와 사색을 통한 정직한 안목으로 사회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불교의 현실참여가 시급한 오늘날 그는 불교학의 대단히 소중한 존재다.”(유승무 중앙승가대 포교사회학과 교수)

이 교수가 불교와 인연이 닿은 것은 마르크스의 사상에 심취했던 젊은 날의 끝자락에서였다. 1979년 한양대에 입학한 그는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그러했듯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접하고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군부독재정권에 맞서 시위를 하고 서구의 사회과학 이론들을 하나하나 독파해나가면서 진보적인 이론을 모색했다. 허나 내심 서구이론에 대한 회의가 없지 않았다. 대립과 투쟁, 이원론적인 패러다임에 대한 반감이었다. 그 무렵 만난 원효는 어두운 시대를 밝힐 수 있는 빛으로 다가왔다. 원효의 사상은 우열이 아니라 차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투쟁과 모순이 아니라 자신을 소멸시켜 타자를 이루게 하는 상생의 사유였던 것이다.

“차이를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다른 것을 만나서 그것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킵니다. 나와 타자 사이의 진정한 차이와 내 안의 타자를 발견하고서 자신의 동일성을 버리고 타자 안에서 ‘눈부처’를 발견하고서 내가 타자가 되는 것이 원효의 변동어이(辨同於異)의 논리입니다.”

‘눈부처’는 똑바로 상대방의 눈동자를 바라보면 상대방의 눈동자 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음을 일컫는 우리말이다. 내 모습 속에 숨어있는 부처, 곧 타자와 자연, 약자들을 사랑하고 포용하고 희생하면서 그들과 공존하려는 마음이 상대방의 눈동자를 거울로 삼아 비추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적극 막는 것이나 올해부터 실시하려는 ‘빈자(貧者)의 인문학’과 나와 타인이 어우러지는 공동체를 꿈꾸는 것도 결국 ‘눈부처’라는 그의 삶의 지향점으로 귀결될 듯싶다. 지식과 예술이 상품이 되고 예술정신은 이데올로기로 대체되는 잿빛 시대. 그는 억압과 권위에 저항하는 지식인인 동시에 상대의 눈에서 눈부처를 보려는 화쟁거사이기도 하다.

■이도흠 교수와의 Q&A

질문    

답변

이유

 닮고 싶은 학자 

 그람시

 끊임없이 저항하며 실천하는 주체

 꼭 읽혔으면

 하는 저술

 화쟁기호학

 열린 해석과 실존적 성찰 가능

 꼭 하고 싶은 일

 빈자 인문학 강좌       

 눈부처 공동체 운동

 학문과 실천의 병행

 추천하고 싶은 책

 화엄경, 자본론 

 불교철학 정수, 불교적 상상력 보고

 우리 사회와 현실에 대한 성찰

 늘 새기는 구절

 어두울수록 별이 맑게 빛나듯

 고통이 클수록 깨달음과 

 세계의 의미는 깊어진다.

 고통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

 가까운 학문 도반

 김성철, 석길암, 서재영, 

고광영, 이병두, 이형대  

 친하고 존경하는 지식인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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