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청심] 행복을 선택할 자유
[세심청심] 행복을 선택할 자유
  • 법보신문
  • 승인 2010.03.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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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러워할 만한 좋은 직장의 중역 간부가 찾아와 말한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면 조금 무리수를 두어야 하는데,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자니 진급을 못 할 것 같고, 진급을 하자니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한 일을 해야 하는데 어쩌면 좋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 다른 질문을 드렸다. 지금 자신의 삶이 대체적으로 행복한가 하고, 과거에 생각했던 행복을 지금 이루었는가 하고 여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시더니 하는 말씀이 그러고 보니 자신은 원하는 것을 다 이루었다고 하신다. 처음에 오르고자 했던 자리에 지금은 이미 와 있고, 벌고자 했던 정도의 경제력을 지금 누리고 있고, 아내도 하고 싶은 일 하며 행복해 하고, 자식들도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하신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릴적 자신이 생각했던 바로 그 행복의 삶이 어느 샌가 벌써 실현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지금껏 그것을 몰랐던 것이다. 현재가 얼마나 만족스럽고 행복한지를 모르다보니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행복을 찾으려고 온갖 노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찾은 행복을 누리고 만끽할 줄 모른 채, 아직도 계속해서 행복을 찾아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꿈이 이루어진 바로 그 순간에 조차 여전히 그 행복을 누리기는 커녕 더 높은, 더 많은, 더 큰 목적을 향해 내달리고자 하는 욕심과 집착 때문에 이미 찾아 온 행복을 스스로 걷어 차 버리곤 한다. 행복은 누리고 만끽하는 것이지,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행복 추구는 죽을 때 까지 끝없이 계속되지만 누리고 만끽하는 것은 언제나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다. 누릴 수 있는 것을 걷어 차면서 어떻게 더 많은 것을 누리고자 하는가. 누리는 것을 더 많이 누릴 때 세상은 우리에게 보다 더 많이 누리도록 해 준다. 반대로 누리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바라기만 할 때 세상은 부족과 결핍을 가져다 준다.

삶이란 추구해야 할 무엇이 아니라 누리고 느끼며 만끽해야 할 무엇이다. 주어진 삶을 누릴 때 비로소 삶의 완전성이 드러난다. 본래부터 완벽했고, 완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추구하고 빌고 욕망할 때 존재 본연의 완전성은 사라지고 결핍과 부족과 실패가 창조되고 만다. 사실은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일 뿐이다. 사실은 무언가가 더 필요한 것이 아니라 더 필요하다고 욕망한 것일 뿐이다. 사실은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행복하지 않다고 해석했을 뿐이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문제는 그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에 대해 문제를 삼았기 때문에 일어난다.

행복은 어떤 완벽한 상황이 갖춰졌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행복을 누릴 때 바로 그 완벽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필요하고, 어떤 특정한 조건 속에서만 행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왔던 것은 완전한 환상일 뿐이다.

빅터 프랭클은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부모, 형제, 아내를 모두 잃고 모든 소유를 빼앗기고 모든 가치를 파멸당한 채 굶주림과 혹독한 추위, 핍박과 공포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고 그 안에서 의미있는 삶을 발견하고 유지할 수 있었다. 모든 자유가 강탈된 수용소에서 오직 남은 것이라고는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밖에 없음을 깨달았고, 그 이후 그는 수용소에서의 최악의 상황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의 삶을 한발자국 떨어져서 살펴보라. 삶은 언제나 완전하다. 지금 이대로 행복하다. 행복하지 않은 삶은 없다. 다만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과 판단만이 있을 뿐.

운학사 주지 법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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